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꼴찌에서 1위로' 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지옥훈련으로 멘털 강화… 패배의식 걷고 자신감 UP, 기술도 체력도 일취월장"이번 시즌 운 많이 따라 다음엔 기술 농구 보일 것"

우리은행 한새여자농구단 (오른쪽) 감독과 임영희
꼴찌에서 일등으로 신분이 급상승한 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 (42) 감독은 지독한 감기로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꽃샘 추위가 닥친 21일 오전 서울 성북구 장위동 우리은행 체육관에서 만난 위 감독은 "링거를 3병째나 맞았는데도 컨디션이 영 좋지 않아요"라며 힘들어했다. 위 감독은 19일 챔피언 결정전에서 우승한 뒤 곧바로 모친상을 당한 전주원 코치의 빈소로 달려가 20일 발인까지 마치고 돌아왔다. 우승의 기쁨보다 충격이 더 컸던 이틀을 보냈다.

더욱이 챔프전 우승 뒤 선수들이 세리머니를 핑계 삼아 한풀이로 위 감독을 발로 밟아 허리, 엉덩이, 허벅지에 '피멍'까지 새파랗게 들어있어 심신이 지친 상태였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위 감독은 6시즌 연속 통합 우승의 위업을 만든 '최강' 신한은행에서 오랫동안 코치를 해오다 지난해 4월 만년 하위 팀인 우리은행의 사령탑으로 이동했다. 취임 첫 해인 올 시즌 여자프로농구 정규리그와 챔프전까지 통합 우승으로 우리은행의 봄날을 가져왔다. 7년만에 이뤄진 우리은행의 챔피언 탈환이다.

위성우
위 감독은 지휘봉을 잡은 직후 팀에 만연했던 패배 의식에 깜짝 놀랐다. 약 7년간 몸담았던 신한은행의 분위기와는 영 딴판이었다. 코치 시절 상대 벤치에서 우리은행을 봤을 때는 전력도 문제가 없었고, 선수 구성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왜 경기에 나가기만 하면 패배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패배의식의 타파였다. 연습 경기도 "지면 안 된다"며 꾸중했다. 선수들이 "지나가는 개가 부러울 정도였다"던 지옥 훈련도 체력 상승 외에 멘탈 강화를 위해서였다.

패배의식을 걷어내자 일취월장했다. 천천히 자신감을 쌓은 선수들은 연습 때나 정규 리그에서 되지 않아 위 감독의 속을 썩인 기술적인 부분들을 챔프전에서 마구 뽐냈다. 위 감독은 "부모들이 내 아이가 얼마나 컸는지 모르듯 항상 부족하게만 보였던 선수들의 실력이 늘었더라고요. 연습 때, 정규리그 때는 되지 않던 수비 전술들을 챔프전에서 다 소화하니 아이러니했죠"라고 말했다.

▲기술 농구 기대하라

'운칠기삼(運七技三)'. 운이 70이면 능력은 30이다.

우리은행의 통합 우승에도 운이 많이 따랐다. 정규 리그 라운드마다 어려운 게임이라 예상했던 경기들이 쑥쑥 풀렸다.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통산 득점 1위 티나 톰슨이 뛰어줬다. 코트에서 차지하는 외국인 선수의 비중을 놓고 봤을 때 톰슨이 없었다면 우승은 어려웠다.

선수들이 큰 부상 없이 이번 시즌을 마무리했다. 아픈 선수가 생기면 다른 선수들이 공백을 충분히 메웠다. 한 선수도 빠짐없이 감독의 독한 주문도 군말 없이 따랐다.

위 감독은 "제 사주가 좋다고 하더라고요. 우리은행이 감독이라는 큰 기회를 줬고, 선수들이 큰 일을 해낸데는 운이 없다고 볼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이번엔'운발'로 우승을 차지했다면 다음 시즌에는 기술로 승부하는 우리은행을 만들 생각이다.

과거 여자농구가 기술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것과 달리 요즘 농구는 힘과 스피드의 경기로 이뤄진다. 워낙 여자농구 인프라가 열악해 기술을 가르치기 보다 농구공만 잡을 줄 알면 농구 선수가 되는 요즘이다.

위 감독은 어릴 때 농구의 기본기를 배워도 막상 실전에서는 활용할 수 없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기술 농구는 단시간에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선수가 죽기 살리고 연습해도 2~3년 걸리거든요. 단계적으로 선수들에게 기술 농구를 가르치려고요."



이현아기자 lalala@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