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당연히 추구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만큼 지키기 어려운 말이다. 녹록하지 않은 세상살이라는 이름으로 주변의 기대가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들이 숱한 핑계로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평범하게 남들처럼 살아가기를 포기해야 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CMJ 뮤직마라톤에서 만난 애니(고연경ㆍ보컬 키보드) 솔(한솔ㆍ베이스) 토비(황정익ㆍ기타 프로듀스) 등으로 2011년 결성된 3인조 일렉트로닉밴드 러브엑스테레오. 이들은 좋아하는 일을 재미있게 해보자는 당연하고 단순한 원리에서 출발했다.

"스매싱펌킨스ㆍ뉴오더 등의 음악을 듣고 자랐어요. 자연스럽게 우리음악도 그런 분위기가 나죠. 그렇다 보니 우리 감성이 국내 시장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금세 깨달았어요. 국내 체류하는 외국인들을 위한 무대에 자주 서면서 외국인들의 반응이 남달랐어요. 자연스럽게 한 번 나가보자 했죠."(토비)

EP 3장을 내며 워밍업을 끝낸 이들은 자연스레 해외 투어를 기획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맨땅에 헤딩'하는 고군분투의 서곡이었다. 일단 세 명의 멤버들이 업무를 분담했다. 토비가 음악 프로듀싱에 전념하고 솔은 SNS를 비롯한 프로모션을 맡았다. 해외에서 성장기를 보내 영어에 능통한 애니는 미국 현지 라디오 방송사에 자신의 음악을 알리며 투어 계획을 짜기에 이르렀다. 퇴로가 있으면 전쟁에 전념하지 못할 것이라는 장수의 심정이었을까? 1년간의 준비가 무르익었고 이들은 과감하게 생업을 모두 접었다. CMJ 뮤직 마라톤의 참가가 확정됐고 이를 중심으로 뉴욕 토론토 워싱톤DC 시카고 디트로이트 보스톤 신시내티 등 7개 도시를 돌며 24개 클럽 무대에 오르는 대장정의 그림이 완성됐다. 하지만 쉬운 일은 없었다. 투어 에이전시 없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각종 문제들이 터져 나왔다.

"연방정부 셧다운 문제가 불거지면서 공연비자가 한 달 가까이 미뤄졌어요. 천재지변이나 다름없었죠. 결국 투어 초반은 포기하게 됐어요. 라디오 방송 출연도 펑크를 냈고요. 사정 설명을 하니 그쪽에서 오히려 위로를 하더군요. 가장 급한 건 숙소문제에요. 친지 집에서 머물 계획이었는데 오해가 생겼는지 어렵다고 하시네요. 온라인으로 민박을 급히 수소문 중이랍니다."(애니)

CMJ 뮤직 마라톤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에게 남은 마지막 행운이었다. 18일 뉴욕대 인근 SBD갤러리에서 열린 이들의 쇼케이스는 해외진출을 노리는 국내 음악 관련 종사자들의 파티와 함께 열렸다. 한자리에 모인 CMJ VIP를 비롯해 미국 뮤직 비즈니스 유력 관계자들의 눈도장을 받은 것. 이례적으로 20일에도 CMJ 관련 무대에 다시 설 기회를 거머쥐기도 했다.

이들에게 단박에 스스로의 이름을 알려질 거란 헛된 기대는 없다. 차근히 스스로의 음악을 해나갈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살면서 모든 것을 가질 순 없다. 좋아하는 것은 더욱 그렇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아낌없이 비울 줄 아는 이들의 용기는 그래서 더욱 빛을 발한다. 이들의 북미 투어는 11월까지 예정돼 있다.

"힘들게 왔지만 힘든지 모를 정도로 신나고 재미를 느껴요. 음악을 하길 잘 했다는 생각도 들죠. 한국으로 돌아가면 해결할 문제가 많겠지만 지금은 이 순간을 즐기는 게 맞는 것 같아요."(애니)



뉴욕(미국)=김성한기자 wing@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