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맛쇼'
#장면1. 한 남자가 후루룩 소리를 내며 짬뽕을 열심히 먹는다.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을 보아하니 상당히 매운 듯 하다. 연신 땀을 훔치며 젓가락을 놓지 않는다.

#장면2. 남자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처음엔 깜짝 놀랐어요. 너무 매워서. 그래도 계속 먹게 되고, 계속 찾게 되요. 하하하."

#장면3. 식당의 전체적 풍경이 화면에 비춰지고, 주방에서 요리를 하던 요리사가 인터뷰를 한다. "저희 집 요리가 첫 맛은 상당히 매운데 뒷맛이 시원해요. 소스의 비법이요? 그건 비밀이죠."

맛집 소개 프로그램을 하면 흔히 떠올리는 그림이다. 다큐멘터리 (김재환 감독ㆍ제작 B2E)는 그런 의미에서 혁신이었다. 지상파 PD출신인 김재환 감독은 를 통해 일부 맛집 프로그램의 허구성을 고발했다. 외주제작사와 전문 브로커 음식점 사이에 어떤 거래가 오가고 그것이 방송으로 어떻게 구현되는지 보여줬다. 그 안에는 방송 촬영만을 위해 만들어진 메뉴가 있었고, 앵무새처럼 "맛있어요"를 외치는 보조출연자가 있었다. 김 감독은 직접 음식점을 차려 그 과정을 쫓았고, 적잖은 관객들은 충격을 받았다. 방송만을 위해 만들어진 메뉴가 있고, 앵무새처럼 맛을 표현하는 보조출연자가 있었다. 2011년 전주국제영화제의 화제작인 이 다큐멘터리는 강렬한 잔향을 남겼다.

그리고 1년. 맛집 소개 프로그램은 어떻게 변했을까.

# 정형화된 포맷 탈피

"맛이 없어요."사장님의 얼굴이 굳었다. 가게 주인이 내준 음식을 먹고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맛이 없다고 하니 놀랄 수 밖에. 물론 그 말의 뜻은 쓴맛이나 짠맛 등 맛이 느껴지지 않는 무(無)맛이란 이야기였지만 시청자들은 황당한 상황에 폭소했다.

바로 MBC '생방송 금요와이드'의 '사유리의 식탐여행'이다. 평소 엉뚱한 말과 행동으로 웃음을 주는 방송인 사유리를 내세운다. 맛집 소개 프로그램의 필수요소가 여기엔 없다. 식당을 자세히 묘사하는 내레이션이나 들뜬 표정으로 어떤 맛인지 설명하는 손님들은 나오지 않는다. 식당의 전경도 보여주지 않는다.

'사유리의 식탐여행'은 식상한 포맷에서 탈피한 프로그램이다. 오로지 사유리와 식당 주인만 나온다. 사유리가 종종 '몸뻬'를 입거나 기괴한 가발을 쓰고 나오는 정도다. 맛이나 취향에 대한 표현도 거침없다. 까르보나라 치킨을 파는 사장 앞에서 "저 까르보나라 싫어해요"라고 단호하게 외치고, 알쏭달쏭한 표현으로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매운 족발을 까다로운 시어머니에, 은근한 잔치국수를 따뜻한 시아버지에 비유하는 식이다. 솔직한 사유리의 평가가 신선하다. 단 음식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나 분석이 없는 것이 아쉽다.

# 고발 프로그램으로 선회

종합편성채널 채널A '이영돈PD의 먹거리 X파일'은 아예 성격을 달리한다. 맛집이 아닌 착한 식당을 찾는다. 착한 식당의 기준은 안전하고 정직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곳이다. 몇몇 전문가들이 '암행취재'를 한다. 이들은 식당을 찾아가 직접 먹어보고 주인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던지기도 하면서 취재를 한다. 촬영과 취재 모두 주인에겐 비밀로, 대부분 모자이크 처리된다. 이 후 전문가들이 모여 하나의 식당을 선정하고, 선택된 식당을 PD가 다시 찾아가 정식 취재를 요청한다.

금요일 심야 시간에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1%대. 종편의 시청률 부진을 고려할 때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다큐멘터리 형식 진행이 흥미를 돋우고, 전문가들이 직접 평가하는 방식이 신뢰를 더 하기 때문. 장인정신을 고집하며 번거로움을 자처하는 '착한 식당' 주인들의 사연 자체로 감동을 자아내기도 한다.

의 김재환 감독이 제작에 나선 종편 JTBC '미각스캔들'도 눈 여겨 볼만한 프로그램이다. 맛집을 다루고 있진 않지만 먹거리의 진실과 거짓을 깊게 파고들어 "볼만하다"는 시청자들의 평가다.

# 자성 움직임 조금씩…

몇몇 프로그램을 제외하고 여전히 맛집 소개 프로그램은 비슷한 포맷을 유지하고 있다. 음식을 맛깔스럽게 화면에 담고, 연신 찬사를 보내는 손님들이 등장한다. 에 나온 브로커와 함께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들은 여전히 진행형일지도 모른다.

제작진들은 이에 대해 직접적으로 입을 열지 않는다. 가 공개된 이후에도 지상파 방송국들은 모르쇠를 일관했다. 한 방송사는 개봉 전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냈고, 한 외주사제작사는 김재환 감독을 상대로 명예훼손으로 고소장을 접수하기도 했다. 지금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을 꺼리고 있다. 하지만 당시 논란이 됐던 프로그램 등은 사라졌고, 조금이나마 자성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사유리의 식탐여행'이나 '착한 식당 찾기'가 그러하다.

한 제작진은 30일 스포츠한국과의 전화통화에서 "정형화된 프로그램을 탈피하려는 노력은 항상 있어왔기 때문에 가 직접적인 동기가 되지는 않는다"며 "하지만 제작진들에게 영향과 놀라움을 준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김윤지기자 jay@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