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쟝센 단편영화제 10년감독들 주축, 장르 개념 도입, 신예감독 등용문, 기념행사도 풍성

나홍진 감독의 '완벽한 도미 요리'
10여 년 전 실험적이고 난해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던 단편영화는 이제 발칙하고 기발한 상상력을 뽐내는 감독들의 재능을 확인할 수 있는 장이 됐다. 이런 인식 개선을 이끈 미쟝센 단편영화제(MSFF) '장르의 상상력展'이 올해로 10회를 맞았다. 그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 작은 영화제는 한국영화에 어떤 자양분을 마련해 왔을까.

장편영화가 부러워하는 상상력을 보여주자

2002년 첫 행사를 시작한 미쟝센 단편영화제는 시작부터 팬들의 관심을 모았다. 영화배우 정우성이 연출한 가수 god의 뮤직비디오가 개막작으로 상영됐기 때문. 작가주의 감독들의 어려운 영화라는 단편영화에 대한 편견을 흥미로 해소시키는 파격적인 콘셉트였다.

이런 영화제의 콘셉트를 정한 것은 대표감독들이었다. 2002년 이현승 감독은 한국영화의 근간인 단편영화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 후배 감독들을 양성하기 위해 색다른 단편영화제를 제안했다.

관객이 쉽게 단편영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장편영화처럼 장르 개념을 도입하자는 발상의 전환도 이때 이루어졌다. 이후 각 장르를 대표하는 김성수, 김대승, 김지운, 류승완, 박찬욱, 봉준호, 허진호 감독이 이에 적극적으로 화답하면서 '발칙한 상상력'을 앞세운 낯선 영화제가 탄생한 것이다.

조성희 감독의 '남매의 집'
이 같은 상상력은 각 섹션의 장르 명칭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국내 경쟁 프로그램이 5개의 장르로 구성하면서 그 이름도 '비정성시',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희극지왕', '4만 번의 구타' 등 장르를 대표하는 영화 제목에서 빌려왔다.

감독들이 주축이 된 영화제인 만큼 모든 심사와 시상이 감독 위주로 진행되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일반적인 영화제 심사는 감독과 평론가, 프로듀서 등 다양한 심사위원이 함께 참여하지만, 또 그 점 때문에 보편적인 취향을 고루 만족시킬 수 있는 '무난한' 영화가 수상하는 단점이 생긴다.

미쟝센 단편영화제는 각 장르를 담당하는 2인의 심사위원 감독이 최우수작품상을 결정하는 방식을 취하며 무난함보다는 상상력이 뛰어난 개성 있는 영화를 선정한다.

이런 까다로운 심사 기준 때문에 대상 수상작도 잘 나오지 않는다. 1회(신재인 감독의 <재능있는 소년 이준섭>) 이후 7년 만인 8회(조성희 감독의 <남매의 집>)에 수상작이 나왔을 정도.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작품 중 여타 수상작을 넘어서는 상상력과 완성도가 인정될 때만 대상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취지대로 영화제는 10년 동안 40여 명의 신예감독을 영화계로 입문시키는 등용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영화계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황해>의 나홍진과 <똥파리>의 양익준,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최근 개봉한 <모비딕>의 박인제 등이 미쟝센 단편영화제가 배출한 감독들이다.

김종관 감독의 '폴라로이드 작동법'
1+10, 새로운 상상력과 다시 보는 상상력

류승완 감독이 대표 집행위원을 맡은 이번 영화제는 13대1의 경쟁을 뚫은 총 62편의 단편을 각 부문별로 선보인다. 비정성시 부문에서는 취업, 가족, 여성, 입양 등 다양한 사회적 소재의 영화 18편이 경합을 벌인다.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부문에서도 불륜, 폭력, 노년을 소재로 한 색다른 사랑의 이야기 12편이 리스트에 올랐다. 이밖에도 희극지왕 부문 11편, 절대악몽 부문 13편, 4만 번의 구타 부문 10편이 상영을 기다리고 있다.

올해는 10회째인 만큼 경쟁 부문 외에도 지난 영화제를 돌아보는 기념 행사들도 풍성하게 마련돼 있다. 그동안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준 작품들을 모은 'MSFF Choice 2002-2010'에서는 지난 9년간 국내 경쟁 부문에 진출한 감독들의 투표를 거친 10편의 작품과 영화평론가들의 회의를 거친 10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이중 <재능있는 소년 이준섭>, <남매의 집>, <가리베가스> 등은 양쪽에서 모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역대 영화제의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작 45편을 상영하는 '최우수 작품상 모음'은 이 영화제의 진수를 다시 맛보는 기회다. 2004 희극지왕 부문의 <남성의 증명>(윤종빈)을 비롯해 2005 절대악몽 부문의 <완벽한 도미 요리>(나홍진), 2007 4만 번의 구타 부문 <단편 손자병법>(권혁재) 등 지금은 상업영화에서 입지를 다진 감독들의 단편들은 한국영화에서 이 영화제의 역할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김선민 감독의 '가리베가스'
한편 이제까지 미쟝센 단편영화제에 가장 많은 작품이 선정됐던 감독들은 총 4편의 영화를 리스트에 올렸던 김종관, 윤혜렴, 이상근 감독이다. 이들은 단편영화의 토양을 비옥하게 일군 공로를 인정받아 이번 행사에서 특별전을 열게 된다.

<폴라로이드 작동법>(김종관), <호로자식을 위하여>(윤혜렴), <베이베를 원하세요?>(이상근) 등 이들의 어떤 개성이 관객에게 어필하는지 확인하는 시간도 상영과 별도로 마련돼 있다.

기발한 상상력과 개성 있는 프로그램으로 한국영화의 젖줄이 되어온 미쟝센 단편영화제는 오는 24일부터 30일까지 일주일간 용산CGV에서 상상력의 열기를 또 한 번 발산할 예정이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