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명반ㆍ명곡] 남성듀오 어니언스 '편지'(1973년)청소년층에 '펜팔 열풍' 일으키며 빅히트

디지털 세상이 되면서 사라지고 있는 것들은 무수하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편지다. 과거 아날로그 시절, 사람과 사람간의 소통을 상징했던 편지는 이제 이메일과 핸드폰 문자에 밀려 우리의 실생활에서 사실상 사라졌다.

컴퓨터 좌판으로 글을 쓰는 요즘, 깨알처럼 또박또박 편지지를 가득 써내려갔던 편지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가을의 초입에 들어서니 문뜩 그리운 이들에게 편지를 써 우표에 침을 발라 보내고 싶은 충동이 방망이질 친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말로 하는 것 보다 편지로 보내는 것이 진실 된 느낌을 더 강력하게 전달하는 경향이 있다. 당대의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 방안 가득히 버려진 편지지가 나뒹구는 장면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짝사랑하는 이웃집 여학생이나 오빠, 누나에게 근사한 연애편지를 보내고 싶어 밤 세워 편지를 써보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 그래서 글씨체가 예쁘고 문장이 수려한 친구들은 꽤나 인기가 있었다.

연애편지 전문가 친구에게 부탁해 어렵게 연애편지를 완성해도 전달할 용기가 없어 그냥 책가방 속에 결국 묵혔던 그 시절의 순수함이 무척이나 그립다.

지금은 듣고 싶은 노래나 사연을 방송국의 홈페이지에 올리거나 핸드폰 문자메시지로 보낸다. 과거엔 몇 개 되지 않았던 방송 음악프로그램에 자신의 사연과 신청곡이 채택되기 위해선 눈물 나도록 공을 들여야 했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담은 장문의 편지는 기본이고 다른 이들과 차별되는 독특하고 예쁜 엽서를 만들기 위해 손수 그림을 그리고 근사한 시까지 써 보냈다.

어쩌다 보낸 엽서가 채택되어 신청곡과 사연이 방송에 소개되는 날이면 학교에 소문이 자자하게 났을 정도였다. 이에 각 방송국은 애청자들이 보낸 예쁜 엽서 편지들을 모아 전시회까지 경쟁적으로 열었다.

지금은 희귀해진 편지지만 70-80년대에는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학생층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국내외 펜팔 전성시대였던 당시 대중가요나 팝송 노래책 그리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잡지 뒤쪽을 보면 펜팔을 원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주소가 끝도 없이 담겨있었다.

애인 원함, 친구 원함, 오빠 원함, 진실한 펜 벗 원함 등 원하는 상대 또한 다양했었다. 시대적 트렌드에 민감한 대중가요의 장르적 특성상 편지가 그 시절 노래의 중요 소재로 사용된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임창제, 이수영으로 구성된 남성듀오 어니언스의 빅 히트곡 '편지'는 청소년층에 펜팔 문화 열풍을 가속화 시킨 한 명곡이다. 건장하고 노래 잘 부르는 임창제와 잘생긴 이수영의 절묘한 조합은 '포크 전성시대의 종결자'라 불릴 만 했다.

트윈폴리오, 한대수, 김민기등 1세대 포크가수들이 학생층을 기반으로 한 엘리트층에 한정된 지지계층을 형성했다면 어니언스는 지지계층을 파괴하며 포크송의 수용대상을 전 국민으로 확대시킨 일등 공신이다. 어니언스의 뿌리는 보컬그룹 <히치 하이커>다.

1971년 진석황과 함께 남성듀오 히치 하이커를 결성해 활동했던 이수영은 임창제의 음악성이 마음에 들어 여성 멤버 윤혜영과 함께 혼성 트리오로 체질개선을 했다.

<어니언스> 즉 '양파들'이란 팀명은 주간한국 연예기자출신인 정홍택의 근사한 작명이다. 1972년 TBC 신인가요제에 출전한 트리오 어니언스는 대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주목받는 신인보컬그룹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팀 운영상의 문제로 곧 남성 듀오로 재편되었다.

1973년 발매된 '편지'를 비롯해 '작은새', '저별과 달을'등이 수록된 어니언스의 첫 독집은 포크음반 사상 최고의 신화를 남겼다. 특히 '편지'는 그해 동경가요제 본선에 진출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리듬감 넘치는 전자음악을 포크에 접목해 포크송의 수용 층을 확대시킨 이 앨범의 편곡자 안건마의 이름 또한 기억할 가치가 충분하다.

<편지>는 발표당시에는 헤어진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애틋한 메신저 역할을 해냈고 지금은 아날로그 시절의 편지에 대한 추억을 되살려주는 명곡으로 각인되었다.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