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 닥터' 성공리 종방 출연작품 마다 운좋게 흥행 성공… '선구안이 좋은 배우'로 통해요화장 지우고 진짜 의사처럼 연기… 동물 장기로 수술 정말 힘들었죠아직 '굿 배우'는 아니어도 '잘 가고 있는 배우'라고 생각

성공리에 종방된 KBS 2TV 드라마 '굿 닥터'에 출연한 배우 문채원의 필수 소지품은 손톱깎기였다. 그는 촬영 현장에서 연신 손톱을 잘랐다. 극중 문채원의 역할은 털털한 소아외과 의사 차윤서. 단순히 털털해서가 아니라 언제든 얇은 수술용 장갑을 끼고 응급환자를 수술해야 하는 의사로서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렇게 손톱을 자주 깎아본 건 처음이에요. 조금이라도 자라면 예민해졌죠. 실제라면 바쁜 의사 선생님이 손관리할 틈이 어디 있겠어요?"

데뷔 후 처음으로 의사 역할을 맡은 문채원은 진짜배기 의사처럼 보이기 위해 꾸미기보다는 덜어냈다. 얼굴에서 화장기를 걷었고 머리카락은 말총스타일로 동여맸다. 박재범 작가가 "여배우가 너무 외모를 놓은(?) 거 아니냐?"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하지만 차윤서에 몰입할수록 문채원은 더 빛이 났다. 배우는 얼굴이 아니라 연기가 빛날 때 진정 예뻐보인다는 것을 몸소 증명한 셈이다.

"하나씩 버려나가는 과정이 재미있고 편했어요. 물론 배우로서 관리가 안 된 모습을 보이는 건 저도 싫죠. 하지만 개인적인 관리가 안 된 것이 아니라 드라마 속 캐릭터를 위한 노력이었기 때문에 시청자들도 이해해주실 거라 믿었어요."

어린 시절 메디컬 드라마의 원조 격인 '종합병원'을 보며 배우의 꿈을 키운 문채원에게 의학 드라마는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 같은 존재였다. 매년 등장하는 다양한 의학 드라마 중 문채원이 '굿 닥터'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자폐증을 앓고 있는 의사'라는 소재가 문채원의 마음을 끌었다. 물론 자폐를 딛고 의사로서 성장해 가는 박시온 역은 배우 주원의 몫이었지만 문채원은 '굿 닥터'에서 자신의 몫이 분명히 있을 거라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틀리지 않았다.

"이미 완성된 의사가 아니라 자존심과 자긍심으로 똘똘 뭉친 젊은 의사들의 성장담을 그린다는 점이 좋았어요. 대부분 의학 드라마에서는 여자 후배가 실력이 출중한 선배를 좋아하죠. 하지만 '굿 닥터'에서는 차윤서가 조금은 모자란 후배 박시온에게 연민을 느끼고 사랑이 싹터요. 절대 뻔하지 않은 드라마가 나올 거라 자신했죠. 자폐를 소재로 한 의학 드라마가 과연 또 나올 수 있을까요?"

'굿 닥터'가 선사한 열매는 달았지만 건강한 열매가 맺히고 성장해가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의학 드라마는 촬영 과정이 힘들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전문용어는 입에 잘 붙지 않고 더미(dummyㆍ인체 모형)와 동물의 장기를 이용한 수술 장면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정작 문채원은 "체력적으로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소아외과의 의학 용어는 흉부외과나 일반외과에 비해 적은 편이었어요. 하지만 수술 장면을 비롯해 대부분을 서서 찍었기 때문에 체력적 소모가 엄청났죠. 게다가 무더운 여름이었잖아요. 이래서 '여름 의드(의학 드라마)는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나 봐요.(웃음)"

문채원은 연예계에서 '선구안이 좋은 배우'로 손꼽힌다. 2011년작인 '공주의 남자'부터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를 거쳐 '굿 닥터'까지 성공 반열에 올렸다. 그 사이 스크린에서도 '최종병기 활'로 700만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비결이 무엇일까.

"어느 작품도 잘될 거라 단언할 순 없어요. 같은 작품이라도 누가 연출하고 누가 연기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죠. 때문에 신중하게 선택하려 항상 고민해요. 다행히 그 동안 좋은 분들과 만나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었어요. (웃으며)제 선구안이 좋은 게 아니라, 인복이 많다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문채원은 차기작이 기대되는 배우다. 매 작품마다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작품에서는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거란 묘한 기대감이 들게 한다. 문채원은 "급하게 정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영화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의 이야기를 꺼내며 은근한 부러움을 드러냈다. 여전히 한국 연예계는 여자배우보다는 남자배우를 중심에 세운 작품이 더 많다. 어린 배우 여진구의 잠재력을 일깨운 '화이'를 보며 여자배우를 활용하는 시장이 넓어지길 바라는 것은 결코 문채원 만의 욕심은 아니다.

"그렇게 좋은 작품을 보면 갈증을 느껴요. 아직은 도전하고 싶고 해보고 싶은 역할이 많다는 의미겠죠? 우선은 많은 작품을 경험하고 싶어요. 전 어떤 작품에 출연해도 퇴보는 없다고 생각해요. 크게 성장할 순 없어도 분명 많은 것을 배우죠. 이런 과정을 겪다보면 배우가 되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굿 닥터'는 마지막회에서 대사를 통해 좋은 의사를 정의했다. 차윤서는 "좋은 사람이 좋은 의사"라고 말했고 박시온이 "고민하는 모습을 가진 의사가 좋은 의사"라고 화답했다. 질문을 살짝 바꿔 문채원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굿 배우'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안 그래도 자문해봤어요. 나는 좋은 배우일까? 아님 좋은 배우가 되고 싶은 배우인가? 결국 아직은 좋은 배우라 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다수에게 좋은 평가와 인정을 받는 동시에 스스로 만족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하지만 '잘 가고 있다'고는 생각해요. '굿 닥터'에 출연하며 많은 것을 배웠듯 하나씩 채워가다 보면 저 역시 언젠가는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안진용기자 realyong@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