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으로 가는 연예인의 득과 실"조용히 넘어가자" 묵과했다간 삽시간에 SNS로 눈덩이 처럼 번져 적극적 법적 대응으로 '초동진화'"소송에 휘말렸다" 사실 자체가 또 다른 스캔들로 확산 되기도 승·패소 상관없이 이미지 훼손 부담

연예계 희대의 사건이 발생했다. 30세 어린 여성과 교제 중인 사실을 당당히 고백해 박수를 받았던 배우 . 그의 연인이었던 K 기자가 "에 대해 폭로하겠다"며 기자회견을 자청하며 두 사람의 관계는 공개 연인을 선언한 지 불과 보름 만에 금이 갔다. 여기까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남녀 문제였다. 하지만 K 기자가 "의 아들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이 사건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먼저 법적 대응 카드를 꺼내든 건 의 두 아들인 배우 백도빈과 백서빈이었다. 그들은 담당 법무법인을 통해 "K기자가 폭행을 당했고, 백도빈과 백서빈이 의 재정적 지원이 끊길 것을 두려워하여 과 자신의 결혼을 반대하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며 "모든 자료들을 수사기관과 법원에 제출해 명확한 법적 판단을 받겠다"고 반박했다.

통상 연예인들은 법적 대응을 꺼리는 편이었다. 법원에서 공방을 주고 받는 과정이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재판 중이라는 사실 때문에 작품 및 CF 섭외에 지장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용히 넘어가자'는 분위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SNS의 발달에 따라 얼토당토않은 소문과 잘못된 주장을 묵과하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비쳐지며 삽시간에 번져 나가기 때문이다. 때문에 오히려 적극적인 법적 대응을 통해 진실을 밝히고 억울함을 벗자는 분위기가 우세해지고 있다.

연예인 적극적 법적 대응

백윤식
이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거대화 및 체계화되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드라마 한 편에 출연하며 수 십 억원의 개런티를 챙기는 스타를 보유한 연예기획사는 더 이상 '구멍가게'가 아니다. 그들이 찍는 광고까지 감안하면 스타 1인당 연간 매출은 100억원에 육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웬만한 중소기업 못지않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기업과 일반 기업이 다루는 콘텐츠는 질적으로 다르다. 일반 기업은 사소한 문제가 불거졌을 경우 조금의 피해만 감수하면 원상복구시킬 수 있다. 하지만 대중의 인기와 이미지로 먹고 사는 연예인은 다르다. 무심코 뱉은 말 한 마디와 SNS에 올린 글 하나 때문에 논란에 휩싸이고 이에 따른 각종 위약금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 편당 수억 원의 CF 계약을 맺던 연예인들이 하루아침에 누구도 찾지 않는 '깡통'이 돼버릴 수 있다는 의미다. 연예 관계자들 사이에서 리스크 매니지먼트의 중요성이 점점 부각되는 이유다. 때문에 점점 더 로펌의 문을 두드리는 연예인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부터 전 소속사와 법정 다툼을 벌이던 배우 은 20일 결국 승소했다. 법원은 전 소속사가 을 상대로 낸 전속계약효력존재확인 등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이 전 소속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등 반소 청구에 대해서는 "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적 분쟁 때문에 원활한 연기 활동을 하지 못하던 은 지난 1월 SBS 드라마 '돈의 화신'의 출연을 앞두고 서울 합정동 모처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아직 전 소속사와 분쟁을 마무리하지 못한 의 드라마 출연을 둘러싼 의혹을 해명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는 의 변호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화우의 담당 변호사가 동석했다. 대부분의 질문에는 이 답했지만 소송과 관련된 다소 민감한 내용은 변호사가 나서서 답변했다. 담당 법무법인의 적절한 대응 덕에 을 향한 대중의 날 선 시선 또한 누그러졌고 은 '돈의 화신'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강지환
전문 변호사 역할 커져

하지만 변호사라도 모두가 전문가는 아니다. 법은 알아도 연예계의 특수성을 모르는 법무법인의 경우 오히려 사건을 확대시킬 수 있다. 연예인 및 연예언론의 특징을 잘 아는 전문 변호사를 만나야 피해를 최소화하며 명예를 지킬 수 있다.

