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와 대세가 맞붙는다. 충무로에서 가장 몸값 비싼 두 배우인 김윤석과 하정우가 맞붙는다. 두 사람은 불과 한 주 간격을 두고 영화 '화이:괴물의 삼킨 아이'와 '롤러코스터'를 선보인다. 김윤석인 이 영화에서 타이틀롤을 10대 배우 여진구에게 양보했고, 하정우는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 '롤러코스터'를 연출했다. 충무로의 대들보인 김윤석과 하정우는 두 영화를 통해 연기가 아니어도 그들의 존재감이 빛나는 이유를 스스로 웅변했다.

▲20대 배우 조련사, 그 이름은 김윤석

요즘 충무로는 20대 배우 기근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배우 김수현 유아인 등의 주가가 상승했지만 자원이 풍부한 3040 배우에 비해 큰 스크린을 가득 채울 만한 연기력과 티켓파워를 갖춘 20대 배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충무로에 단비 같은 20대 배우들을 공급해주는 이가 있다. 다름 아닌 배우 김윤석. 충무로를 이끄는 맏형 격인 김윤석은 '20대 배우 조련사'로 유명하다. 그와 함께 영화에 출연했던 '젊은 피'들은 줄줄이 차세대 충무로를 이끌 배우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김윤석이 20대 배우를 처음 만난 건 2006년작인 '타짜'. 당시 주인공을 맡은 배우 조승우의 나이는 27세였다. 물론 타이틀롤은 조승우의 몫이었지만 극중 주인공 고니의 최대 난적인 아귀 역을 맡은 김윤석은 서슬 퍼런 연기로 조승우와 대립각을 세웠다.

2009년작인 '전우치'에서는 28세 강동원이 김윤석과 맞붙었다. 이 작품에서도 주인공 전우치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은 화담 역을 맡은 김윤석이었다. 한 영화 관계자는 "두 영화에서 김윤석은 조연에 가까웠다. 하지만 주연보다 큰 존재감을 발휘하는 김윤석에 뒤지지 않게 두 배우는 이를 악물고 연기했고 연기력과 흥행 면에서 모두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10년을 넘어서면서부터 김윤석은 '조련사'다운 면모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2011년작인 '완득이'의 타이틀롤은 당시 26세인 유아인이 맡았다. 아직 충무로에서 검증받지 못한 어린 배우를 주연으로 쓴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하지만 김윤석은 그 곁을 든든히 지켰고 유아인은 영화 한 편을 거뜬히 책임질 수 있는 주연급 배우로 성장했다. 그리고 이듬해 개봉된 김윤석 주연의 영화 '도둑들'에서는 배우 김수현이 재발견됐다.

9일 개봉된 영화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감독 장준환ㆍ제작 나우필름) 역시 타이틀롤은 이제 고작 17세인 배우 여진구다. 이 영화에서 여진구는 기대 이상의 연기력을 이끌어냈고 그 뒤에는 김윤석이 든든히 서 있었다. 이어 김윤석은 6일 크랭크인 된 영화 '해무'(감독 심성보)에서는 스크린에 첫 데뷔하는 배우 박유천과 호흡을 맞춘다.

아직 여물지 않는 배우들이 두 발로 설 수 있도록 이끄는 방법을 묻자 "그건 내가 아니라 감독이 해낸 일"이라고 자신을 낮춘 김윤석은 "나를 비롯해 쟁쟁한 배우들과 함께 연기 호흡을 해야 한다고 하면 그 친구들이 촬영 전 어마어마한 준비를 하고 나오지 않을까"라고 되물었다.

그는 이어 "스크린 안에서는 선ㆍ후배를 떠나 동료다. 당연히 동료가 제 기량을 다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다고 특별히 가르치는 건 없다. 동등한 입장에서 스스로 길을 발견하도록 지켜본다. 자생력을 키우도록 돕는다"며 "그게 최고의 교육"이라고 덧붙였다.

어린 후배 배우에게 능히 타이틀롤은 양보하지만 그 안에서 묵묵히 자신의 몫을 다하며 스스로 빛을 내는 배우, 그가 바로 김윤석이다.

