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돌', 흔히 연기하는 아이돌을 일컫는 단어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들을 향한 시선이 곱지 않았다. 가장 기본적인 연기력 부족 탓이었다. 요즘엔 '연기돌'들의 실력이 일취월장했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만날 수 있게 됐다. 유진이나 성유리 등 일찌감치 연기에 뛰어든 1세대 아이돌들은 자리를 잡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에 비해 이진의 출발은 다소 늦은 편이었다. MBC 시트콤 '논스톱3'(2002)으로 첫 발을 뗐지만 한 동안 연기와 인연이 없었다. 본격적으로 다시 연기에 불을 지핀 작품은 KBS 2TV 드라마 '영광의 재인'(2011). 이후 SBS 드라마 '대풍수'(2012)를 통해 '최고령 아역배우'로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주며 최근에는 일일극 타이틀롤을 거머쥐었다.

이제 연기가 쉬어질 법도 했지만, 그에게 연기는 여전히 '긴장되는 무엇'이었다. 4일 경기 일산 MBC 드림센터에서 열린 MBC 일일극 '빛나는 로맨스'(극본 서현주ㆍ연출 신현창)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이진은 촬영 고충과 연기관 등을 솔직히 털어놨다.

"연기는 하면 할수록 부담이 많이 돼요. 오히려 초반에는 부담이 덜했는데, 이제는 대본이 나올 때마다 두려워요. 감정 신이 많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는 달라서 고민이 많아요."

극 중 이진이 맡은 역할은 밝고 긍정적인 6년차 주부 오빛나. 자나깨나 남편 변태식(윤희석) 내조에만 힘썼지만, 이를 몰라주는 시댁은 그를 구박하고 남편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운다. 게다가 최근에는 자신의 '위장이혼'이 진짜 이혼임을 알게 되면서 충격에 빠진다.

"감정적으로 체력적으로 힘든 게 사실이에요. 이렇게 많은 분량은 처음이고, 현재 빛나가 워낙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어요. 한 회에 우는 신이 네다섯 번씩 나와요. 하루에 열 번씩 우는 날도 있고요. 주변에서 말을 못 걸 정도로 마음 상태가 무겁기도 하죠."

그의 연기에 대한 동료들의 평가도 이어졌다. 남편 역의 윤희석은 "이진과 함께 연기를 하면 몰입하게 된다"고 했고, 그를 짝사랑하는 강하준 역의 박윤재는 "이진은 상대가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평했다.

미혼인 데다가 아직 연기 경력이 많지 않은 그에게 6년차 주부 연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는 능청스럽게 빛나 역을 소화하고 있다. 그는 "나이 때문인지 아줌마 연기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극 중 고된 시집살이는 실제 결혼관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는 "드라마는 드라마다. 현실에선 그런 일들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다행히 동료들은 그에게 힘이 돼줬다. 극 중 딸 연두 역을 맡은 아역배우 허정은이 그랬다. 이진은 "진짜 딸처럼 애교가 많고 사랑스럽다"며 허정은을 칭찬했다. 빛나의 출생의 비밀을 쥐고 있는 비밀스러운 집사 애숙 역의 이휘향과도 실은 살가운 사이라고.

"이휘향 선생님은 제가 편하게 연기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주세요. 역할에 몰입할 땐 또 굉장하시고요. 이휘향 선생님이 제 뺨을 때리는 장면이 방송으로 보면 굉장히 아파 보이지만 실제론 그렇게 아프지 않았어요."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빛나에게 시청자들은 응원을 보내고 있다. 한편으론 답답하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그 역시 "극 중에서 시댁과 남편에게 너무 당하기만 하니까 빨리 복수하고 싶다"고 희망했다. 그러면서도 "당하는 장면은 훗날 복수를 위해 보여줘야 하는 필요한 신들"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출연진의 노력에도 '빛나는 로맨스'의 시청률은 전작에 못 미치고 있다. 10% 초반을 겨우 웃돌고 있다. 그는 "시청률이 잘 나오면 좋겠지만, 스태프와 출연진 모두 고생하고 있다"며 "지금은 시청률에만 연연하면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배우로서 차근차근 한 계단씩 오르고 있는 이진. 데뷔 17년차인 그가 "대본이 두렵다"고 말하는 데에서 긴장감과 책임감이 느껴졌다. 연기에 대해선 누구보다 진지했다. 부단히 노력하며 자신을 단련시키는 그는 여전히 '성장하는 아이돌'의 모습이었다.

"당분간 빛나는 힘든 날이 더 있을 거예요. 그래서 부담감을 가지고 해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빛나의 복수를 포함해서 흥미진진한 에피소드가 많이 기다리고 있어요. 많은 기대와 관심을 부탁 드려요."



김윤지기자 j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