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나지완(왼쪽)이 지난 3일 광주 두산전에서 9회말 2사 후 상대 마무리 투수 스콧 프록터가 머리 위쪽으로 향하는 빈볼을 던지자 격분하고 있다. 양 팀 선수들은 이날 순식간에 그라운드로 뛰쳐나가 벤치클리어링을 벌였다. 광주=연합뉴스
메이저리그와 국내 프로야구의 가장 큰 차이. 홈런 친 타자의 베이스러닝이다.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베이스를 빠르게 도는 반면 한국 타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맞는 순간 홈런을 직감해 타구를 뻔히 바라보거나 두 손을 번쩍 들면서 뛰기 시작한다.

홈런을 맞은 투수 입장에서는 기분 나쁠 수밖에 없다. 특히 동점 홈런이나 역전 홈런을 맞았다면 세리머니를 하는 타자가 더 얄밉게 보인다. 140년 역사를 지닌 메이저리그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타자들이 특별한 제스처 없이 베이스를 돌고 있다. 투수에 대한 배려이자 동업자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프록터와 나지완의 신경전, 결국 홈런 세리머니 문제

두산 외국인 투수 스콧 프록터(35)와 KIA 오른손 거포 나지완(27)은 지난 3일 광주 경기 도중 신경전을 벌였다. 프록터는 팀이 5-4로 앞선 9회말 2사 후 나지완이 타석에 들어서자 초구 직구부터 타자 머리 위쪽으로 향하는 위협구를 던졌다. 나지완은 순간 방망이를 땅에 내려 놓은 채 마운드 쪽으로 걸어갔고 양팀 선수들이 모두 몰려나가 벤치 클리어링으로 이어졌다.

프록터는 "위협구를 던진 것이 아니다"고 했지만 당시 해설을 맡은 손혁 MBC SPORTS+ 해설위원은 "현역 시절 경험상 공이 손에서 빠진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실수는 아니다"고 투수가 의도적으로 빈볼을 던졌다고 해석했다. 특히 프록터는 앞선 두 타자를 상대로 완벽한 제구력을 보여줬기에 의혹은 더 커져갔다. 그렇다면 왜 프록터는 빈볼을 택했을까.

이유는 약 한 달 전 벌어진 두 팀의 맞대결에서 찾을 수 있다. 프록터는 지난 5월30일 잠실 KIA전에서 나지완에게 홈런성 타구를 맞았다. 팀이 4-1로 앞선 9회초 2사 1ㆍ3루에서 초구 직구를 던지다 방망이 중심에 맞는 정타를 허용했다. 짜릿한 3점짜리 동점 홈런이 될 것이라고 느낀 나지완은 양 손을 번쩍 들고 제자리에서 껑충껑충 뛰었다. 느릿느릿 걸어가다 2루까지도 진루하지 못하는 우스꽝스러운 광경을 연출했다. 세이브 1위 프록터는 그 때의 기분 나쁜 홈런 세리머니를 잊지 않고 있었다. 비록 동점이 되지 않았고 팀이 이겼지만 나지완의 태도를 이해할 순 없었다. 마운드를 내려와 덕아웃에 들어와선 연신 "스투피드(stupid)!"란 말을 쏟아냈다는 것이다. 있을 수 없는 행동이고, 멍청한 몸짓이란 의미였다.

이처럼 외국인 투수들과 국내 타자들은 문화 차이로 갈등을 겪는다. 지난해 KIA에서 활약했던 왼손 트레비스 블랙클리는 두산 양의지, 한화 최진행 등이 홈런을 친 뒤 그라운드를 천천히 돌자 격분한 바 있다. 다른 대부분의 외국인 투수들도 한국 타자들의 홈런 세리머니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벤치 클리어링, 이럴 때도 나온다

야구에는 몇 가지 불문율이 있다.

'투수의 퍼펙트게임이나 노히트노런 기록이 진행 중일 때는 기습 번트를 대지 않는다', '큰 점수차로 이기고 있을 때는 도루를 하지 않는다' 등 상대한 대한 예절과 배려가 그 기본이다. 벤치 클리어링은 통상 이러한 불문율을 어겼을 때 어김없이 발생한다.

하지만 사소한 오해가 벤치 클리어링으로 이어질 때도 있다. 한화 김태균(30)과 롯데 김성배(31)는 지난 6월6일 대전에서 신경전을 벌였다. 김태균은 팀이 3-2로 앞선 7회 2사 1루에서 바뀐 투수 김성배가 초구에 던진 시속 135km 직구를 몸에 맞은 뒤 거칠게 항의했다. 허리를 맞은 김태균이 1루로 걸어나가며 투수 김성배를 쳐다봤고 이 과정에서 두 선수 사이에 입싸움이 오가다 결국 벤치 클리어링이 발생했다.

문제는 두 선수 간의 오해에 있었다. 김태균은 "모든 타자들은 투수가 일부러 빈볼을 던졌는지, 공이 손에서 빠진 것인지를 안다. 분명 빈볼이었다"고 말했다. 반면 김성배는 "공이 손에서 빠졌다. 릴리스 포인트가 뒤에서 형성돼 공이 몸쪽으로 붙었다"고 설명했다. 다른 롯데 선수들도 "점수 차가 얼마 나지 않아 빈볼을 던질 상황이 아니었다. 사이드암 투수인 김성배가 가끔 엉뚱한 곳에 공을 던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결국 당시 사건은 투수와 타자 간의 오해에서 발생했다.

야구에서 벤치 클리어링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선수들도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거친 몸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동업자 정신이고 상대에 대한 배려다. 이는 야구의 전통을 이어가는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함태수기자 hts7@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