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포로수용소 생활에서 무한경쟁사회 문제점 깨닫는 여정 그려

13세기 이슬람 최고의 신비주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루미(JaLal ad-Din ar Rumi)는 말했다. ‘하루 종일 생각하고 밤이 되면 묻는다. 나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전혀 알 수가 없다’.

최고의 지성조차 명쾌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 의문을 두고 21세기 현 인류 역시 고민과 성찰을 거듭한다. 어쩌면 이 지구와 우주, 그리고 나라는 존재는 누군가의 상상 속 세계일지도 모른다. 영화 ‘매트릭스’의 가상세계처럼 말이다.

존재와 우주의 근원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출발하는 장편소설 <파라한>(전명, 좋은땅)은 우리가 사는 지구가 실상은 ‘수용소’이고 인간은 모두 죄를 짓고 여기에 오게 됐다고 말한다. 무한한 우주공간 안에 지구가 존재하지만 무한함이라는 성질 자체가 결국 사람들을 고립시키는 굴레라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또 하나의 진보된 세계인 '훈'이 등장한다. 행성 훈은 지구와 마찬가지로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 그리고 한바우, 코만, 태바쿤, 쿠바이센이라는 행성들과 교류 중이며 각각의 행성 주변에는 그들만의 고유한 우주공간이 존재한다.

훈은 현재의 지구보다 훨씬 더 발전돼 있으며 '도란'이라는 로봇에 대부분의 노동을 맡기고 인간은 최소한의 일만을 수행한다. 이들을 훈에서는 직업인들이라고 부르며 그 외의 인간은 모두 일반인들이다. 노동이 필수가 아닌 선택인 것이다.

오랜 시간 훈, 한바우, 코만, 태바쿤, 쿠바이센은 힘의 균형을 이뤄왔지만 태바쿤이 코만을 침공함으로써 평화는 깨지고 만다. 태바쿤의 다음 공격 목표로 훈이 예상되지만 훈의 지도부는 이를 좌시하고 주인공은 비밀조직을 중심으로 지도부를 비판하다가 누명을 쓰고 수용소인 지구로 보내진다.

비록 행복을 심각하게 저해할 노동 문제는 존재하지 않지만 훈의 인류도 전쟁과 반란, 폭력을 고스란히 경험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현재의 인류와 마찬가지로 정의와 권력, 사랑, 정 등을 둘러싼 갈등과 고뇌와 맞닥뜨리게 된다.

소설은 '섬 안의 수용소', '일상', '세상 밖으로', '회귀'라는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이 옴니버스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챕터 속 주인공들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 수명의 제한을 넘나들며 4개의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낸다.

인류는 지금껏 신봉해오고 앞으로도 꿋꿋이 지켜나갈 자본주의 이념 아래 앞으로도 무한경쟁에 노출된 상태로 평생 동안 노동을 하며 치열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저자는 수용생활에 진배 없는 인생의 과정 속에서 스스로를 이토록 힘겹게 살아가도록 만들 필요가 있을지 다시 한번 되돌아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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