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외 종횡무진 프로야구 스타들

추신수(신시내티)
김병현 한국인 최초 월드시리즈 우승컵 영예… 54승 86세이브 거둬
최희섭 타자 첫 MLB行 40홈런 120타점 수확
선동열 '일본진출 1호' 4년간 98세이브 기록
타자 진출 1호는 이종범 세계 유일 30홈런-60도루
이대호·구대성도 맹활약

한국프로야구 선수 최초로 메이저리그 무대에 오른 '괴물 왼손투수' 류현진(26ㆍLA 다저스). 류현진 이전에 한국프로야구를 경험한 뒤 미국에 진출한 선수는 더러 있었지만 다른 리그를 거치지 않고 '직행한' 경우는 류현진이 처음이다.

지난해 말 다저스와 6년 총액 3,600만 달러(약 390억원)에 계약한 류현진이 지난 14일 애리조나 피닉스 체이스필드에서 열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에 선발 등판, 6이닝 6안타 1볼넷 9삼진 3실점으로 7-5 승리를 이끌며 시즌 2승(1패)째를 챙겼다.

다저스는 류현진과 계약에 앞서 여러 구단이 참여한 공개입찰에서 2,573만7,737달러33센트(약 280억원)를 투자했다. 2,573만7,737달러33센트는 메이저리그 공개입찰 사상 4번째로 높은 금액이었다.

미국에서는 2승이지만 한국에서 7년간 거뒀던 98승(52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2.80)을 더하면 류현진은 프로 데뷔 후 개인통산 100승 고지에 올라섰다. 올해 만 26세이고, 이제 막 전성기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유니폼을 벗을 때까지 류현진은 훨씬 더 많은 승수를 쌓아 올릴 것이다.

올해 미국프로야구 LA 다저스에 진출한 류현진의 돌풍이 예사롭지 않다. 류현진은 국내에서 최고 자리에 오른 뒤 미국으로 무대를 옮겼다. 류현진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명성을 이어간 스타들은 적지 않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돌아보면 류현진처럼 한국과 해외를 오가며 또렷한 족적을 남긴 야구선수들은 적지 않다. 메이저리그 아시아인 최다승(124승) 기록을 보유한 박찬호는 미국에서 시작해서 일본(오릭스ㆍ1승)을 거친 뒤 지난해 한화(5승)에서 은퇴했다. 박찬호부터 류현진까지 미국에 진출한 한국 선수는 모두 56명이다.

또 선동열 KIA 감독, 이종범 한화 코치, 구대성(시드니 블루삭스), 이승엽(삼성), 임창용(시카고 컵스), 등은 일본에서도 이름값을 했거나 현재진행형이다. 일본 진출로는 선 감독이 1호, 이대호가 16호다.

先 해외, 後 국내

박찬호(은퇴) 서재응 최희섭(이상 KIA) 김병현(넥센) 등은 '선(先) 해외, 후(後) 국내'에 속한다. 이들은 대학 재학 때 미국으로 건너가 입신(立身)에 성공한 뒤 국내로 돌아와 맹활약했거나 현재도 왕성하게 뛰고 있다.

1994년 다저스와 120만 달러에 계약한 박찬호는 2010년까지 17년간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며 124승(98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4.36)을 수확했다. 일본인 투수 노모 히데오가 123승을 거뒀으니 아시아인 최다승 기록은 박찬호의 몫이다.

이대호(오릭스)
박찬호는 17년간의 미국 생활을 접고 2011년 처가가 있는 일본으로 건너가 오릭스 유니폼을 입었다. 일본에서는 1승(5패 평균자책점 4.29)에 그쳤던 박찬호는 지난해 한화로 와서 5승(10패 평균자책점 5.06)을 올렸고 연말에 유니폼을 벗었다.

'컨트롤의 마법사' 서재응은 인하대 재학 중이던 1997년 뉴욕 메츠와 135만 달러에 계약했고 2008년 국내로 돌아올 때까지 28승(40패 평균자책점 4.60)을 올렸다. 지난해 제2의 전성기를 연 서재응은 16일 현재(이하 기록 마찬가지) 국내 통산 37승(34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3.89)을 기록했다.

