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너는 프로야구 선수들의 치료와 재활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형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고민 상담도 해 주는'만병 통치사'다. 올시즌 넥센의 돌풍도 이지풍(가운데) 트레이너의 역할이 크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어느 때보다 치열한 순위 경쟁 가운데 부상자들도 속출하고 있다. 체력적으로 버거워지는 이 맘 때일수록 선수단에서 가장 바빠지는 이들이 있다. 바로 8개 구단의 트레이너들이다. 24시간 선수들과 함께 하며 치료와 재활에 도움을 주는 그들은 야구단의 숨은 공신이다.

▲때로는 형처럼, 친한 친구처럼

기본적으로 트레이너들은 보통 선수들의 기초 체력, 부상, 컨디셔닝(체력 훈련)을 관리한다. 부상자가 나올 경우 주치의와 상의해 수술과 재활 일정을 짜기도 한다.

그러나 트레이너라고 딱딱하게 선수들이 몸이 좋지 않을 때 치료만 한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경기장에서 항상 선수들과 함께 하는 그들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이지풍 넥센 트레이닝 코치는 "선수들과 모든 얘기를 공유한다. 대화의 주제는 야구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가령 연애 상담을 할 때도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지난달 2일 오랜 시간 왼 어깨 재활을 거쳐 1군 마운드에 오른 SK 왼손 에이스 김광현은 5이닝 무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다. 경기 후 그가 수훈 인터뷰에서 가장 먼저 꺼낸 이야기는 "홍남일 SK 컨디셔닝 코치에게 감사 드린다"는 말이었다. 재활하면서 힘든 점이 많았던 만큼 트레이닝 코치에게 공을 돌린 것이다. 홍 코치는 "함께 훈련을 하면서 힘들었지만 그런 말을 들으니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만큼 그들은 단순히 트레이너와 선수의 관계를 넘어서 형과 동생, 때론 친한 친구와 같은 사이다.

▲늘어난 트레이너의 역할, 공부는 필수

과거 트레이너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정보가 많지 않고 기술이 떨어져 선수들도 100% 신뢰하지 않았다. 부상에서 복귀하자마자 다시 수술대에 오르는 선수들은 그래서 나왔다. 의욕만 앞세워 경기에 나가다 다시 부상을 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선수들은 절대적으로 트레이너의 판단을 따른다.

트레이너의 역할이 늘어난 만큼 그들에게 끝없는 공부는 필수다. 점심 시간 이후에 경기장에 나오는 선수들과 달리 오전 일찍 사무실에 나온다. 선수들을 관리 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몸 상태도 중요 하기 때문에 체력 관리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조대현 한화 컨디셔닝 코치는 "8개 구단 트레이너들은 틈틈이 공부를 한다. 외국 사이트에 들어가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새로운 치료법을 배우고 있다"며 "과거에는 트레이닝(체육학과)과 치료(물리학과) 분야가 나눠져 있었지만 요즘은 두 가지를 모두 소화하는 추세로 다들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지풍 코치는 "스프링캠프를 해외로 갈 경우 현지에서 많이 배운다"며 "미국에 가서 트레이너들을 직접 보고 좋은 시스템과 방법들을 배우면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좋은 시스템을 갖추고 선수들을 잘 관리 할 수 있는지 수없이 고민하는 것도 트레이너의 몫이다.

▲트레이너의 고충과 보람

현장에서 치열하게 경기를 펼치는 선수들은 누구나 잔 부상을 안고 경기에 나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선수들이 어떤 부상이 있고 어느 정도 몸 상태를 갖추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령 선수 스스로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해 부상을 숨기고 경기에 출전했다가 큰 부상을 당했을 경우에도 트레이너들이 책임져야 한다. 모 트레이너는 "예전에 정말 대수롭지 않은 부상으로 1~2 경기 정도만 쉬면 될 정도라고 생각하고 경기에 나갔다가 시즌을 통째로 날려버린 경우가 있었다"며 "그런 경우 정말 난감하고 또 화가 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반면 트레이너들은 한결 같이 "함께 땀을 흘리고 훈련했던 선수가 재활을 잘 마치고 복귀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힘든 시간을 함께 보냈던 만큼 그라운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때 '이 일을 하기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이재상기자 alexe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