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르가 된 복고, 응답하라 1990년대'응답하라1994' '친구2' 등 1990년대 품은 복고 각광옛 영화 재개봉… 가요 리메이크 90년대 가수들 '제2 전성기'

고는 더 이상 트렌드가 아니다. 일종의 장르다. 영화 '써니'(2011) '건축학개론'(2012), 드라마 '응답하라 1997'(2012)이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누릴 때, 그저 지나가는 열풍이라 생각했다. 천만의 말씀이다. 더욱 구체적으로는 가까운 과거인 1990년대가 그 대상이다. 1990년대를 품은 복고는 이제 하나의 장르로, 문화 콘텐츠 전방위에서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케이블채널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94'(극본 이우정ㆍ연출 신원호)다. 17일 방송된 10회는 시청률조사회사 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기준 평균 8.8%, 순간최고시청률 10%를 기록했다. 1994년은 서태지와 아이들과 농구대잔치가 인기를 끌던 시기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고, 성수대교가 무너진 사건도 있었다. 이제는 보기 힘든 워크맨 삐삐 카세트테이프 486컴퓨터를 사용했고, 음료수 마하세븐과 OB맥주를 마시던 시절이다. '응답하라 1994'는 당시의 이야기와 물건들을 정성스럽게 화면 안에 재현한다. 1994년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추억을, 그렇지 않은 이들에겐 신선함을 안긴다.

물론 단순한 고증드라마는 아니다. 이런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신촌하숙의 하숙생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디테일을 뛰어넘는 당대의 감성이 '응답하라 1994'의 진짜 얼굴이다. 7명의 대학생들은 그 안에서 다양한 관계를 맺는데, 이들 전체는 상당히 끈끈한 유대를 지닌 공동체다. 이들은 매일 아침 얼굴을 맞대고 식사를 하고, 밤에는 술잔을 기울이며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 안에는 엇갈린 사랑도, 진한 우정도 있다. 지금은 찾기 힘든 대학가의 낭만이 '응답하라 1994'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나간 것에 대한 그리움은 스크린에서도 감지된다. 14일 개봉한 영화 '친구2'(감독 곽경택ㆍ제작 트리니티엔터테인먼트)는 개봉 3일 만에 100만 관객을 모았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란 한계를 뛰어넘은 성과다. 흥행의 일등공신은 한때 '친구'를 사랑했던 30~40대 남성 관객들이다. 네 남자의 우정과 배신 갈등을 그린 '친구'(2001)는 어느덧 '남자 영화'의 아이콘이다. 12년 만에 돌아온 '친구2'는 '친구1'의 연장선상에 있다. 등장인물들은 현재를 살아가지만 지난 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곽경택 감독 스스로 '친구2'는 노스탤지어 누아르, 향수가 있는 거친 남자들의 이야기라고 정의했다.

재개봉하는 영화의 수도 상당하다.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에 빛나는 '올드보이'(2003)는 21일 재개봉했다. 10년 전 개봉일과 맞춰 재개봉해 의미를 더 했다. 앞서 뤽 베송 감독의 '제5원소'(1997)와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1998)가 이번 달 재개봉됐다. 기획전으로는 롯데시네마가 18일부터 추억의 명작 8편을 선보이는 '리마스터링 명작 열전'을 진행하고 있다. '라 붐'(1980) '유 콜 잇 러브'(1989) '연인'(1992) '레옹'(1984) '해피투게더'(1998) '러브 레터'(1999) 등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던 작품들이다.

가요계도 마찬가지다. 복고풍의 음악이 유행하던 가요계에는 '리메이크 바람'이 불고 있다. 그룹 서태지와아이들의 최초 리메이크 곡으로 화제를 모은 성시경의 '너에게'가 음원차트를 지배하고 있고, 가수 박정현과 YB밴드 윤도현가 1990년대를 풍미한 터보의 '회상'의 리메이크 음원을 18일 공개했다. 앞서 다양한 장르가 고루 사랑 받으며 발전했던 1990년대는 '한국 가요의 황금기'로 불린다. 그만큼 자원이 풍성한 시기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소위 '1990년대 가수'들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1세대 아이들 멤버들로 구성된 프로젝트 그룹 핫젝갓알지나 가요 영화 할 것 없이 종횡무진 중인 임창정 등이 그 예다. 멤버 토니 안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취소됐지만 핫젝갓알지는 연말 콘서트를 추진하기도 했다. 역시 1세대 아이돌인 지오디(god)는 컴백을 준비 중이고, 클릭비는 해체 11년 만에 재결성해 전 소속사인 DSP미디어(전 대성기획)의 패밀리 콘서트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이 밖에도 김종국 DJ DOC 쿨 R.ef 등이 함께한 공연 '청춘나이트 콘서트'는 성황을 이뤘다.

복고가 일종의 장르가 된 이유는 전 세계적으로 장기화된 불황으로 설명된다. 마른 수건에서 물을 짜는 듯한 '무한 경쟁'은 지난 날에 대한 그리움을 북돋았다. 여유가 남아있던 과거는 따뜻한 추억이다. 당시의 온도는 지금까지 남아있지 않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고유의 '정(情)'이란 정서가 관통한다. 먼 훗날 '응답하라 2013'이 만들어진다면 취업이 가장 큰 목표인, 학점과 스펙 관리에 목맬 수밖에 없는 대학생들의 군상이 그려질지 모른다.

그 가운데도 1990년대가 사랑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치적, 경제적인 안정기에 접어들며 각종 문화 콘텐츠가 꽃피우기 시작하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당시 유년기 청소년기를 보내며 대중문화를 향유한 이들은 이제 주 소비층이 됐다. 그들이 품은 그리움의 정서가 복고라는 하나의 장르를 소비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이들의 연령대도 마찬가지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만든 신원호PD와 이우정 작가는 실제 94학번 동갑내기다.

물론 '1990년대 복고'가 흥행을 담보 하지 않는다. 아울러 새로운 장르와 스타일의 콘텐츠의 개발도 필요하다. 언제까지 1990년대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복고의 인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비록 재해석된 무엇이라 할지언정, 오히려 복고가 전반을 지배한다면 문화의 다양성에 위배된다. '가왕' 조용필은 올해 새로움으로 무장해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맹목적인 유행이 아닌 하나의 장르로 안착하고, 다른 장르와 조화를 이루는 것. 그것이 '복고의 길'이 되겠다.



김윤지기자 j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