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명반ㆍ명곡] 주찬권 솔로 1집(1988년)20년이 지나도 세련된 연주와 보컬 돋보여

어느 시대나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며 무수한 히트곡을 양산한 엔터테이너는 넘쳐난다. 대중은 그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그들의 화려한 무대에 열광하지만 예술가의 지위를 부여하는 데는 인색하다.

히트곡이란 그저 일회용품 같은 소모품이란 이야기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일반대중은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감동적인 노래나 진지하고 참신한 실험성과 예술성을 담은 창작앨범에는 그다지 호의적이질 않다. 노래가 어둡고 진지하면 머리 아프다며 곧바로 외면하는 대중도 적지 않다.

상당수의 대중은 그저 익숙한 멜로디나 유행에 민감한 트렌드 음악에 더 호감을 드러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음악 장르를 넘어 모든 예술분야의 창작자들은 영원히 풀 수 없는 난제에 직면한다.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예술가'의 지위에 걸 맞는 뮤지션의 개체 수는 어느 정도나 될까? 최근 아이돌이 지배하는 대중음악계에 <사랑과 평화>의 최이철, <신촌블루스>의 엄인호와 함께 프로젝트 밴드 <슈퍼세션>을 결성해 신선한 음악적 충격을 안겨준 80년대의 전설적인 록밴드 <들국화>의 드러머 주찬권은 이 부문에서 거론할 가치가 충분한 아티스트다.

명반으로 공증된 <들국화> 1집에 참여했던 원년 멤버인 그는 데뷔 이래 지금까지 진지한 음악적 태도를 잃지 않고 외길 음악인생을 걸어온 대중음악 예술가의 전형이다.

그에게 화려했던 <들국화> 시절은 영광의 기록인 동시에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이다. 밴드 해체 후 솔로로 독립한 그는 지금까지 5장의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 하지만 대중은 여전히 그를 <들국화>의 '주찬권'으로만 기억하려 든다.

이는 탁월한 연주력과 음악성을 담보한 빛나는 솔로 앨범을 발표했지만 대중이 기억할 히트곡의 부재가 빚어진 필연적 결과일 수도 있다. 그의 솔로 음반들은 평가받을 가치가 충분한 탁월한 록 음반이지만 대중적 조명을 받지 못하고 사장된 비운의 앨범이기도 하다.

1988년에 발표된 그의 솔로 1집은 록 마니아들로부터 '한국의 에릭 클랩튼'이란 평가를 이끌어낸 수작이다. 실제로 20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세련된 연주와 중독성 강한 보컬이 안겨주는 매력이 넘쳐난다.

탄탄한 연주력으로 채색되어 듣는 즐거움이 무한한 주찬권 1집은 미국 남부의 신나고 경쾌한 서든 록, 브리티쉬 록, 재즈 록 등이 절묘하게 화학 작용하는 품격 높은 사운드를 구현했다.

사실 밴드 활동시절 연주력은 최고였지만 가창력으로 어필했던 뮤지션은 아니었기에 그가 첫 솔로앨범을 발표했을 때 기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모든 곡을 직접 노래하고 작사, 작곡, 편곡에다 파워풀한 드럼 연주에다 기타 연주까지 선보인 그의 멀티 플레이어 재능은 눈이 부셨다.

1집은 총 10곡의 창작곡이 수록되었다. 모든 트랙들은 드러머 주찬권이 아닌 보컬리스트, 기타리스트로서 주찬권을 재발견시켜줄 만큼 훌륭한 연주와 흥미로운 보컬의 기운이 넘실거린다.

첫 트랙 '다시 만날 때까지'는 편안한 느낌의 발라드 록 버전이다. 리듬감이 탁월한 서든 록 '기다려줘요' 또한 주찬권의 작렬하는 드럼 비트가 절로 몸을 흔들게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노래에서 최고의 여성재즈보컬 나윤선이나 말로에게서나 경험할 스캣 애드리브를 그가 23년 전에 이미 시도했다는 점이다.

작고한 들국화 허성욱의 풍성한 키보드 사운드가 시종 청자를 마음을 사로잡는 '왠일로'는 주찬권의 내공 깊은 기타 리프에다 진성과 가성을 넘나드는 가창력으로 그의 무한 가능성과 존재가치를 입증한다.

전작의 감흥을 이어주는 '나를 보면'은 에릭 클랩튼의 보컬 질감을 연상시키는 보컬이 인상적이고 드럼 비트가 쭉 빠진 '소리 없이'는 일렉트릭 기타와 어쿠스틱 기타 2대가 펼치는 담백한 앙상블이 근사하다.

'모습들'은 허성욱의 날라 다니듯 경쾌한 키보드와 서정적 질감이 뿜어 나오는 주찬권의 기타 연주 그리고 강력한 드럼 비트와 시원하게 내지르는 보컬까지 네 박자가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명곡이다.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