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부녀 배우 전성시대

박시연
요즘 연예계에서 "20대 여배우들이 사라졌다"는 말이 종종 들린다. 원톱으로 자기 자리에서 제 몫을 해주는 젊은 여배우들이 보기 드물어졌다는 의미다. 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일각에서는 '세대교체'의 과정이라고 한다. 화려했던 20대들이 30대로, 40대로 성숙된 면모를 뽐내고 있다는 것. 그 성장공통분모에는 '결혼'이 있다는 말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유리 등 올해 영화와 드라마에서 종횡무진한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틀린 말도 아니다. 결혼은 과연 여배우의 성장포인트일까.

#-마인드가 달라졌다

최근 종방된 KBS 2TV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극본 이경희ㆍ연출 김진원ㆍ이하 착한남자)로 재조명된 . 결혼 후 첫 작품은 영화 '간기남'이었지만 안방극장의 파급력이 더욱 컸다. '착한남자'에서 한 남자를 사랑하면서도 그를 이용한 끝에 파멸을 맞는 한재희 캐릭터는 에게 또 한번의 변신을 안겼다. 드라마 '커피하우스''남자이야기' 등 전작에서 연기력 논란에 시달렸던 것과 달리 은 '간기남'의 팜므파탈과 '착한남자'의 카리스마를 변주했다.

은 "결혼 후 연기생활에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주변에서 이런 말들을 많이 해주더라"고 말했다. 결혼을 하니 얼굴이 편해지고 표정이 자연스러워졌다는 것. 그는 "그 모든 게 작용한 결과 내 마인드 자체가 바뀐 것 같고 연기 역시 힘을 빼고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영화와 드라마를 모두 잡은 그는 할리우드 진출까지 꿰찼다. 내달 체코 프라하에서 올로케이션으로 촬영되는 영화 '더 라스트 나이츠(The Last Knights)'에서 배우 안성기와 모건 프리먼 등과 호흡을 맞춘다.

이유리 /연합뉴스
은 "2주간의 촬영이 끝날 때에 맞춰 남편도 유럽으로 부를 계획이다"며 "일주일 동안 휴가를 보내면서 아기도 갖고 이젠 '엄마'의 마음을 느끼고 싶다"며 웃었다.

#이유리-든든한 외조 큰 힘

이유리는 올 초 MBC 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 종방 직후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노란복수초'로 바쁜 상반기를 보냈다. 결혼 후 첫 작품이었던 '반짝반짝 빛나는'은 그의 10년 연기 인생 중 유일한 악역 도전이기도 했다.

그 동안 착한 이미지만 보여줬던 이유리는 두 드라마에서 연이은 독한 연기를 선보이며 화제몰이를 했다. 이유리가 원톱으로 주연했던 '노란복수초'는 tvN 첫 아침드라마였음에도 8회 연장 방송됐고 해외 판권수출까지 호조를 이루는 성과를 거뒀다.

이유리는 "결혼을 하고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다"며 "무엇보다 '안정적'이라는 느낌이 연기생활에도 큰 변화를 줬다"고 말했다. 그는 남편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연기에도 자신감이 붙었다고 전했다.

김남주
이유리는 "이전에는 모든 사람들이 '이유리 연기 못한다'고 지적하면 주눅이 들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누가 뭐래도 응원하는 남편이 있다는 사실에 힘이 난다"고 덧붙였다.

연기생활뿐 아니라 이유리는 결혼 후 '새댁CEO'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손수 재배한 배추와 각종 야채로 담근 '새댁 이유리'의 김치를 론칭한 것. 한 관계자는 "결혼 전부터 요리를 좋아했기 때문에 음식사업을 하고 싶어했다"며 "남편과 시댁식구들의 응원이 없었더라면 이러한 꿈도 실현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밝혔다.

#-삶의 내공 뭍어난 연기

는 올해 KBS 연기대상의 대상감으로 거론될 만큼 안방극장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전국시청률 50%에 육박한 KBS 2TV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차윤희로 6개월을 시청자와 동고동락했다.

이나 이유리와 달리 는 '새댁'은 아니다. 결혼 7년차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넝쿨째 굴러온 당신'은 에게 데뷔 후 첫 KBS 작품이었고 11년 만에 일일극 도전이었다. '역전의 여왕' '내조의 여왕' 등 미니시리즈에서 보여준 트렌디한 이미지와도 달라져야 했다. '시월드'에 속 썩고 일과 가정생활 사이에서 갈등하는 대한민국 모든 '워킹맘'을 대변해야 할 위치였다.

김효진
가 극중 차윤희를 소화한 내공을 실제 결혼생활에서 찾는 이들도 많았다. 두 자녀의 엄마이자 배우로서 일도 놓치지 않았던 의 실제 모습에 차윤희라는 인물 역시 자연스럽게 표현됐다는 설명이다.

는 "'넝쿨째 굴러온 당신'을 연기하면서 사실 내가 알지 못한 대한민국 여성들의 고충이 너무 많았다"며 "아무래도 연예인이라는 직업과 일반 직업의 특성이 다른 탓이었겠지만 내가 만약 미혼자였다면 아무리 훌륭한 제작진의 작품이었다 한들 절대 표현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기의 깊이 더해졌다

결혼 전까지 의 이미지는 '자유로운 영혼' '독특한 매력의 여배우'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마력의 소유자' 등 신비로운 분위기였다. 아마도 영화 '창피해' '오감도' 등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줬기 때문일 터. 은 대중적으로 알려진 배우임에도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지닌 '가깝고도 먼' 연예인이었다.

지난해 12월 배우 유지태와 결혼한 은 이후로 다르게 인식됐다. 한 인간으로서 보다 성숙된 내면을 보여준 계기가 됐다. 유지태와 함께 봉사활동을 다니고 남을 돕는데 앞장선 행보도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 입어 은 결혼 후 첫 작품이었던 영화 '돈의 맛'에서 재조명됐다. 노출 수위가 높았고 배우 윤여정의 내공에도 밀리지 않는 '팜므파탈'을 보여줬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 동안 감춰졌던 의 인간적인 매력이 부각됐다는 반응도 얻었다. '돈의 맛'의 임상수 감독의 말처럼 "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멋지게 담겼다"는 의미였다.

이 작품으로 프랑스 칸 영화제의 레드카펫까지 밟은 은 유지태가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작품이라는 말을 꺼내기도 했다. 은 "유지태가 임상수 감독을 워낙 좋아해서 어떤 파격적인 역할을 하더라도 괜찮다는 응원을 보내줬다"고 말했다.



강민정기자 eldol@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