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명인 모방자살 증가조성민 자살 다음 날 베르테르 효과… 부산서 7명 뒤따라 숨져토크쇼 출연 연예인 "죽고 싶었다" 속내 고백제작진 책임감 따라야

관심 주의 경계 심각

지난 2004년 제정된 국가 위기관리 표준 매뉴얼에는 자연재해 전쟁 환경오염 전염병 등 국가위기 유형에 따라 이상의 4단계가 명시돼있다. 해당 매뉴얼에는 없지만 국가를 위기로 모는 또 하나의 유형으로 '자살'을 추가해야 할 분위기다. OECD 가입국 중 청소년 자살률 1위를 달리는 것이 한국이고 각종 조사에서 행복과 거리가 먼 국가로 꼽히는 것도 우리나라다. 수 만가지 대책을 세워도 모자라지만 대중문화의 파급력을 생각할 때 연예인의 자살고백 행태에도 '심각' 단계를 발동해야 할 판이다.

#유명인사 1명에 일반인 7명이다

6일 오전 전(前) 야구선수이자 고(故) 최진실의 남편인 조성민이 세상을 떠났다. 사인(死因)은 자살. 유가족 측은 우울증을 앓은 적도, 삶에 회의적인 모습을 보인 적도 없다고 현실을 부정했다. 하지만 죽기 전 가족들과 여자친구에게 보낸 메시지 등 정황과 부검결과를 미뤄 서울 수서경찰서 측은 자살로 사건을 종결했다.

고인의 비보가 날아든 다음 날, 부산에서 7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조성민 사망' 직후 벌어진 일이라 부산 일대 경찰 측에서는 "자살 도미노 현상인 것 같다"며 "베르테르 효과가 일어난 것 같아 우려가 크다"고 입을 모았다.

/연합뉴스
베르테르 효과는 유명인의 자살을 모방하는 사회증후군을 가리키는 용어다. 이번 사건에 앞서 베르테르 효과에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는 시민단체들이 많았다. 자살예방협회의 한 관계자는 8일 스포츠한국과 전화통화에서 "지난 2008년 유명 연예인의 자살로 2개월 간 3,081명이 모방자살했다"며 "2007년 같은 기간대 대비 1,274명이 증가한 수치"라고 말했다. 지난 2005년 배우 이은주를 떠나 보내고 지난 2007년 가수 유니, 배우 정다빈, 지난 2008년 방송인 안재환 등이 사망한 당시에도 베르테르 효과가 일어났다.

베르테르 효과를 막기 위한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방송인 안선영이 트위터에 남긴 글 대로 "자살 말고 살자"라는 정신을 갖는 일뿐이다. 자살예방협회의 또 다른 관계자는 "유명 연예인의 사망 사고가 알려질 때마다 비상이 걸린다"며 "다수를 위한 소수의 신중한 태도와 책임감이 요구되는 때다"고 밝혔다.

#'제작진 오블리주'가 필요하다

예방의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베르테르 효과의 간접적인 원인이 되는 '연예인 자살 고백'을 막는 일은 가능하다.

최근 예능프로그램에서 '잊혀진 스타''사건사고 스타' 등의 컴백이 잦아지며 "한 때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는 분위기의 발언이 줄 잇고 있다. 방송인 이혁재 윤정수 조혜련 등 이들이 털어놓은 힘든 과거사 다음엔 "죽고 싶었다""비행기가 떨어지길 바랐다" 등 자극석인 속내가 따라왔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연예인의 고백 자체보다 제작진의 후속 조치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KBS 2TV '김승우의 승승장구'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SBS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등 연예인들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에서 게스트가 못할 말이 어디 있겠냐는 것. 다수의 대중에게 들려주기에 적합한 내용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건 제작진의 몫이라는 의미다. 선정적인 내용으로 시선을 끌려는 태도보다 더 큰 책임감으로 방송을 만드는 '제작진 오블리주(Oblige)'가 필요한 셈이다.

'제작진 오블리주'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진 데는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출범으로 채널이 많아진 시점과 맞물려있기도 하다. 낮은 채널 인지도와 영향력에서 승부수를 띄울 만한 곳은 '게스트 섭외'. 화제가 될 만한 인물을 데려와 대중이 혹할 만한 사연을 들려주는 데 집중한 것도 사실이다.

최근에도 한 종편 프로그램에서는 특정 게스트가 녹화 당시 한 이야기를 보도자료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오류를 범해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한 외주제작사 관계자는 "시선 끌이 용으로 방송을 만들자고 작정하는 제작진은 없다"면서 "하지만 막상 편집된 방송을 보면 회의가 들 때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시민단체나 학부모 단체로부터 청소년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명심하라는 항의도 여럿 받았다"고 덧붙였다.



강민정기자 eldol@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