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백' 이후 3년 만에 사극 나들이중국에 '아리랑' 빼앗길 뻔한 기억… 역사 제대로 알아야 우리 것 지켜첫 방송 시청률 11.6% 깜짝 놀라… 정도전이 조재현을 만나 환생한 듯

진짜가 나타났다. 5개월 만에 돌아온 KBS 1TV 새 대하사극 '정도전'(연출 강병택 이재훈ㆍ극본 정현민)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4일 방송된 첫 회는 11.6%의 시청률(닐슨코리아 전국기준)을 기록했다. 창의적 상상력이란 이름으로 역사 왜곡 논란을 불러오는 요즘, 역사적 사실과 고증에 철저히 기반한 정통사극 '정도전'은 단비 같은 드라마였다.

임하는 배우와 제작진의 마음가짐도 남다르다. 특히 타이틀롤을 쥔 조재현은 남달랐다. 그는 지난 2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정통사극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주연배우로서 각오를 다졌다.

"공영방송인 KBS에서 정통사극을 제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그는 "저는 우리 역사에 대해 잘 모른다. 제 아들 세대는 더 모른다"며 개탄했다. "비단 역사 알리기에 대한 사명감 때문에 출연한 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정도전은 알아야 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11년 중국이 조선족의 아리랑을 그들의 국가무형무화유산으로 등록한 일을 언급했다. 중국에 우리의 고유 문화인 아리랑을 빼앗길 위기였다. 조재현은 2012년 경기도 문화의 전당 이사장직을 겸하며 아리랑을 유네스코에 등재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서 아리랑을 세계에 알린 셈이다. 그는 "당시 대한민국은 아예 관심이 없었다"고 꼬집으며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우리의 것을 지킨다고 거듭 강조했다.

조재현은 2011년 MBC 드라마 '계백' 이후 3년 만에 사극 나들이에 나섰다. 대하사극으로는 1995년 KBS 1TV '찬란한 여명' 이후 19년 만이다. 1989년 KBS 공채 출신이기도 한 조재현은 "그 때는 선배님과 감독님들이 너무 어려워서 주눅이 들었다. 그 때 연습실이 아직 있는데 지금도 심장이 벌렁거린다. 연습실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격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정도전이란 역에 대해 "잘 알려진 영웅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공한 인물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정도전에 대한 많은 정보와 지식을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는 것이 지나치면 더 헷갈린다"는 정현민 작가의 말에 접근방법을 달리했다.

"정도전에 대한 평가가 각기 달라요. 천재라는 점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죠. 많은 고뇌와 고민을 하지만 결정은 냉정하게 하는 인물이기도 해요. 다만 인간적인 면에 대해서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회의를 하고 있어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듯 새롭게 알아가는 재미가 있을 거예요.

1,2회에 펼쳐진 정도전이란 인물은 조재현을 만나 생명력을 얻었다. 고려의 비주류였으나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달랐고, 시대에 굴복하지 않았다. 정도전은 지방 한직으로 밀려날 위기에 처하고, 그의 처(이아현)는 폐물을 팔아 마련한 항아리를 뇌물로 바치라 한다. 정도전은 항아리 가득 인분을 채워 사방에 뿌리고, 도망친다. 정도전의 호기로운 면모를 단적으로 보여준 이 장면은 1회의 명장면이었다.

이밖에도 최근 드라마 마다 만날 수 있는 아이돌 그룹 멤버가 한 명도 없는 '정도전'은 중견배우의 위엄을 그대로 보여줬다. 유동근(이성계) 임호(정몽주) 박영규(이인임) 김명수(공민왕) 등은 빈틈 없는 연기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 조재현의 사극 연기는 정도전의 성향을 효과적으로 설명했다. 웅장한 배경음악과 장엄한 스케일, 후반부 등장하는 미니다큐 등은 완성도를 더했다.

100억원의 제작비, 하지만 광고수입 없는 KBS 1TV에서 만들어졌다고 믿기 힘든 만듦새였다. 한편으론 '웰메이드 정통사극'의 시작을 알리며 "정사가 야사보다 재미있다"는 말을 입증하기 충분했다. 그렇다면 조재현과 제작진이 '정도전'을 통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당시는 우리 역사상에서 둘째라면 서러운 난세였어요. 난세가 사람을 만든다고 위대한 인물들이 많았죠. 결국 꿈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요. 지금은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꿈의 크기는 작은 시대입니다. 정도전은 조선을 설계하고 계획하는 과정에서 좌절하기도 하고, 꿈을 이루기도 하죠. 꿈은 불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꿈입니다. 훌륭한 인물을 보여드리고 자긍심을 고취시키며, 어려운 시기에도 꿈을 가지면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정현민 작가)



김윤지기자 j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