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순위 싸움은 의미가 없습니다."

한용덕(47) 한화 감독 대행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한 감독은 지난 24일 잠실 두산전에 앞서 "어린 선수들이 하나로 뭉쳐 그라운드에서 뛰는 모습이 보기 좋다. 분명 시즌 초반과는 다른 모습이다"면서 "무리해서 7위를 노리지 않겠다. 어린 선수들이 많은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한 감독 대행의 발언과 달리 팀은 놀라운 성적을 거두고 있다. 지난달 27일 한대화 전 감독이 자진 사퇴한 이후 12승6패(0.667)로 승승장구 하고 있다. 한화는 감독 교체 직후인 8월28일부터 9월1일까지 3연승을 내달렸고, 이후에도 한 차례 더 3연승을 기록했다.

야구 전문가들은 '사령탑 교체' 효과를 3~5경기 정도로 보고 있다. "감독님께 죄송하다. 선수들이 더 집중했다"는 소감처럼 사건이 터진 직후엔 평소보다 2배 이상의 집중력을 갖기 마련이다. 당연히 결과도 좋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객관적인 전력 차로 다시 추락하는 게 일반적이다. "특히 꼴찌라면 자연스럽게 승리 보다 패배가 많아진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그런데 한화는 다르다. 추락할 듯 추락하지 않고 오히려 순위 싸움 중인 팀들에 고춧가루를 뿌리고 있다. 어느덧 7위 LG와의 승차도 3게임에 불과해 탈꼴찌에 대한 희망도 퍼지고 있다. 한화는 왜, 무엇이 달라진 걸까.

느림보 최진행도 그린라이트

'상식 파괴.' 현재 한화 야구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이렇다. 누상에 나가면 무조건 뛰고 보는 게 달라진 모습이다. 이 같은 극단적인 '뛰는 야구'는 장단점이 공존한다. 주자가 도루에 성공했을 때 팀 사기가 올라가고 득점 확률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이치다. 반면 무리한 주루 플레이로 2루 주자가 3루에서 죽고, 중심 타선 앞에서 흐름이 끊기는 건 팀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지난 16일 경기가 대표적이다. 한화 9번 하주석은 목동 넥센전 2회 1사 2ㆍ3루에서 무리하게 홈을 파고들다 아웃 됐다. 당시 2번 연경흠은 상대 선발 장효훈의 바운드 공에 헛스윙을 했고, 스트라이크 낫아웃 상황이 돼 1루로 뛰어갔다. 그런데 넥센 포수 허도환이 1루로 공을 던져 타자를 잡는 사이, 하주석은 그대로 홈으로 달려 들었다. 누가 봐도 명백하게 타이밍이 느린 상황. 결국 한화는 3번 최진행 4번 김태균 타석에 앞서 절호의 찬스를 놓쳤다.

그래도 한 감독 대행의 생각은 변함없었다. "벤치로 들어오던 하주석을 불러 '잘 했다'고 말했다. 기 죽지 말고 자신 있게 플레이 하라고 격려했다"며 "평소 선수들에게 무조건 뛰라고 주문한다. 걸음이 느린 최진행에게도 그린 라이트(주자가 스스로 판단해서 도루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주자는 투수를 흔들어야 한다. 경험상 아무리 제구가 좋은 투수도 도루가 많이 나오면 컨트롤에 애를 먹기 마련이다"며 "그 동안 한화는 상대 팀 발에 당하기만 했다. 이제는 결과에 상관없이 우리의 발로 상대를 압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직접 몸으로 부딪혀 '자신감'

한 달 가까이 이어지는 다소 무리한 플레이. 그런데 효과는 상상 이상이다. 선수들은 이미 자신감으로 똘똘 뭉쳤고 더 이상 벤치 눈치를 보지 않고 있다. "직접 몸으로 부딪히다 보니 얻는 것도 많다"는 게 하주석 등 어린 선수들의 말이다.

베테랑들의 목소리도 한결 같다. 주장 한상훈은 "경기 중에도 어린 선수들을 불러 상황 설명을 해준다. 재능이 출중한 선수들은 경험만 쌓이면 금방 실력이 늘기 마련"이라며 "잘 했다, 잘못 했다는 판단을 하지 않는다. 다만 (하주석의 경우처럼) 당시에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상황들을 제시해 주고 어떤 게 팀을 위한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고 말했다.

한화는 남은 경기의 성적과 관계없이 교육 리그를 포함해 마무리 훈련, 전지 훈련 일정도 잠정적으로 정해 논 상태다. 올해 한화는 많은 것을 얻고 잃었다. 김태균과 박찬호의 영입으로 스타 군단의 이미지가 생긴 반면, 팀 성적은 기대와 달리 곤두박질 쳤다. 그리고 올 페넌트레이스 막판 어린 선수들이 소중한 경험을 쌓으며 내년 시즌을 위한 자산을 쌓고 있다.



함태수기자 hts7@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