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16년만에 고향팀 KIA 복귀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 스타로 손꼽히는 선동열(48). 그는 감독으로서 2005년과 2006년 삼성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겼다. 당시 환호했던 대구팬은 언제부턴가 선동열 감독에게 등을 돌렸다. 대구에서 광주 출신 감독이 좌지우지하는 게 싫었다. 이런 까닭에 '삼성은 공격 야구인데 선동열은 지키는 야구만 한다'는 말이 퍼졌다.

삼성은 지난해 연말 전격적으로 선 감독에게서 지휘봉을 뺏었다. 이 틈을 타 KIA는 조범현 감독을 물러나게 하고 선동열을 사령탑에 올렸다. 95년까지 해태 타이거즈(현 KIA)에서 에이스로 활약했던 선 감독은 무려 16년 만에 고향팀에 복귀했다. 선 감독은 21일 광주에서 선수단과 상견례하면서 공식적으로 감독 업무를 시작했다.

삼성 류중일·한화 한대화…

광주일고를 졸업한 호남야구의 상징 선동열, 경북고와 삼성을 거친 걸출한 유격수 류중일, 대전고 출신 거포 3루수 한대화, 두산 순혈주의를 상징하는 김진욱. 이들은 순혈주의 바람이 분 프로야구판에서 친정팀 사령탑에 올랐다는 공통점이 있다.

프로야구 8개 구단 가운데 절반인 4개 구단이 새 감독으로 연고지를 상징하는 인물이거나 소속팀 출신을 선택했다. 관중 600만 시대를 맞은 프로야구가 성적 못지않게 연고지 팬을 의식한다는 뜻이다. 소속팀 출신만 선호하는 순혈주의에는 배타와 이기, 지연과 학연 등 부정적인 요소가 많다. 그러나 인기와 실력을 갖춘 연고지 출신 스타를 사령탑에 앉혀 연고지 팬의 전폭적인 지지를 끌어내는 등 긍정적인 요소도 많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선동열 감독은 "9회말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을 강화해 팬들이 즐거워할 수 있는 야구를 하겠다"고 말했다. 삼성 감독 시절 성적을 위해 '지키는 야구'를 강조했지만 고향팀에선 타이거즈의 전통을 잇겠다고 다짐했다. 잘 치고, 잘 달리고, 잘 던지는 호쾌한 '해태 야구'를 그리워했던 호남 야구팬은 선동열이 KIA 감독이 됐다는 소식에 환호했다.

KIA는 선동열 감독을 보좌할 수석코치로 역시 해태 출신인 이순철 전 LG 감독을 선택했다. 이순철 수석코치는 헝그리 정신을 강조하면서 "배고파하면서 야구를 하자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절박하게 야구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고 말했다. 실력과 인기, 그리고 카리스마로 똘똘 뭉친 선동열 감독과 이순철 수석코치의 등장으로 호남야구팬은 벌써 내년 시즌 개막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야구 감독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어려운 자리다. 같은 값이면 프랜차이즈 스타를 감독으로 뽑는 게 낫기 마련이다. 호남 야구팬의 눈에는 자신의 우상이었던 선동열이 삼성 감독이었던 게 거슬리지 않았겠나? 야구팬의 마음에 맞는 감독 선임이라는 점에선 순혈주의도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뻔한 경질 '자진 사퇴' 포장

지난해 1위부터 6위에 올랐던 구단은 SK 김성근 감독부터 LG 박종훈 감독까지 모두 경질했다. 공교롭게도 7위 넥센 김시진 감독과 최하위 한화 한대화 감독만 아직 지휘봉을 잡고 있다. 넥센과 한화는 올해도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전력이 워낙 약해 팬들의 기대 수준까지 낮은 덕분에 선수보다 감독에 대한 인기가 높은 편이다. 프로야구 역사가 30년 이상 지속하면서 성적보다 우선되는 변수가 나오고 있는 셈이다.

선동열 감독 KIA행 소식은 야구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지만 '조범현 감독이 자진해서 사퇴했다'는 18일 KIA 보도자료는 논란을 만들었다. 삼성도 지난해 12월 30일 선동열 감독이 용퇴했다고 발표했다. 당사자였던 선 감독은 당시 "변화와 쇄신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감독 자리에서 물러나지만 자진 사퇴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었다.

1등주의가 만연한 프로야구에서 감독 교체 보도자료는 천편일률적이다. 계약기간이 3년이나 남은 LG 박종훈 감독이 해고될 때도 자진 사퇴라는 보도자료가 발표됐다. 이런 까닭에 삼척동자라도 뻔히 알만한 경질을 자진 사퇴로 포장하는 건 야구팬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허구연 해설위원은 "퇴임하는 감독의 체면을 살려주고자 구단이 예의와 모양새를 갖췄다"고 해석했다. 허 위원은 "정부 관료 교체도 웬만하면 해임보다 사퇴로 발표된다. 조범현 감독처럼 구단 뜻에 따르면 자진 사퇴로, SK 김성근 감독처럼 구단과 갈등하면 해고로 표현된다"고 설명했다. 물러나는 사람 심정은 이해하지만 자진 사퇴라는 모양새가 나을 수 있고, 이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오래된 관행이라는 의미다.

KIA는 광주는 물론이고 서울과 인천에서도 관중 동원 능력이 최고로 손꼽히는 전국구 구단이다. 한국야구위원회는 고향 광주로 돌아간 불세출의 스타 선동열 감독을 앞세워 관중 700만 시대를 꿈꾸고 있다. 여기에 삼성 복귀를 암시한 '국민타자' 이승엽의 가세도 프로야구 흥행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