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 드라마 '미다스의손' 편성전략본부 김영섭 부국장추적자·너목들·주군의 태양 대박 시청률 드라마 기획명품 작가·스타 섭외 비결은 항상 귀를 열어 놓는 것'반보 철학'으로 대중에 공감·새로움동시에 선사 흥행 비결

SBS는 2년 연속 '신의 한 수'를 뒀다. 지난해 '드라마의 제왕'의 준비가 더디자 '추적자'를 긴급 편성해 '국민 드라마' 반열에 올렸다. 주연으로 나선 손현주는 연말 연기대상까지 수상하며 배우 인생 전환점을 맞았다.

올해 미니시리즈 중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너의 목소리가 들려' 역시 방송을 불과 한 달 반 앞두고 '사랑해도 될까요' 대신 투입된 드라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두 드라마가 침체기에 있던 SBS 드라마를 살린 '신의 한 수'였다면 이 묘수를 둔 이도 있을 것이다. SBS 편성전략본부 김영섭 드라마 부국장이 그 주인공이다. "내가 이런 인터뷰에 나서도 되는지 모르겠다"며 손사래를 치던 김 부국장은 거듭된 요청에 인터뷰 자리에 나서며 드라마 기획 전문가의 속살을 조심스럽게 드러냈다.

특히 올해 초 '그 겨울, 바람이 분다'를 시작으로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현재 방송 중인 '주군의 태양', '상속자들'-'별에서 온 남자'-'쓰리 데이즈' 로 이어지는 SBS 수목미니시리즈 라인업은 역대 최강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노희경 김은숙 김은희 박지은 홍자매 작가를 설득했고, 조인성 송혜교 소지섭 공효진 김수현 전지현 이민호 박신혜 등을 섭외했다. 김 부국장이 드라마계의 '미다스의 손'이라 불리는 이유다.

왜 내로라하는 작가와 배우들이 그와 손을 잡을까. 김영섭 부국장은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단순하지만 힘있는 답을 들려줬다.

"작가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항상 고민한다.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줄지, 드라마를 살릴 수 있는 좋은 배우와 PD를 붙여줄지를 걱정한다. 드라마 1,2편만 실패하면 잊혀지는 프리랜서 작가들이 가지는 당연한 고민이다.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최적의 선택을 하기 위해 생각하고 또 고민하다.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소통하려 항상 귀를 열어 놓아야 한다. 뻔한 이야기 같지만 이런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관계가 틀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작가-PD-배우와 소통하는 것만으로 성공을 보장할 순 없다. 그들을 한데 모아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중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인지 고민하는 것도 기획자의 몫이라고 김 부국장은 말한다. 이 저변에는 10년 넘게 기획자로 일하며 그가 마음 속에 깊이 새기고 있는 '반보(半步) 철학'과 맞닿아 있다.

"기획자로서 가장 잘못된 행동은 '뒷북 치는 거'다. 다른 드라마의 결과를 보고 따라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항상 '반보' 앞서가는 기획이 필요하다. 하지만 너무 앞서 가면 대중이 못 따라 온다. 반보는 앞서지만 나머지 반 보는 대중과 걸쳐서 같이 걸어야 한다. 공감과 새로움을 동시에 주자는 것이다. 말로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정말 어렵다. 때문에 드라마를 만드는 작업은 항상 힘들지만 보람도 있다."

김영섭 부국장은 이어 대중의 원츠(wants)와 니즈(needs)에 주목하라고 강조했다. 최근 전문직 드라마가 인기라지만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없으면 외면받기 때문이다. 때문에 김 부국장은 스스로 드라마 전문가라는 평가를 내려놓고 항상 대중과 눈높이를 맞추려 노력한다.