▲하정우의 '롤러 코스터',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뒷이야기

배우 하정우의 첫 연출작 '롤러 코스터'(제작 판타지오픽쳐스ㆍ개봉 17일). B급 유머를 지향하는 이 작품을 톱스타의 고군분투 비행기로만 보면 아쉬울 수 있다. 그 안에는 '하정우'란 행간을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요소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괴팍한 성격의 주인공 마준규(정경호)는 결벽증에 편집증까지 지닌 톱스타다.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자리 주변을 닦고 쓸기에 바쁘다. 자신의 물품을 가지런히 정리하기도 한다. 하정우 감독은 이런 마준규의 캐릭터를 자신의 지인에서 따왔다. 후반부 웃음을 안기는 단발머리 의사 역의 이지훈이다.

이지훈은 하 감독의 중앙대 후배이자 절친한 친구다. 조각 같은 외모에 남성적인 매력을 지닌 이지훈은 실제 상당히 깔끔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한다.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자담배를 선호하는 그는 촬영장 내 '전자담배 신드롬'을 불러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와 오랜 세월 친분을 이어온 하 감독은 자신이 관찰한 이지훈의 깔끔한 면모를 캐릭터에 녹여냈다.

태풍으로 승객과 승무원들이 위기에 처한다는 설정은 동료배우 류승범의 실제 경험을 모티브로 했다. 류승범은 지난해 김포로 오는 비행기에서 태풍 볼라벤으로 착륙에 난항을 겪었고, 제주도까지 갔다 돌아오는 경험을 했다. 하정우는 이 실화에서 착안해 '롤러 코스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정우의 지난 출연작 패러디를 찾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장면이지만 하정우의 팬이라면 큰 웃음이 터트릴 만한 대목이다.

극 중 마준규가 남자 승무원을 상대로 펼치는 현란한 액션은 '베를린'에서 하정우가 선보인 액션을 그대로 옮겨왔다. 피를 철철 흘리는 기자가 아무렇지 않게 괜찮다고 말하는 장면은 '추격자'의 파출소 신을 연상하게 한다. 승무원들이 감자 먹는 장면은 하 감독의 '먹방'(먹는 방송)으로 유명한 '황해'가 떠오른다.

기장 역의 한성천은 이번 작품에서 빛나는 배우다. 국적 불명의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머리를 M자형으로 깎고 살을 찌웠다. 팔에 가득한 문신은 하 감독이 직접 그렸다. 제작을 맡은 권남진 PD에 따르면 "특정한 도안 없이 하 감독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그린 그림"이다. 완성하는 데 1시간 정도 걸렸다. 권PD는 "제작 단계에서부터 기장의 팔에 문신을 그렸으면 했다. 기존 도안으로 테스트를 해봤지만 마땅치 않아 하 감독이 그렸다"고 전했다.

극 중 배경이 되는 바비항공사에 숨겨진 이야기도 다양하다. 항공사의 마스코트는 인자로운 표정의 한 남자로, 하정우와 2005년부터 동고동락한 이모 매니저다. 독특한 헤어스타일과 유쾌한 성격으로 유명한 그를 캐릭터로 표현한 셈이다. 코믹한 항공사 로고를 원한 하 감독의 콘셉트와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디자인은 미술팀이 도맡았다.

극 중 흑인 승무원은 전문배우가 아닌 케냐에서 온 일반 유학생이다. 김활란 승무원을 연기한 배우 김재화의 친구인 아냥고 비트리스 오케치 씨다. 재연배우를 찾던 제작진은 김재화의 추천을 받아 섭외했다. "마준규씨 팬이에요"란 그의 정확한 한국어 발음은 제작진이 훈련시킨 결과다.

여성 승무원들의 캐릭터는 다양한 경험담(?)을 섞어 빚어냈다. "승무원과 교제 경험이 있는 출연진들의 이야기를 듣고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영화에서처럼 승객과 승무원으로 만나 사귀게 된 경우도 실제 있더라"라는 것이 관계자의 이야기다.



안진용기자 realy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