[우리시대의 명반ㆍ명곡] 혼성 4인조 사람과 나무 1집 '쓸쓸한 연가'(1993년)순애보 담은 가사, 감칠맛 나는 멜로디

전통적으로 한국 대중은 슬프고 눈물샘을 자극하는 노래나 영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 왔다. 극한의 슬픔을 안겨준 작품은 어김없이 흥행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다.

일제강점기인1930년대에 등장해 대중의 나라 잃은 설움을 대변했던 이난영은 슬픈 노래 분야에 있어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가수다. 청승맞은 느낌마저 드는 그녀의 목소리는 청자의 가슴을 시퍼렇게 멍들게 하는 극한의 슬픔이 배어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대표곡 '목포의 눈물'은 지금도 '민족의 눈물'로 회자된다. 짧은 생을 마감해 대중의 마음을 아리게 했던 김정호 또한 슬픈 노래에 있어서는 70~80년대의 최강자였다.

한국 대중가요사를 통틀어 가장 슬픈 노래는 어떤 노래일까? 아마도 각 세대마다 눈물샘을 자극시켰던 노래는 제각각일 것이다. 1993년 발표된 혼성 4인조 포크그룹 <사람과 나무>의 '쓸쓸한 연가'는 이제껏 내가 들었던 대중가요 중 가장 슬픈 가사와 구성진 멜로디를 들려주었던 노래로 기억된다.

그대의 눈길이라도 받을 수 있는 작은 그림이 되고 싶고, 손길을 받을 수 있는 작은 인형이 되고 싶고, 사모하는 마음을 말하고 싶지만 행여 더 멀어질까 두렵다는 가사는 애절하기 그지없다.

문제는 이 슬픈 가사가 실화를 배경으로 했다는 지점에서 세상에 이보다 더 슬픈 노래가 있을까 싶은 극한의 정서가 획득된다. 리얼 즉 진정성이 가득한 노래는 지금의 대중도 열광하는 화두가 아니든가!

사실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 통속 드라마다. 실화로 알려진 이 노래에 얽힌 사연 역시 50~60년대에 각광받았던 신파나 최루 드라마의 전형적인 내러티브와 한 치의 오차도 없다.

사연은 이렇다. 1990년대 초반 서울 청량리의 사창가에서 일하던 20대 초반의 한 여자는 손님으로 온 법대생과 한눈에 반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신분의 차이 때문에 갈등한다. 그를 멀리 했던 그녀는 진실하게 다가오는 대학생에게 결국 마음을 문을 열고 사랑에 빠지고 두 사람은 단칸방을 얻어 보금자리까지 마련했다고 한다.

여인은 이후 다른 남자들과 접하기 싫었지만 경제적 능력이 없는 대학생 애인의 사법고시 뒷바라지를 위해 한동안 그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은 사랑의 결실로 귀여운 딸을 얻었고 남자는 사법고시에 합격한다. 늘 그렇듯 문제는 지금부터. 둘 사이를 묵인했던 남자 집안에서 결혼을 반대하면서 두 사람을 갈라지고 딸 또한 남자 집안에 의해 먼 보육 시설로 보내진다.

모든 것을 다 잃은 가련한 여인은 폐인처럼 방황하다 다시 사창가로 들어가 사랑하는 남자와 딸을 그리워하며 눈물로 살았다는 그야말로 통속적인 내용이다.

문제는 이 여인의 슬픈 사연이 입소문으로 퍼져 결국 노래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순애보를 담은 가사는 감칠 맛 나는 멜로디와 합치되며 대중가요 사상 가장 슬픈 노래 중 하나가 되어 대중의 가슴을 쳤다,

<쓸쓸한 연가>는 김정환(보컬, 기타, 아코디언), 이수경(보컬), 이영선(보컬, 기타), 임혜정(보컬)등으로 구성된 혼성 4인조 언플러그드 그룹 <사람과 나무>의 1집 수록곡이다. <사람과 나무>라는 그룹명은 한자 `쉴 휴(休=人+木)'에서 힌트를 얻었다는데 실제로 이들의 음악은 휴식을 안겨주는 편안한 어법이다.

리더 김정환의 창작곡 7곡을 비롯해 한돌과 이정선의 곡까지 총 9곡이 수록된 앨범 수록곡 대부분은 깔끔한 혼성 보컬의 하모니를 들려주지만 이 노래만큼은 이화여대 국악과 출신인 리드보컬 이수경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구성진 만돌린, 아코디언 사운드와 어울려 더욱 애틋하게 들려온다.

이 앨범에서 주목할 또 하나의 노래는 '젊은 나무들'. 이 노래는 1979년 TBC FM주최 <사랑의 듀엣쇼>에 <사람과 나무>의 리더 김정환이 이현숙과 출전해 최우수상을 수상해 널리 알려진 노래다. 사실 대중가요의 통속적인 가사는 난해한 시보다 더 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쓸쓸한 연가'는 지금까지 양현경, 서가인, 손영, 이승희, 박상운, 최정희, 오현란, 우대하 등 10여명의 무명가수에 의해 조용하게 리메이크되었다.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