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명반·명곡] 남성듀오 '10cm' 'The First EP' 下 (2010년)총 5곡 수록… 'Good Night' 백미

'10cm'의 첫 EP는 2010년 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 올해의 발견상, 2011년 제8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팝 노래 부문을 수상했다.

이 음반은 소위 가내수공업공법으로 제작한 열악한 음반이다. 그래서 심플하고 거친 사운드는 평단으로부터 표현 가능한 음악의 범위가 협소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솔직히 EP는 녹음의 질은 물론이고 부클릿의 내용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어쩌랴! 요즘 같은 디지털 세상에서 이 정도로 탁월한 서정성과 독특한 개성이 담긴 노래는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으니.

얼핏 욕설을 연상시키는 묘한 뉘앙스의 팀 이름 '10cm'는 보컬 권정열과 기타 윤철종 두 사람의 키 차이라고 한다. 경북 구미에 소재한 고등학교의 선후배로 만난 두 사람은 음악을 함께하기 위해 군대도 같이 간 십년지기다.

군 제대 후 무작정 상경해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이들은 온갖 오디션과 행사와 공연장을 찾아다녔다. 시골에서 올라왔다지만 뉴욕 맨해튼 스타일을 지향하는 이들의 깔끔한 캐릭터와 로맨틱한 음악들은 곧 여성 팬들을 중심으로 강력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남성듀오 '시인과 촌장'의 데뷔앨범이 그랬듯 이들의 첫 EP에도 여러 가지 음악 어법이 혼재되어 있다. 음악적 탐색기였던 '시인과 촌장'처럼 이들도 자신들만의 음악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로에 있다는 증명이다.

첫 EP에는 총 5곡이 수록되어 있다. 눈 나리는 밤 무일푼 신세인지라 골방에 쳐 박혀 혼자듣기에 제격인 포크 질감의 서정성이 돋보이는 '눈이 오네'를 시작으로 기타와 젬배 두 악기만으로도 놀라운 리듬을 구현하는 '새벽 4시', 터프하고 독특한 개성이 매력적인 'Healing'으로 이어진다.

극한의 서정적 감흥으로 청자의 귀를 잡아끌어 한동안 아무 것도 못하게 정지시키는 'Good Night'은 이 앨범의 백미다. 정규앨범에서 완성된 버전을 다시 들려준 로우 파이 질감의 보너스트랙 '죽겠네'까지 빼놓을 곡이 없다.

정규앨범을 들어보니 우선 윤기가 도는 사운드에다 재기발랄한 노래의 역동성과 솔직한 일상의 감정을 전달하는 내밀한 가사의 매력 또한 여전해 반갑다. 석고를 제작해 만든 독특한 이미지의 재킷 디자인 구성은 물론이고 EP에서 지적받았던 결점들이 깔끔하게 정돈된 느낌이다.

문제는 EP에서 경험한 심플한 사운드의 여백을 통해 빛을 발한 맛깔난 보컬과 어쿠스틱 기타의 서정적 매력이 사라진 점이다. 과연 웰메이드 음악은 사운드가 세련되고 풍부해야만 되는 것일까?

그 지점에서 10cm의 EP와 정규 앨범 중 어느 음반의 손을 들어줄 지 고민스러웠다. 전체적인 앨범의 구성이나 녹음의 질감 그리고 대중적 성과는 1집이 우월하지만 처음이라는 신선함, 날 것 그대로의 자연스런 개성이 발휘한 긴 여운의 음악적 감흥은 EP가 더 강력하기 때문이다.

10cm의 첫 정규앨범 '1.0'은 발매와 동시에 초도 1만장이 팔려나가는 기염을 토했다. 정규 앨범이전의 히트곡들을 앨범에 넣지 않은 이유에 대해 "시도해보고 싶은 음악이 더 많기 때문"이라는 대답은 지금 이들은 창작의 물꼬가 트여있음을 말해준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미워하고, 무언가를 갈망하는 일상의 세속적 감정들은 모두에게 공통적인 정서다. 정규앨범은 관능적인 내용을 유머러스하게 뽑아내는 개성이 넘쳐난다.

주변의 일상적인 소재들을 야릇하게 부각시키는 이들의 은근히 노골적인 노래는 자칫 느끼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귀엽고 유쾌하게 느껴지는 것은 변함없이 진지한 음악적 태도 때문일 것이다.

'10cm'는 여성의 스타킹을 노래한 첫 트랙 '킹스타'부터 지인들의 눈물을 쏙 뺐다는 타이틀곡 '그게 아니고', 대중적으로 큰 인기몰이를 한 자신들의 아지트를 소재로 한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 '어디까지 야할 수 있나'를 시험해 보았다는 'Beautiful'까지 한국대중음악사상 처음으로 노래를 얼마나 야하게 부를 수 있는 가를 시험하는 중이다.

좋은 노래를 생산하고 그 노래를 사랑하는 대중까지 넘쳐나니 이들의 향후 음악행보는 한동안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것 같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