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말 한마디'서 발군의 연기로 호평

불륜에 대한 현실적인 접근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SBS 월화미니시리즈 '따뜻한 말 한마디'(극본 하명희ㆍ연출 최영훈ㆍ이하 따말). 그 중심에 선 배우 김지수가 바쁜 시간을 쪼개 인터뷰에 나섰다. 극중 외도하는 남편 때문에 고통 받는 송미경 역을 맡아 지쳐있을 텐데도 인터뷰를 자청한 건 그만큼 하고 싶은 말이 많기 때문이었으리라. '불륜'보다는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주변 이들, 그리고 사람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따말'은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는 터라 숱한 시청자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고 있다.

▲남편의 외도를 지켜본다는 건, 비록 연기지만 참 힘든 일일 것 같다. =대본을 보면 울화가 치민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다. 하지만 예전에는 낯설고 힘든 상황이 주어지면 피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았는데 지금은 이런 감정을 받아들이고 연기로 승화시키려 애쓴다. 연기를 조금씩 즐기게 되고 있는 것 같다.

▲그 동안은 즐기지 못했나. =20대 때는 이리저리 치이다 보니 스트레스가 많았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연기지만 막상 즐기지는 못했던 것 같다. 요즘은 힘든 캐릭터를 맡아 진이 빠지고 나를 소진시키고 나면 보람도 느껴진다. 설렁설렁 일하는 것보다 훨씬 좋다.

▲바람을 피는 남편 재학(지진희)가 가장 얄미웠을 때는 언제인가. =얄밉기 보다는 대본을 보고 화가 날 때가 많다. 미경이 자신의 외도 사실을 알았다는 것을 눈치 챈 재학이 오히려 '내게 사람을 붙였냐'고 물을 때는 정말 화가 나더라. 재학의 사과가 도무지 진심으로 와 닿지 않는다. 시청자들도 미경과 같은 마음이기 때문에 더 통쾌하게 복수해주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남편의 애인인 은진(한혜진)을 바라보는 감정은 어떤가. =은진과 남편의 관계를 알고 있으면서도 은진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한 공간에 있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다. 미경의 인내심이 대단한 것 같다. 나로선 절대 그렇게 못한다. 부모있고 화목한 가정에서 밝고 건강하게 자란 여자가 내 남편까지 가지려 하는 건 너무하다. 미경은 자신의 아픔 과거사 때문에 '엄마처럼 살지 않으려' 더 가정을 지키려고 애를 쓴다. 그래서 미경이 더 안쓰럽다.

▲그런데 미경은 왜 이혼하지 않을까. =사람이 그렇게 쿨할 수 있을까? 미경의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것이 공감된다. 여전히 남편을 사랑하고 아이까지 생각해야 하니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화를 내는 것도 결국은 사랑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정을 깨뜨리기 쉽지 않은 건 당연하다.

▲왜 미경은 통쾌하게 복수하지 않을까. =그게 바로 '따말'의 장점이다. 선을 넘어 자극적으로 가는 순간 일반적인 '불륜 드라마'가 된다. 작가님과 감독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자극적인 것을 빼고 가는 것이 좋다. 갑자기 미경이가 복수의 화신으로 변신하는 건 이상하지 않을까?

▲재학 역을 맡고 있는 지진희를 보고 있으면 화가 나진 않나. =실제 (지)진희 오빠는 굉장히 재미있다. 촬영 현장의 비타민 같은 존재다. 따뜻하고 유머있는 남자여서 내게 큰 힘이 된다. 평소에는 깔깔대고 유쾌하게 지내다가 일단 촬영이 시작되면 정색을 하고 연기한다.(웃음) 진희 오빠의 밝은 에너지 덕분에 힘을 얻고 촬영을 이어가고 있다.

▲워낙 우는 장면이 많아 슬퍼하는 연기에 변화를 주는 것도 고민될 것 같더라. =그건 드라마 '태양의 여자' 때부터 해오던 고민이다. 분노의 눈물, 자책이나 회한의 눈물, 웃으면서 우는 눈물 등 참 다양한 울음이 존재한다. 하지만 대본에는 '눈물이 떨어진다'고만 적혀 있다. 결국 배우가 어떻게 표현하느냐의 문제다. 매 순간 울음의 깊이를 더하려 노력한다. 때문에 '컷'소리가 나면 진이 빠져서 뒤로 누워버린 적도 있다.

▲이 드라마가 불륜을 소재로 했지만 '불륜 드라마'로 치부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륜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피해입고 고통 받느냐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를 본 남자들이 '절대 바람을 피면 안 되겠구나'라고 깨닫길 바란다.

▲이런 드라마에 출연하다 보면 결혼에 대한 회의적이고 부정적 생각이 들 것 같다. =이제는 그럴 나이가 아니다. 결혼이 내 인생의 행복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따말' 때문에 결혼관이 달라진 건 없다. 작품을 통하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을 통해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난 애초에 결혼에 대한 환상이 없는 사람이다.

▲향후 미경은 어떻게 변해가나. =점점 더 통쾌한 모습을 보여줄 거다. 그리고 결국 인생의 큰 사건을 계기로 4명의 캐릭터들이 좀 더 성숙한 인물들로 그려질 것이다.

▲상처받은 미경이 듣고 싶은 '따뜻한 말 한마디'는 무엇일까. =진심이 담긴 재학의 '사랑해'라는 말이 아닐까. 사랑을 확인받고 싶은 건 여성의 자연스러운 심리다. 남편이 바람을 핀 걸 아는 상황에서도 여성은 '이건 잠깐 즐긴 것일 뿐, 사랑은 아닐거야' '사랑하는 건 나일 거야'라고 확인받고 싶어한다. 결국은 미경이 재학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지수가 듣고 싶은 '따뜻한 말 한마디'는 무엇인가. ='고맙다'는 말 한마디면 된다. 이 말이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좋은 것 같다. 그 말에 힘이 나서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그 말 한 마디면 인간 관계가 달라진다. 저 역시 '따말'을 챙겨봐주시는 여러분께 고맙고, 그분이 제 연기를 재미있게 보고 '고맙다'가 해주시면 힘이 나서 더 열심히 연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드라마가 어떤 결론을 내길 원하나. =이혼 자체는 중요치 않다. 오랫동안 가정에만 안주하고 살아온 미경에게 이혼하고 혼자되는 것은 공포일 거다. 하지만 미경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당당히 홀로 설 수 있는 여성이길 바란다. 그런 미경의 모습이 비슷한 상황에 처한 많은 분들에게 용기가 되지 않을까?

사진=나무엑터스 제공



안진용기자 realy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