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2010년 스페인 만화상 휩쓸어… 스페인 내전 등 처절한 삶의 기록

스페인 최고의 만화가 한글판으로 출간됐다.

2010 스페인 국립 만화대상, 28회 바르셀로나 살롱 델 코믹 3관왕(최고 스페인 작가상, 각본상, 작화상), 2010 카탈루냐 만화대상, 33회 디아리오 드 아비소스 리얼리즘 만화대상 최고각본상, 조르나다스 드 아빌레스 비평가상 최고 작가상과 최우수 작품상, 2009 깔라모 엑스트라오디너리 프라이즈 등 당시 스페인 내 만화 관련 상을 거의 독식하며 전폭적인 찬사를 받아 화제를 모은 책이다.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각지에서도 번역 출간돼 2011년 프랑스 ACBD 비평대상 최종후보에 올랐으며 2012년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발 본선 경쟁작으로도 출품됐다.

바로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 그것이다.

문학ㆍ시나리오 작가이자 바스크 대학교 불문학과 교수인 안토니오 알타리바가 아버지의 생애를 통해 스페인 내전으로 고통 받은 세대의 아픔을 풀어나간 만화 작품이다. 소설가로 활동해 2002년에 유스카디 문학상을 받은 그가 문학과 만화를 융합한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썼다.

이 책은 "내 아버지는 2001년 5월 4일에 자살했다"라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시작한다. 1910년부터 자살한 2001년까지 주인공 안토니오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스페인의 군사독재와 공화정, 스페인 내전, 제2차 세계대전, 레지스탕스, 프랑코 독재정권까지 한 남자가 겪었던 처절한 삶의 기록이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와 비교해도, 우리땅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안토니오 알타리바는 에필로그를 통해 "아버지는 언제나 정의와 평등, 그리고 사랑과 번영이라는 날개를 가지고 정직하게 날고 싶어 했지만 그 날개는 처참하게 찢겨졌다, 그러나 마침내 오늘날, 그분은 삶의 무게를 벗어버리고, 픽션이라는 창공에서 긴 실루엣을 남겼다. 삶에 짓눌린 나의 아버지는 창가에서 하늘로 날아갔다"고 밝혔다.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은 리얼리즘적이면서도 환상문학 같은 작품이다. 그림 작가 킴의 참여로 사실적이면서도 낭만적인 그림과 연출, 풍부한 비유와 상징의 활용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았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저자 홍세화는 "단숨에 읽어내려 간 건 만화여서가 아니라 높은 수준의 리얼리즘 문학과 만났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긴장의 호흡을 멈출 수 없었다. 여기,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에 눌려 패배를 거듭한 한 인간, 그럼에도 자유를 지향하는 인간 본성을 마지막까지 움켜쥐었던 한 인간의 얘기가 있다"며 이 책을 추천했다.

텍스트의 비중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를 설명하기보다는 "신도, 조국도, 주인도 없다"라고 외치는 한 사람의 인생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대한 물음에 조그만 대답을 얻을지도 모를 책이다. 길찾기 펴냄. 1만4,000원.



정용운기자 sadzo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