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명반ㆍ명곡] 허클베리핀 5집 下 (2011년)이소영 보컬에 무게 중심, 제목 수정 등

허클베리핀의 음악은 들을수록 강한 중독성을 발휘하는 진국 같은 노래지만 단박에 일반 대중을 잡아끄는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음악은 결코 아니다. 그 점에서 허클베리핀의 5집은 변화가 감지된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거다. 슬프고 어두운 정서는 유지하되 절망과 대중적 한계를 극복하는 매혹적인 사운드를 구현하라! 이번 앨범의 흥미로운 점은 논리적으로 모순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타이틀 <까만 타이거>는 허클베리핀의 '슬픈 자화상'이자 진지한 뮤지션들이 꿈꾸는 이상향을 대변한다. 이기용은 "호랑이는 백수의 제왕이다. 타이틀을 생각했을 때 하얗게 눈 덮인 설원을 걸어가는 까만 호랑이가 떠올랐다.

홍대에서 오랫동안 밴드생활을 해오며 음악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늘 고독했다. 하지만 우리 음악이 이 영토 안에서는 누구도 건들지 못하는 제왕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한다. 설명을 듣고 가사를 음미하며 노래를 다시 들어보니 눈물 나도록 슬퍼서 아름다운 노래다.

5집 수록곡들은 음반 발표 전까지 여려 곡의 제목이 수정되었다. '숨 쉬러 나가다'는 'Salt Bird', '비틀 브라더스'는 'Brothers', '폭탄위에 머물다'는 'Stay On Bomb', '시간은 푸른 섬으로'는 '날이 새도록'이 원제목이다.

제목에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 이 노래들은 기존의 허클베리핀 음악질감 즉 소외된 자들과 세상의 부조리를 향한 처절한 외침이 담긴 노래들이다.

처음 선동적 느낌이 강했던 노래들은 음악의 매력을 죽인다는 생각에 음악적으로 가사와 제목을 수정했다. 쉽게 말하면 이번 앨범은 이전까지의 트레이드였던 어깨에 잔뜩 들어간 힘을 뺀 음반이다. 진중함을 걷어낸 목적은 명료하다. 좀 더 많은 대중에게 오래 벗할 수 있는 노래를 선사하기 위함이다.

이번 앨범은 이소영의 보컬에 무게 중심을 두고 진행된다. 코러스도 거의 없고 리더 이기용의 보컬은 10번 트랙 'too young' 말미에서 잠깐 나올 뿐, 제대로 부른 노래는 마지막 트랙 '폭탄위에 머물다'가 유일하다.

또한 늘 인상적인 기타리프로 청자들을 매료시켰던 이기용의 기타 리프는 뒤로 물러나고 루네의 환상적인 키보드가 대신한 점도 하나의 변화다. 또한 리듬을 강화하기 위해 한음파의 장혁조에다 게이트플라워즈의 유재인까지 합세한 베이스의 리듬감에 김윤태를 대신한 <자우림>의 드러머 구태훈의 감각적인 비트에다 퍼큐션 송명훈까지 가세시켰다.

첫 트랙 '숨 쉬러 나가다'는 서정적 멜로디와 진성과 가성을 넘나드는 이소영의 보컬이 귀에 감겨오는 아름다운 노래다. 이 노래는 조지 오웰의 최초 장편소설을 번역한 이한중의 소설제목이 마음에 들어 인용했다.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인 '쫓기는 너'는 물론이고 '도레미파'와 'GIRL STOP'도 절로 어깨가 흔들어지는 탁월한 리듬감을 구현하고 있다. 특히 3집의 '춤추는 고양이'에 이어 이소영이 두 번째로 작사한 'Girl Stop'은 은근한 관심을 유도하는 섹시한 가사와 리드미컬한 밴드의 하모니가 압권이다.

앨범 전체는 아니지만 사회성이 진하게 반영된 'Time to say'에서 트럼펫, 트럼본, 색소폰 같은 브라스의 도입은 흥미롭다. 질풍노도와 같은 리듬과 아름다운 보컬 하모니로 전 세계인을 사로잡았던 브라스 밴드 시카고와 블러드, 스웨트 앤 티어즈(Blood, Sweat & Tears)의 신나는 브라스 록을 듣는 것 같은 착각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7번 트랙 '빗소리'를 기점으로 '비틀 브라더스'부터 마지막 곡 '폭탄 위에 머물다'는 허클베리핀의 기존 스타일을 고수한 트랙들이다. 홍대 청소노동자 사태를 보면서 만든 '폭탄 위에 머물다'는 "하루 식대 300원 얘기를 듣고 노래 제목을 300으로 할까 생각했었다."고 한다.

뜨거운 사랑도 유통기한이 있다. 음악 역시 완성도가 높은 진지한 스타일만 추구한다면 대중과는 거리를 두게 마련이다. 5집을 통해 보여준 허클베리핀의 변화는 대중과의 소통을 의식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