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여정
안정적인 연기력과 글래머러스한 몸매로 사랑을 받아 온 배우 이 때아닌 연기력 논란에 휩싸였다. KBS 2TV 새 월화 미니시리즈 '해운대 연인들'(극본 황은경ㆍ연출 송현욱)에서 선보인 어색한 사투리 억양 때문.

사투리는 최근 브라운관의 핫한 키워드다. 이 같은 열풍은 과거 사투리가 드라마 속 감초 역할 등을 통해 주변부에 머무르거나 예능에서 웃음의 소재가 됐던 것과 전혀 다른 양상이다.

이제 사투리는 극중 캐릭터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매개체가 됐다. 촌스럽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문화의 중심이 된 사투리 열풍에 대해 알아봤다.

지난달 종영한 SBS 드라마 '추적자, 더 체이서'(극본 박경수ㆍ연출 조남국)를 통해 연기 본좌로서의 면모를 확실히 드러낸 중견 배우 .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가족도 저버릴 만큼의 냉철함을 갖고 있는 서 회장 역할을 소름 끼치게 연기했다는 평을 받았다.

당초 서 회장은 표준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극 중 대립각을 세우던 사위 강동윤(김상중)과의 차별화를 두기 위해 스스로가 경상도 사투리를 권하게 됐다는 후문이다. 은 사투리로 캐릭터에 생명력을 입혔고 칠순 나이에 "욕보래이"라는 유행어까지 탄생시켰다.

박근형
신스틸러에서 주연배우로 등극한 이성민은 사투리로 인간미를 입었다. 그는 MBC 월화미니시리즈 '골든타임'(극본 최희라ㆍ연출 권석장)에서 투철한 사명감과 실력을 갖춘 외상외과 교수 최인혁 역으로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드라마가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이성민은 극중 사투리를 구사한다. 고향이 경북인 이성민은 사투리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하지만 사실 그가 극중에서 쓰고 있는 사투리는 부산이 아닌 경북 사투리다.

경남과 경북의 사투리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거부감 없이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극을 이끌고 가는 이성민의 연기력과 카리스마가 억양의 차이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실제 부산 억양을 사용하는 배우 송선미는 극의 초반 사투리로 지적을 받는 웃지 못할 상황도 연출됐다.

깜찍한 요정에서 사랑 받는 '연기돌'로 등극한 그룹 에이핑크의 정은지. 첫 작품의 주연을 맡았음에도 연기력 논란 없이 호평을 이어가고 있는 데에는 '리얼'한 사투리 연기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평이다.

그가 열연을 펼치고 있는 tvN 주간 미니시리즈 '응답하라 1997'(극본 이우정ㆍ연출 신원호)은 부산을 배경으로 199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30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정은지의 실제 고향은 부산이다. 사투리를 연출해야 하는 여타의 배우들과 달리 그는 극중 물 만난 고기처럼 자유자재로 사투리를 구사한다. 어색함이 없는 생활연기의 진수를 선보이고 있는 것. 정은지는 사투리는 물론 노숙과 고성, 난투극까지 몸을 사리지 않으며 예쁜 척 하지 않아도 예쁜 배우로 거듭나고 있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이희준
경상도 남자는 무뚝뚝하다. 하지만 내면에는 따뜻함이 있다. 이 같은 경상도 사나이의 감성으로 여심을 사로잡은 남자가 있다. KBS 2TV 주말극 '넝쿨째 굴러온 당신'(극본 박지은ㆍ연출 김형석)으로 '대세남'으로 떠오른 배우 이희준이다.

경상도 특유의 사투리 억양과 무심한 듯한 말투로 좋아하는 말숙(조윤희)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그에게 여성시청자들은 무장 해제됐다. 그가 맡은 역할은 기존에 답습되던 일명 실장님 역할이 분명하다.

재벌 2세에 까칠하게 이성에게 다가가지만 왠지 모르게 친숙한 느낌이 든다. 그가 구사하고 있는 경상도 사투리 때문이다. 실제로 이희준은 경상도에 계신 아버지를 보며 캐릭터를 잡았다고 전해진다. 실제 여자친구가 짧은 치마를 입는 것을 싫어한다는 고지식한 감성은 사투리를 통해 극에 그대로 투영됐다.


'골든타임'의 이성민
'응답하라 1997'의 정은지(왼쪽)

안소현기자 anso@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