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로맨틱 코미디 유토피아적 사고로 시청자 현혹

MBC '내 이름은 김삼순'
유토피아. 실제론 존재하지 않는 무형의 그 곳. 그러나 누구나 바라는 이상향을 뜻한다. 그러나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목을 매고 바라는 건 이상하지 않을까.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유토피아적 사고를 TV드라마를 통해 보고 있다. 2005년 MBC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현실적 로맨틱 코미디'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 물론 여성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말이다.

이 '현실적'이라는 단어는 김삼순 신드롬을 낳았던 초석이었다. 나이도 많고, 뚱뚱하고, 집안에서 천덕꾸러기였던 김삼순은 한국의 모든 여성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나, 너 그리고 우리일 수도 있는 그런 캐릭터였다.

현실적으로 가능해 보이는, 실존해 보이는 인물일 것 같은 기대감이 그녀를 신드롬으로까지 만들어 놓았다. 그 결과 시청률 50%를 넘나들었으니까. 현실이 반영된 것 같은 이 여성 캐릭터는 '나도, 너도, 우리도, 삼순이처럼'이라는 희망을 품게 했다.

이런 마법과도 같은 전략은 로맨틱 코미디의 전술처럼 통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이런 유토피아적 상술로 '제2의 삼순이'를 노린 작품들이 많았다.

SBS '보스를 지켜라'
로맨틱 코미디라는 허울 좋은 울타리로 말이다. SBS <시크릿 가든>은 이런 공식에 충실했다. 가난하고 우직하며 솔직한 여주인공 길라임과 역시 삼순이의 짝꿍처럼 도도하고 까칠한 세상물정 모르는 김주원의 궁합은 홈런을 날렸다.

옷깃도 스치지 않을 것 같은 스턴트우먼과 백화점 사장과의 허무맹랑한 스토리는 순전히 캐릭터의 힘으로 성공했다. 뚱뚱하고 나이 많은 김삼순의 여운이 가난하지만 우직하고 성실한 길라임으로 투영돼 공감대를 이끌어 낸 것이다.

하지만 얼마 전 종영한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좀 다르다. 문화체육관광부 5급 공무원인 공아정이 한 그룹의 대표이사인 현기준과의 거짓말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떨어졌다.

실수투성이에 발랄한 캐릭터인 공무원 캐릭터는 뭇 여성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김삼순처럼 나이가 많거나 뚱뚱하지도 않았고, 길라임처럼 가난하거나 과격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공아정 캐릭터는 여성 시청자들에게 버림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김삼순표'라는 수식어를 살짝 숨긴 채 유토피아적 사고를 지향하는 작품들이 또 등장했다. SBS <여인의 향기>와 <보스를 지켜라>. 김삼순이었던 배우 김선아의 귀환을 알린 <여인의 향기>는 역시 노처녀라는 핫 이슈를 달고 나타났다. <보스를 지켜라>의 노은설도 재벌 3세의 초짜 비서로 얼굴을 내민다.

SBS '시크릿 가든'
김삼순처럼 '현실에 있을 법한' 캐릭터를 표방한다. 그러기에 두 캐릭터는 너무도 닮아 있다. 이연재와 노은설은 외모, 학력, 집안이 별로인 우리나라 대다수의 국민들이 스스로 느끼는 배경의 소유자들이다. 이연재는 주목받고 있는 30대 싱글녀의 대표주자로 능력마저 의심되는 처자다.

노은설은 88만원 세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인물. 취업난에 허덕이는 현재의 미취업자들을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여기에 포인트가 있다. 바로 현실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여 여성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려는 트릭이다. 아무리 현실적 캐릭터들의 조합이라고 해도 한 회사의 대표나 사장(이제 실장급 인사는 존재하지도 않는다)과의 로맨스는 결국 현실적이지 않은 허상이다.

많은 여성들이 바라는 로맨틱 코미디는 결국 김삼순의 뒤에서 아토피아적 사고로 시청자를 현혹한다. 뻔한 전개가 예상되지만 공감적 분위기를 애써 만들어가면서 신분상승의 엘리베이터라는 대중의 욕망을 대신한다.

결말이 뻔한 이야기지만 기대하고 기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15세기 토머스 모어가 말한 '유토피아'는 환상에만 존재할 뿐 눈에 보이지 않는 꿈이다. 유토피아적 사고가 허망한 건 유토피아는 결국 '없다'는 또 다른 의미이기 때문은 아닐까.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