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마’ 속 인터뷰, 우승 강박관념 날리고 명문구단 토대 구축

전북 현대의 ‘닥공(닥치고 공격)’은 올 시즌 미디어데이에서부터 시작됐다.

‘봉동 이장’ 최강희(52) 전북 감독은 “닥공을 하겠다”고 팬들에게 약속했다. 전북은 극단적인 공격 성향으로 경기당 2.23골(2위 포항 경기당 1.97골)이라는 한 시즌 경기당 최다득점 기록을 세웠다. 화려한 공격력 때문에 경기에서 지더라도 팬들은 박수를 보냈다. 우승 직후 감사 인사를 다니느라 눈코 쉴새 없이 바쁜 최 감독은 5일 전주에서 가진 ‘애마(제네시스) 동승 인터뷰’에서 ‘닥공’의 진실에 대해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우승컵 앞에서도 ‘닥공’, “우리 감독 미쳤다”

전북은 4일 끝난 챔피언결정전에서 울산 현대를 물리치고 K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최 감독은 ‘닥공’으로 인해 재미와 성적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닥공’의 드라마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하지만 시즌 초에는 최 감독과 선수들 모두 ‘닥공’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반신반의했다. 최 감독은 “팬과 약속을 했기 때문에 공격적인 축구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무식하다고 할 만큼 공격에 치중했고, 홈에서만큼은 한번도 수비적으로 나선 적이 없다”며 “선수들도 공격적인 전술을 잘 해낼 줄 몰랐다. 하지만 계속해서 감독이 공격적인 경기 운영을 하다 보니 선수들도 습관화됐다”고 털어놓았다.

너무 극단적인 공격 전술이라 선수들이 의아해한 적도 많았다. 최 감독은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후반 9분 수비형 미드필더 정훈 대신 정성훈을 투입하며 공격수 숫자를 늘려 ‘닥공’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그러자 수비형 미드필더로 맡고 있었던 김상식은 죽을 표정을 지었다. 최 감독은 “(김)상식이가 “우리 감독님이 미쳤나”라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우승컵이 걸려있음에도 안정적으로 하지 않고 공격 카드를 꺼낸 것을 보고 놀란 눈치더라. 평소에도 그런 표정을 종종 지어서 이제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고 껄껄 웃었다.

▲2008년 두 차례나 사임 고려

지난 2005년 7월 전북의 사령탑을 맡은 최 감독은 FA컵(2005년) 우승을 시작으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2006년), K리그(2009, 2011년)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최 감독은 “이번 우승으로 축구강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명문구단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이제 많은 사람들이 전북을 인정해줘서 행복하다. 그리고 별 하나를 더 달아서 팬들에게 확실한 인식의 마침표를 찍었다”고 덧붙였다.

명장 최 감독도 2008년 성적 부진으로 인해 사임을 고려한 적이 있다. 그는 “2008년 개막 후 5경기에서 1무4패를 거뒀다. 당시에는 사퇴 압박도 있어서 2번이나 사표를 낼까 했다”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전북이 2006년 아시아를 정복했음에도 구단 지원이 부족해 최 감독은 원하는 선수단을 꾸리지 못했다. 그는 “지금까지 하대성(서울)을 제외하고 구단에서 한 번에 영입 오케이 사인을 낸 적이 없다. 그만큼 지금의 선수단을 구성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지금 우리 선수들만 보고 있어도 배가 부르다”고 만족해했다.

▲축구선수 사위는 싫어

최 감독은 어쩔 수 없이 ‘나쁜 남편 나쁜 아빠’가 됐다. 전북 사령탑을 맡으면서 가족이 함께 모이는 횟수가 한 달에 2, 3번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최 감독은 시즌 후 반드시 ‘가족여행’을 떠난다.

세미 프로를 뛴 뒤 지금은 티칭 프로의 길을 걷고 있는 최혜림(23)씨가 최 감독의 외동딸이다. 혹시 ‘축구 선수 중 점 찍어 둔 사위가 있느냐’는 질문에 최 감독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내가 먼저 반대를 할 것이다. 나한테 데일 만큼 데였으면 됐다. 다행히 딸도 축구 선수를 소개해달라는 말을 안 했다.”

▲또 다른 친숙한 이름 ‘이장님’

최 감독에게 11월5일 챔피언스리그 결승은 지우고 싶은 악몽이다. 전북은 알 사드에 승부차기 끝에 패했다. 선수와 감독 모두 우승 후유증에 시달렸다. 최 감독은 “꿈을 잘 꾸는 편이 아닌데 가위에 눌리는 등 악몽에 시달렸다. 꼭 새벽 3, 4시면 깨서 운동을 하러 나간 적이 있다”며 “3일 휴식 후 선수들을 만났는데 다들 여전히 기운이 없어 회복훈련만 했다”고 고백했다.

‘봉동 이장’ 최 감독은 한 달간 우승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K리그 정상 등극으로 후유증을 말끔히 날려버렸다. 그리고 그는 선수단 숙소가 있는 완주군 봉동읍 주민들이 선물한 밀짚모자와 장화를 신고 멋진 ‘우승 세리머니’를 했다. 최 감독은 “팬레터 중 절반 이상이 ‘이장님에게’라는 글이다. 이장님이라는 친숙한 호칭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프로축구에는 ‘K리그 우승 후유증’이라는 게 있다. 우승한 이듬해 성적이 안 좋은 징크스다. “이제 더 이상의 후유증은 없다”고 외치는 ‘위대한 이장님’의 도전은 또다시 시작됐다.



전주=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