타자로는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무대에 섰던 최희섭도 의미 있는 기록을 남겼다. 최희섭은 메이저리그에서만 363경기에 출전해서 타율 2할4푼에 40홈런 120타점을 수확했다. 2007년 시즌 초반 국내로 돌아온 최희섭은 타율 2할8푼5리에 83홈런 339타점을 올리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한국인 최초로 월드시리즈 우승컵을 품었던 김병현은 9년 통산 54승(60패 86세이브 평균자책점 4.42)를 거뒀다. 2011년 일본프로야구 라쿠텐을 거쳐 지난해 국내에 둥지를 튼 김병현은 17일까지 5승(9패 평균자책점 5.83)을 신고했다.

김병현은 라쿠텐 시절 승리와 인연을 맺지는 못했지만 18경기에서 1패에 평균자책점 2.66의 나쁘지 않은 성적을 남겼다. 2008년 초 메이저리그 피츠버그에서 갑자기 나온 뒤 공백기간이 4년 가까이 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역시 김병현'이라는 감탄사도 과하지 않았다. 이 밖에 김선우(두산)는 고려대 재학 중에, 봉중근(LG)은 신일고 졸업 후에 청운의 꿈을 안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메이저리그에서 김선우는 13승, 봉중근은 7승을 올렸다.

김병현, 메이저리그를 호령하던 때 모습
先 국내, 後 해외

박찬호 서재응 최희섭 김병현 등이 '선 해외, 후 국내'라면 선동열 이종범 구대성 이승엽 임창용 이대호 등은 '선 국내, 후 해외'에 해당된다. 이들은 국내에서 최고 자리에 오른 뒤 해외에 진출해서 명성을 이어갔다.

국내에서는 적수가 없었던 선동열은 1996년 일본프로야구 명문인 주니치에 입단해 소방수 자리를 꿰찼다. 선동열은 첫해 모친상을 당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던 까닭에 자존심을 구겼으나 이듬해부터 99년까지 팀의 뒷문을 확실하게 책임지며 '나고야의 태양'으로 떠올랐다.

선동열은 전성기가 지난 뒤 일본에 진출했지만 4년간 10승 4패 98세이브 평균자책점 2.70이라는 걸출한 성적표를 남겼다. 선동열은 국내에서 뛰었던 11년간은 146승 40패 132세이브 평균자책점 1.20이라는 불멸의 금자탑을 쌓았다. 대학생들 사이에서 "학점이 선동열 방어율(평균자책점)"이라는 유행어도 괜한 게 아니었다.

국내프로야구 타자 중 일본 진출 1호인 이종범은 1998년 주니치 유니폼을 입고 해태 선배였던 선동열과 함께 뛰었다. 첫해부터 주전을 차지하며 맹활약하던 이종범은 한신 투수 가와지리의 투구에 오른 팔꿈치를 맞는 바람에 시즌을 접어야 했다.

이후 몸쪽 콤플렉스가 생긴 이종범은 부상 전에 보여줬던 특유의 날카로운 맛은 잃어버렸다. 일본에서 이종범은 2001년 초까지 타율 2할6푼1리에 27홈런 53도루 99타점을 올렸다.

한 시즌 최다안타(1994년 196개), 최다 도루(1994년 84개), 세계 유일의 30홈런-60도루(1997년 30홈런 64도루) 등 앞으로도 깨지기 힘든 대기록을 무수히 남긴 이종범의 국내 통산 성적은 타율 2할9푼7리에 194홈런 730타점 510도루.

1999년 한화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던 구대성은 2001년 오릭스로 진출해서 4년간 팀의 주축 투수로 활약했다. 구대성은 4년간 110경기에 등판해서 24승 34패 10세이브 평균자책점 3.86이라는 수준급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2005년 미국프로야구 뉴욕 메츠에 입단한 구대성은 중간계투로 활약했다. 구대성은 비록 승패는 기록하지 못했지만 33경기에서 23.2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3.91을 기록했다.

2010년 은퇴한 뒤 호주로 건너가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구대성은 국내에서만 67승 71패 214세이브 평균자책점 2.85를 기록했다. 주로 마무리투수로 활약했던 까닭에 승수는 적지만 대신 세이브가 214개나 된다.

2003년 한 시즌 아시아 최다 홈런 신기록(56개)을 세운 뒤 이듬해 지바 롯데 유니폼을 입은 이승엽은 2011년까지 일본에서만 8년을 뒤며 타율 2할5푼7리에 159홈런 439타점을 남겼다.

지난해 삼성으로 돌아와 한국시리즈 우승과 함께 최우수선수(MVP)의 영예를 안았던 이승엽은 국내 통산 타율 3할5리에 346홈런 1,043타점을 올리고 있다.

