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방 '응답하라 1994' 나정역11년전 '반올림2' 순수 소녀에서 팔딱거리는 선머슴 같은 여자 변신더 망가질 수도 있었는데 미련 남아… 6개월간의 촬영 진짜 가족된 기분마지막회 찍고 모두 울었어요

눈부신 성장이다. 11년 전 KBS 2TV 청소년 드라마 '반올림2'로 시청자들의 귀여움을 받던 소녀는 훌쩍 자랐다. 스무 살을 우정과 사랑으로 치열하게 채웠다. 서툴기 짝이 없었고, 짝사랑의 지독함도 엇갈림의 슬픔도 있었다. 하지만 그 자체로 아름다운 시절이기에 선머슴 같은 그녀는 반짝반짝 빛났다. 28일 종방한 케이블채널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94'(극본 이우정ㆍ연출 신원호)에서 고아라가 연기한 주인공 성나정의 이야기다.

케이블채널 드라마로서 10%대의 시청률을 넘긴 '응답하라 1994'. 고아라는 흥행을 주도한 주인공이었다. 연기경력 12년차의 고아라는 제 옷을 입은 양 화면에서 팔딱거렸다. 사투리에 괴성, 욕설은 물론 액션 신을 방불케 하는 구타장면도 거침 없었다. 단발머리에 촌스러운 파마를 했고, 늘씬한 몸매를 감춘 수수한 옷을 입었다. 좋아하는 여학생이 있다는 남자에게 "우선 자빠뜨리라"고 조언하는 능청스러움도 있었다. '예쁜 척'을 포기한 캐릭터는 되려 친근하고 사랑스러웠고 귀여웠다.

"전 아쉬워요. 자신을 더 내려놓을 수 있거든요. 음악프로그램을 보면서 춤 추는 장면은 급하게 찍었어요. 지문엔 '막춤'이라고 적혀 있는데 본능적으로 추다 보니 박자가 딱딱 맞더라고요. 못 추는 걸 연기해야 하는데 너무 잘 췄어요. (웃음) 처음에는 PD님이나 작가님이 조심스럽게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는데 나중엔 절 말렸죠. 코를 파겠다 등 지나친 의욕을 보였거든요."

나정과 고아라는 꽤 많이 닮아 있었다. 둘 다 경상도 출신(나정은 마산, 고아라는 진주)이고 인형 같은 외모만큼 마음씨가 예쁘다. 싹싹하고 깍듯한 성격, '오지랖이 넓다'는 말을 들을 만큼 항상 상대방을 배려하는 점도 그러하다. 본인은 "아주 조금 비슷하다" 고 웃었다. 대신 제작진에게 공을 돌렸다.

"작가님 관찰력이 정말 대단해요. 평소 말투나 습관들이 대본에 고스란히 적혀 있어요. 대사 외우는 데 어려움이 없었어요. '반올림' 출연하던 시절 지금 PD님이 KBS에 근무했는데, 마주치는 사람마다 인사하고 말 거는 제 모습이 인상적이었대요. 그런 절 기억하고 이번 작품을 제안해주셨어요. 전작인 '응답하라 1997'의 팬이었기 때문에 정말 영광이었죠."

배우와 쏙 빼 닮은 캐릭터는 매력적인 주변 인물들을 만나 시너지를 발휘한다. 허술해 보여도 실제론 깊은 속내를 지닌 쓰레기(정우)와 다정한 서울남자 칠봉이(유연석)를 포함한 신촌하숙 친구들, 감초 연기로 웃음을 안기는 동일-일화 부부가 그들이다. 유난히 단체 신이 많았던 터라 6개월의 시간은 이들을 진짜 가족으로 만들어 줬다.

"마지막 회에 나오는 월드컵 응원 신 찍고 다 울었어요. 김성균(삼천포 역) 오빠가 울어서 다들 깜짝 놀랐어요. 울지 말라고 하면서 다 같이 울었어요. 현장에서 시청자 분들이 지어준 별명이나 애칭을 부르면서 즐겁게 보냈어요. 스태프들이 ''나레기'(나정+쓰레기) 촬영 들어간다'며 저와 정우 오빠를 부르기도 했죠."

고아라의 눈빛이 촉촉히 젖어 들었다. 성동일 이일화 정우와 함께 촬영한 마지막 식탁 장면을 설명하면서 그랬다. 정(情)이 가득한 하숙집 풍경이 펼쳐지는 거실 신과 식탁 신은 '응답하라 1994'의 백미다. 등장인물 대다수가 등장해 북적거렸다. 네 사람만이 자리한 그날은 마지막을 앞둔 쓸쓸함이 감돌았다. 헤어짐이 아쉬운 것은 배우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를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코끝이 빨게 졌다.

러브라인에 대해서 그는 할 말이 많았다. 나정의 시점으로 그려지던 초반과 달리 후반으로 갈수록 그의 감정이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시청자의 궁금증을 이어가고 싶었던 제작진의 의지와 드라마의 콘셉트 때문이다. 6년간 이어진 칠봉의 한결 같은 마음에 나정은 "노(NO)"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정 역시 쓰레기를 짝사랑하며 전전긍긍했음에도 말이다.

"나정이는 일편단심 쓰레기였어요. 단 한 번도 칠봉이에게 이성적으로 흔들린 적이 없어요. 나정의 감정이 16부 이후에도 그대로 나왔다면, 칠봉이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나왔을 거예요. 하지만 드라마 특성상 힘들었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두 사람은 다 알고 있었을 거예요. 나정이가 마지막에 칠봉이를 껴안잖아요. 이제 여기서 마무리 짓자는 마음이었고, 칠봉이는 '어떻게 알았느냐'고 말해요. '마지막으로 안아달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예요."

고아라. 한국아이닷컴 이혜영 기자
극 중 두 남자의 사랑을 듬뿍 받은 고아라는 정우와 유연석, 각각과 입을 맞췄다.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정우와는 각종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보여주며 여성 팬들의 부러움을 샀다. 촬영을 시작한 지 한달 만에 유연석과 뽀뽀를 해 서먹했단다. 정우와는 드라마 중반부터 애정 장면을 촬영해 편안했다. "나정이의 감정을 얼마나 잘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민망함은 이미 뒷전이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고아라는 지난 12월 촬영 중 오른 발목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했다. 겨우 드라마를 마친 그는 이달 중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진작 치료를 했어야 했지만 바쁜 촬영 일정에 그럴 수 없었다. 때문에 출연진-제작진과 떠나는 포상휴가도 각종 이벤트도 재고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작품 복'은 터졌다. 고아라의 새로운 면에 대중과 업계가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차기작 부담이 있겠다고 하는데, 사실 못해본 게 참 많아요. 로맨틱 코미디, 사극, 액션 등등 제대로 해보고 싶어요. 더 많이 보여드릴게요. 저는 이제 시작이거든요."



김윤지기자 jay@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