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가 리메이크 열풍, 득과 독 사이화제몰이 용이하고 검증된 점 등 안전성공한 작품 공통점은 현지 정서 맞춘 각색리메이크는 답습 아닌 재창작 돼야

하얀거탑
올해 벌써 4편째다. 방송 중인 SBS 월화미니시리즈 '수상한 가정부'를 비롯해 MBC '여왕의 교실' KBS 2TV ''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와 준비 중인 '1리터의 눈물'까지. 국내 지상파는 일본 원작 드라마에 점령 당했다.

리메이크가 새로운 일은 아니다. ''(2007) ''(2009) ''(2010) '닥터 진' '아름다운 그대에게' (이상 2012) 등 일본 콘텐츠를 원작으로 한 작품은 꾸준히 제작됐다. 최근에는 케이블ㆍ종합편성채널 드라마가 합류하며 그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이에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리메이크 돌아보다

이를 주제로 한 컨퍼런스도 열렸다. 지난 17일 경북 경주시 신평동 힐튼경주에서 개최된 제8회 아시아드라마컨퍼런스다. 한국 일본 중국 필리핀 베트남 등 아시아 5개국 100여 명의 드라마 관계자들이 자리해 리메이크 작품 성공사례 및 개선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그만큼 리메이크가 일종의 전략이자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였다.

이날 관계자들이 공통점으로 입을 모은 것은 '리메이크가 성공을 담보하지 않는다'였다. 가까운 예로 '여왕의 교실'은 저조한 시청률로 막을 내렸고, '수상한 가정부'는 혹평 세례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최지우의 전작이자 부진한 시청률로 고전했던 MBC '지고는 못살아'(2011) 역시 TBS '사사키 부부의 인의 없는 싸움'이 원작이다. 세 작품 모두 일본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국내에선 실패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마니아 층의 지지를 받았던 '마왕'은 일본에서 리메이크되면서 큰 인기를 누렸다.

꽃보다 남자
날로 치열해지는 시청률 경쟁에서 리메이크는 매력 있는 선택지다. 방영 전 화제몰이에 용이한 데다 이미 검증됐다는 점에서 안전하다. 국내 작품인 '마왕'과 '미남이시네요'의 일본판을 연출한 타카하시 마사나오PD는 "리메이크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명확하게 나와있다. 원작보다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고 장점을 꼽았다. 실제 '그 겨울, 바람이 분다'와 '' 등은 원작을 능가하는 훌륭한 완성도를 보여줬다. 뛰어난 몰입도를 보여준 ''은 방영 당시 골수 팬들을 양성했다.

성공의 조건 '현지화'

이처럼 성공한 작품들의 공통점은 철저한 현지화다. 각색의 관건은 현지의 정서에 맞추되 원작의 고유성과 재미를 유지하는 것이다. 좋은 예가 ''이다. 기획에 참여한 KBS미디어 유상원 프로듀서는 "원작의 좋은 구조와 에피소드를 활용하면서 캐릭터의 특성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현실에 있을 법한 일본판 여주인공과 달리 김혜수가 연기한 한국판 여주인공은 슈퍼우먼에 가까운 비현실적인 인물로 재탄생했다.

여기엔 1년 동안의 취재 과정이 있다. 원작은 파견직 문화를 다룬다. 파견직원이란 소재는 국내에서 이슈화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로 치환됐다. 한국적인 정서와 시청자 취향을 덧입혀 계약직 사회 초년생의 성장담을 녹여냈다. 덕분에 ''은 국내 시청자들을 웃기고 울린 '공감 드라마'로 재창작됐고, 비정규직 문제까지 환기시켰다.

다만 현지화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리메이크 작품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각국은 제각기 다른 방송ㆍ제작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일본은 사전 제작으로 주 1회 방송되고 11회를 한 시리즈로 한다. 한국은 단막극이 아닌 이상 16부작, 20부작, 30부작, 50부작 등이다. 타카하시 마사나오PD는 한국 드라마를 각색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고충은 내용 압축이었다고 털어놨다.

직장의 신
리메이크 창작 걸림돌

드라마 혹은 시청자 성향도 아시아 3국이 다르다. 중국은 드넓은 영토와 다양한 민족 구성을 대상으로 한다. 아직 규제가 심한 터라 제한이 많고 도덕적 가치를 강조한다. 일본은 장르드라마에 강하다. "한국은 유교사상이란 가치가 남아있지만 일본은 이미 터부가 사라졌다. 때문에 일본에선 특별한 설정 없이는 멜로를 만들기 힘들다. 일본에서 멜로라는 장르는 고전이 됐다"는 것이 반에이트(후지테레비 그룹 산하 드라마 제작사)의 나카야마 가즈키 대표 이야기다.

아울러 잦은 리메이크는 순수한 창작에 대한 의지를 꺾을 수 있다. 중국에서 온 왕리핑 작가는 "리메이크 드라마는 성공사례를 복제한 것"이라며 "제작사만 이익을 본다.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밖에도 국내외 관계자들은 창작물에 대한 장려를 거듭 강조했다.

발 빠른 시대다. 네티즌들은 다른 나라의 드라마를 실시간으로 즐긴다. 시청자들의 시야가 확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리메이크는 계속될 것이다. '리메이크=창작 저해'라는 단순히 부정적인 시선을 거두고 작품의 품격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때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를 집필한 노희경 작가는 재창작이란 단어를 반복해 사용했다. 나아가 양질의 작품이 역수출될 때 부가가치까지 창출할 수 있단 점에서 리메이크는 답습이 아닌 재창작 돼야 한다.


공부의 신
배우 조인성(왼쪽부터), 김규태 감독, 노희경 작가, 배우 송혜교, 정은지, 김범이 출연한 SBS 수목드라마 '그겨울, 바람이 분다' 제작발표회가 1월31일 열렸다.

경주(경북)=김윤지기자 jay@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