"대중의 원츠와 니즈를 찾아가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다. 대중이 보고 싶어하는 소재를 발굴하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춘 스토리텔링을 그들이 좋아할 만한 배우들로 보여줘야 한다. 대중의 입맛대로 가라는 것이 아니라 가려운 곳을 긁어주라는 것이다. 요즘 '힐링' 드라마나 예능이 왜 인기있겠는가? 대중이 힐링받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정의를 지키려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나 상처받은 이들을 귀신이라는 소재를 통해 위로하는 '주군의 태양'이 사랑받는 이유다."

김영섭 부국장이 올해 드라마 시장에 또 하나의 트렌드를 만들었다. 다름아닌 복합 장르.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판타지와 법정 스릴러, 로맨스가 결합됐고 '주군의 태양'은 호러와 로맨틱코미디가 만나 꽃을 피웠다. 대중은 환호했고 높은 시청률로 화답했다.

"대중은 항상 새로운 것을 원한다. 한 동안 톱스타를 기용해도 정통 멜로가 모두 실패했다. 뻔한 과정과 결말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사실 완전히 새로운 멜로를 보여주기는 어렵다. 그래서 여기에 판타지 호러 등 다른 장르를 섞어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과거 '아이리스'가 성공한 것도 단순히 액션이 좋고 스케일이 커서가 아니라 이병헌-김태희의 멜로의 승리라 할 수 있다. 절박한 상황에 빠진 첩보원 남녀의 사랑은 복합장르의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그렇다면 결국은 새로운 조합을 통해 새로운 맛을 내야 한다. '뻔하다'는 말은 드라마를 만들 때 가장 치명적인 평가다. 하지만 무조건 섞는다고 되는 건 아니다. 잘 뭉치면 비빔밥이지만 잘못 섞으면 소위 말하는 개밥이 될 수 있다."

드라마 시장 전체를 보며 완급을 조절하는 것도 기획자의 역할이다. 김영섭 부국장이 꾸려놓은 드라마를 보면 겹치는 장르가 없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정통 멜로였고,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판타지 법정 스릴러였다. '주군의 태양'과 '상속자들'은 각각 로맨틱 호러 코미디, 청춘물이고, '별에서 온 남자'는 타임슬립, '쓰리 데이즈'는 장르물이다. 김영섭 부국장은 "계절 음식은 따로 있다"고 간단히 정리해 말했다.

"각 계절마다 맛있는 음식은 따로 있다. 쌀쌀한 겨울과 초봄에는 멜로물인 '그 겨울, 바람이 분다'가 어울리고 더운 여름철에는 귀신이 등장하는 '주군의 태영'이 제격이다. 겨울방학을 전후한 연말에는 '상속자들'과 '별에서 온 남자'와 같이 판타지성 청춘물을 찾는 이들이 많다. 제작진이 항상 변화를 추구하듯 시청자 역시 항상 새로운 것을 요구한다. 시청자들에게 골라 먹는 재미를 주는 거다."

영화계를 거쳐 드라마에 투신한 후 어느덧 20년. 그 중 11년간 드라마 기획에 열중해 온 김영섭 부국장은 SBS 입사 초기에 '그것이 알고 싶다' 팀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당시 사회와 시청자들을 객관적으로 보는 눈을 키운 것이 지금 드라마를 제작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된다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이런 숱한 노하우를 뒤로 하고 김 부국장이 기획자의 제1원칙으로 내세우는 것이 따로 있다. 다름 아닌 실행력이다.

"좋은 기획자는 좋은 기획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좋은 기획을 좋은 작품이 되도록 실행하는 것이다. 그 아이디어를 구체화시켜서 작품으로 만들어가는 과정 중 너무나 많은 변수가 있어서 부딪히고 대립한다. 그런 역경을 모두 이겨내는 실행력이 필요하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힘을 빼지 않는다. 드라마 제작도 마찬가지다. 기획 단계부터 드라마가 방송되고 끝나는 순간까지 팔로업하며 끊임없이 챙겨야 한다. 그게 내 일이다."



안진용기자 realyong@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