임창용은 일본에서 전성기를 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창용은 삼성 소속이던 2005년부터 2007년까지는 팔꿈치 부상 후유증 때문에 평범한 선수로 전락하는 듯했으나 2008년 일본에 진출한 뒤로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일본에서 5년간 11승 13패 128세이브 평균자책점 2.09라는 눈부신 성적표를 받아 든 임창용은 올해 미국프로야구 시카고 컵스와 계약해 다시 한 번 화제를 모았다. 재활 중인 임창용은 7월 이후 복귀가 예상된다. 임창용은 국내에서는 해태와 삼성에서 13년간 활약하며 104승 66패 168세이브 평균자책점 3.25를 기록했다.

지난해 오릭스에 입단한 이대호는 팀이 퍼시픽리그 꼴찌로 처졌음에도 2할8푼6리(10위) 24홈런(공동 2위) 91타점(1위) 등 도루를 제외한 공격 전 부문에서 맹활약했다. 올해 성적은 타율 3할3푼3리에 2홈런 10타점.

일본으로 나가기 전 이대호는 국내에서 11년을 뛰며 타율 3할9리에 225홈런 809타점을 올렸다. 이대호는 2010년에는 사상 최초의 타격 7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LA 다저스는 코리안 메이저리거 '둥지'


박찬호·최희섭·서재응 거쳐간 130년 역사 명문구단

최경호기자

LA 다저스는 미국프로야구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에 속한 명문 구단이다. 또 한국인들에게는 코리안 메이저리거의 '둥지'로, 친숙하게 다가오는 구단이기도 하다. 메이저리그에는 구단이 30개나 있지만 '우리 팀' 같은 곳을 꼽으라면 단연 다저스일 것이다.

다저스는 1994년 한양대 재학 중이던 '원석' 박찬호를 데려가 '보석'으로 만들었다.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박찬호는 1997년부터 선발투수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박찬호는 그해 15승을 시작으로 2001년 다저스를 떠날 때까지 매년 13승 이상을 거두며 팀의 에이스로 우뚝 섰다. 박찬호는 통산 124승 중 84승을 다저스타디움에서 올렸다. 또 IMF 외환위기로 힘겨웠던 시절 박찬호의 호투는 국민들에게 더 없는 위안이 됐다.

박찬호가 떠난 뒤로도 다저스와 한국의 인연은 계속됐다. 최희섭(2004~2006년) 서재응(2006년)도 한때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류현진은 한국인 선수로는 4번째로 다저스 식구가 됐다.

다저스는 1883년 '브루클린 어틀래틱스'라는 이름으로 창단했으며 130년 역사를 가진 명문 구단이다. 다저스는 통산 월드시리즈 6회 우승 기록을 갖고 있으나 최근 24년 동안은 진출조차 하지 못했다. 또 지난해에는 86승 76패로 서부지구 2위에 그쳐 포스트시즌 무대에 서는 데 실패했다.

'한·미·일 승리투수' 박찬호 유일


최경호기자

박찬호 이상훈 구대성 김병현은 한미일 3국의 프로야구 마운드를 모두 경험했다. 어느 나라든 프로무대에 선다는 자체만으로도 장한 터에 프로야구가 활성화된 3국을 차례로 누볐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다.

박찬호는 미국에서 시작한 뒤 일본을 거쳐 한국에서 은퇴했다. 이상훈은 한국에서 출발, 일본을 거쳤다가 미국에 진출했다. 그리고 다시 국내로 돌아와 옷을 벗었다.

구대성 역시 이상훈과 같은 궤적을 그렸다. 구대성은 한화에서 데뷔했으나 일본 오릭스와 미국 뉴욕 메츠를 경험한 뒤 2006년 한화에 복귀했다. 구대성은 국내 복귀 첫해였던 2006년 고졸신인 류현진에게 '필살기'인 서클체인지업을 가르쳐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김병현은 박찬호의 뒤를 따랐다. 메이저리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데뷔한 김병현은 2011년 일본프로야구 라쿠텐으로 옮겼다가 지난해 넥센에 둥지를 틀었다.

한미일 마운드를 모두 경험한 선수는 4명이지만 3국에서 전부 승리투수의 기쁨을 누렸던 선수는 박찬호가 유일하다. 박찬호는 미국에서 124승, 일본에서 1승, 한국에서 5승을 거뒀다. 이상훈과 구대성은 미국에서, 김병현은 일본에서 승리가 없었다.

올해 시카고 컵스 유니폼을 입은 임창용이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선다면 박찬호 이상훈 구대성 김병현에 이어 한미일 마운드를 모두 경험하는 5번째 선수가 된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