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쌍방울-2012년 넥센 'Old&New'

올시즌 넥센의 돌풍을 이끌고 있는 '든든한' 3번타자 이택근.
넥센이 올 시즌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시범 경기를 2위로 마칠 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정규 리그에 들어간 뒤에도 상승세는 이어졌다. 지난달 중순에는 2008년 팀 창단 후 최다 연승인 8연승을 질주했다. 6일 현재 25승1무22패로 1위 SK에 1게임 뒤진 2위에 자리하고 있다.

만년 하위 팀의 반란이다. 1996년 쌍방울을 떠올린다. 쌍방울은 1991년부터 1995년까지 암흑기를 보냈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이 1996년 지휘봉을 잡은 뒤 쌍방울은 달라졌다. 많은 훈련을 통해 기량을 끌어올렸고, 13연승을 내달렸다. 2위(70승2무54패)로 정규리그를 마쳐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김시진 넥센 감독은 "우리는 아직 시즌 초반이다. 쌍방울 돌풍과 비교하기에는 이르다"고 자세를 낮췄다.

두 팀은 같은 듯 다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프로야구의 과거와 현재에 신선한 활력소를 불어넣었다는 점이다.

'간판 타자' 김기태-이택근, 팀 구심점으로
팀 위한'희생플레이'로 결속력 UP
신예들의 깜짝 활약도 두드러져

▲팀의 구심점 쌍방울 김기태, 넥센 이택근

1996년 쌍방울 돌풍의 주역. 간판타자 '왼손 거포' 김기태.
1996년 쌍방울, 2012년 넥센 돌풍에는 확실한 구심점이 있다. 쌍방울은 왼손 거포 김기태가 버티고 있었다. 부상 탓에 126경기 중 91경기밖에 뛰지 못했지만 타율 2할9푼7리 12홈런 53타점을 올렸다. 자신의 기록보다 팀을 위한 타격을 했다. 나쁜 공이 들어오면 그대로 흘려 보내 볼넷으로 걸어나갔다. 심성보 등 후속 타자에게 기회를 만들어줬다. 간판 타자의 희생은 팀을 결속시키는 힘이 됐다.

이택근도 넥센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넥센이 자유계약선수(FA) 계약으로 총 50억원을 쏟아 부은 가치가 있다. 이택근은 3번에서 욕심내지 않고 출루에 신경 쓴다. 타율이 2할7푼9리에 그치고 있지만 출루율은 3할5푼이다. 또 그라운드 안팎에서 파이팅을 외치며 후배들을 독려한다. 이택근은 4번을 맡고 있는 박병호에게 "삼진을 당해도 좋으니 4번 타자답게 당당한 스윙을 해라"고 조언했다. 박병호는 선배의 조언을 새겨 들은 덕분인지 12홈런(공동 3위) 45타점(1위)로 해결사 능력을 뽐내고 있다.

두 팀의 또 다른 공통점은 신예의 깜짝 활약이다. 쌍방울은 신인 석수철이 데뷔 첫 해부터 3루를 책임지며 타율 2할6푼6리 3홈런 32타점으로 알토란 같은 활약을 했다. 넥센은 신고선수 서건창이 빠른 발과 안정된 수비로 주전 2루 자리를 꿰찼다.

'벌떼 야구' 불펜의 힘 vs 탄탄한 선발진
'엄격 '김성근'- 온화 '김시진
감독들간 리더십 차이도 극명

▲쌍방울은 불펜의 힘, 넥센은 탄탄한 선발진

넥센의 김병현.
투수 운용은 두 팀이 극명하게 갈렸다. 쌍방울은 선발이 약했다. 성영재가 10승5패를 올렸을 뿐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둔 선발 투수가 없었다. 김성근 감독이 택한 방법은 '벌떼 야구'다. 데이터에 기반한 중간 계투진을 최대한 활용했다. 사이드암 김현욱을 비롯해 최정환, 오봉옥, 박진석 등 수많은 투수를 투입했고, 마무리 조규제가 경기를 끝냈다. 쌍방울이 2위로 시즌을 마칠 수 있던 원동력은 불펜의 힘이 컸다.

반면 넥센은 선발진이 탄탄하다. 두 외국인 투수 나이트와 밴 헤켄이 벌써 10승을 합작했다. 김영민과 강윤구도 선발 로테이션을 꾸준히 지키고 있다. 김병현까지 몸 상태를 완벽히 끌어올린다면 어느 팀 부럽지 않은 선발진을 꾸리게 된다. 그러나 넥센은 중간이 다소 불안하다. 마무리 손승락 앞에 투입되는 필승조 이보근, 오재영이 믿음을 주지 못한다. 넥센이 쌍방울처럼 돌풍을 시즌 막판까지 이어가기 위해서는 필승조의 활약이 뒷받침돼야 한다.

두 팀은 또 감독들의 리더십에도 차이가 있다. 김성근 감독은 잘못한 선수가 있으면 직접 야단을 친다. 또 같은 실수록 반복하지 않도록 혹독한 훈련을 시킨다. 당시 유격수였던 김호 삼성 2군 코치는 "다른 팀보다 많은 훈련을 했다. 억울해서라도 꼭 이겼어야 했다"고 말했다.

김시진 감독은 선수들을 다그치지 않는다. 스트레스를 주기 보다는 보듬고 가르친다.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고 있다. 대신 책임감을 강조한다. 선발 투수가 부진하더라도 한계 투구수를 채울 때까지 마운드에서 내리지 않는다. 선수들에 대한 강한 믿음이 넥센을 강하게 만들었다.



김지섭기자 onion@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