굵직한 연예계 사건을 다수 맡았던 법무법인 청파의 이재만 변호사는 "연예인 사건은 비(非) 연예인 사건과 다르다"고 잘라 말했다. 이 변호사는 "사건 변호와 함께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동시에 해줘야 한다. 최종적으로 승소해도 재판 과정 중 이미지가 망가지면 활동 재개가 힘들어진다. 훼손된 명예는 쉽게 복구되지 않기 때문에 보도되는 기사도 일일이 챙기며 대응해야 한다. 그러려면 언론사와도 밀접한 연결 고리를 갖고 있는 전문 법무법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대마초 흡연으로 기소됐던 배우 주지훈의 사건을 의뢰받은 이재만 변호사는 먼저 자신의 사무실로 취재진을 불러 공식 입장을 전했다. 사건 발생 초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않으면 각종 추측성 기사 때문에 대중이 진실과 가정을 혼돈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기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줄 확실한 대화 창구가 필요하다.

아울러 사건 의뢰인인 연예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이어가는 것도 필수다. 일반인의 경우 재판 결과가 가장 중요하지만, 연예인이 연루된 사건은 재판 과정이 마치 중계되듯 일거수일투족이 기사화된다. 이런 기사를 접하며 심리상태가 불안해지는 연예인을 다독이는 것도 담당 변호사의 몫이다.

이재만 변호사는 "연예인들은 대부분 굉장히 예민한 성격을 갖고 있다. 긴 재판 기간 동안 그들을 안심시키고 신뢰를 줘야 한다. 연예인 사건의 경우 아무리 재판에서 이겨도 재판 과정 중 이미지 훼손을 막지 못하면 피해가 크다. 무죄추정원칙에 의거해 해당 연예인이 대중의 지탄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잘못된 언론 대처로 연예인의 이미지가 실추된 경우도 있었다. 몇 해 전 개인사 때문에 소송에 휘말려 2년 넘게 법정 싸움을 이어온 여배우 A. 그녀는 당시 오빠의 지인을 통해 변호사 B를 소개받았다. 연예 사건을 한 번도 다뤄본 적이 없었지만 "믿고 맡겨달라"는 지인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B는 시작부터 초보적인 실수를 남발했다. 공개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꺼내 기사화되는 일이 발생했고 보도된 기사를 두고 담당 기자와 설전을 벌이다가 관계가 틀어지기도 했다. 결국 A는 소송이 끝날 때까지 몇몇 매체의 악의적인 기사 때문에 고통받아야 했다. A 측 관계자는 "B는 소송이 끝난 후에도 사건 기록을 곧바로 넘겨주지 않고 시간을 끌었다. 거액의 변호사 비용을 감당하면서도 우리의 뜻은 제대로 펼치지도 못한 것 같다"고 토로했다.

소송은 또 하나의 스캔들

하지만 법적 대응이 능사는 아니다. 억울함을 벗기 위해 법의 힘을 빌렸다손 치더라도 '소송에 휘말렸다'는 사실 자체가 또 하나의 스캔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 기간이 얼마나 길어질 지도 미지수다. 민사의 경우 항소와 상고까지 거쳐 대법원의 판결을 받으려면 족히 2년은 걸린다. 그 안에 '소송'은 꼬리표처럼 해당 연예인을 따라 다닌다.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먼저 소송을 제기했다고 반드시 승소하는 건 아니다. 소송에서 질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 여배우 C는 명예훼손을 이유로 전 소속사 등을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했지만 결국 패소해 거액의 변호사비만 쓰고 이미지도 실추됐다.

승소해도 마냥 웃을 순 없다. 재판 결과를 알리는 과정에서 이미 대중의 기억 속에 사라진 사건을 되짚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연예인들이 명예훼손 혐의로 입건된 악플러들을 대부분 선처하듯 연예인들은 자신에게 피해를 입힌 가해자도 용서해야 한다는 암묵적 인식이 대중들 사이에 도사리고 있다. 선처없이 끝까지 법적 책임을 묻는 모양새가 대중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로 보일 수 있다.

법정 공방은 '양날의 칼'

결국 연예인의 법정 공방은 '양날의 칼'이다. 연예인들은 그들의 권리와 명예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법으로 소를 제기한다. 법의 힘을 빌릴 만큼 억울하고 피해가 크다는 것을 강조하는 적극적인 대응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법적 공방은 결코 좋은 이미지를 줄 수 없다. 특히 당사자가 직접 출두해야 하는 형사 사건의 경우 법원에 드나드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 공개되며 부정적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연예인의 경우 같은 죄를 지어도 일반인에 비해 더 가혹한 비판에 시달릴 때가 많다. 만약 죄가 있다면 그 죄에 해당하는 만큼만 처벌받도록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실정법 외에 '국민정서법' 때문에 항상 이미지를 고려해야 하는 연예인들은 법정 싸움에 있어서 약자일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안진용기자 realyong@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