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목소리는 대형 스타의 필수"단순히 크고 맑은 목소리가 아닌 발음·발성 정확하고 감정 실려야캐릭터 표현하기 위한 밑바탕… 아이돌 노래와 연기 발성은 달라이병헌·한석규·김명민 등 대표적

지상파 3사 드라마국 관계자들에게 요즘 가장 섭외하고 싶은 배우를 3명씩 꼽아달라 주문했다. 이병헌 현빈 조인성 등 정상에 오른 배우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거론된 배우는 김수현과 김우빈이었다. 각각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 이어 '별에서 온 그대'로, '학교 2013'에 이어 '상속자들'로 탄탄한 입지를 다진 두 배우는 분명 요즘 연예계 최고의 블루칩이다.

"왜 그들을 꼽았나" 재차 물었다. 연기력이 또래 배우들 중 최고라는 식상한 이유들 사이에서 또 다시 공통적으로 포착된 것은 "목소리가 좋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하나의 공식이 생겼다. 결국 배우가 각광받기 위해서는 '연기를 잘 해야' 하고 연기를 잘 하기 위해서는 '목소리가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목소리를 가졌다는 건 스타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을 갖춘 셈이다.

여기서 '목소리가 좋다'는 건 단순히 크고 맑은 목소리를 뜻하는 건 아니다. 발음과 발성이 크고 정확해야 한다. 그래야 목소리에 감정을 실을 수 있고, 이는 각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한 밑바탕이 된다.

연기력보다 이미지를 앞세운 일부 한류스타들과 트레이닝 없이 인지도를 무기 삼아 연기에 도전하는 아이돌 출신 배우들 중에는 제대로 된 발음과 발성을 구사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때문에 좋은 캐릭터를 맡아 한 두 번은 주목 받을 수 있지만 결국 매번 똑같은 연기 패턴을 반복하다가 외면 받게 된다.

SBS의 한 PD는 "가수 출신이라 발성을 잘 할 거라는 건 착각이다. 연기할 때 발성은 노래할 때와 다르다. 이를 간과하고 매번 무게 잡는 연기만 하려는 나이 어린 한류스타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들의 연기가 늘지 않는 이유는 발음과 발성이 안 되고, 결국 목소리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고 꼬집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 중에는 목소리가 남다른 이들이 많다. 배우 한석규를 필두로 이병헌 김명민 류승룡 하정우 이선균 김남길 등이 목소리 좋은 배우로 손꼽힌다. 그들은 '연기를 잘 한다'는 공통분모를 안고 있다. 목소리에 감정을 실어 연기하니 팔색조 연기 변신이 가능하고 대중은 환호한다.

목소리와 연기의 상관 관계는 배우들의 출신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목소리 하나로 모든 감정을 표현하는 성우 출신 배우들의 연기력은 발군이다. 한석규뿐만 아니라 장광 김기현 변희봉과 연기파 중견 배우인 나문희 사미자 김영옥 등도 성우 출신이다.

연극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들이 충무로를 주름잡는 것도 목소리와 연관이 있다. 최민식 송강호 김윤석 황정민 정재영 박희순 등은 연극 무대에서 바닥을 다졌다.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의 경우 마이크를 쓰지 않기 때문에 육성으로 객석을 요동치게 만들어야 한다. 때문에 연극 무대에 첫 발을 디디자마자 목소리를 가다듬는 연습부터 한다. 이런 든든한 밑짐이 있었기에 지금은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내로라하는 배우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웃음소리마저 호탕한 김수현의 발성은 이미 업계에서 정평이 나 있다. 그의 목소리가 빛을 발한 장면은 '해를 품은 달'에서 찾을 수 있다. 극중 왕 역할을 맡은 김수현이 용상에 앉아 양 옆으로 늘어선 대신들과 대사를 주고 받는 장면을 촬영한 후 제작진은 김수현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MBC 드라마국 관계자는 "당시 대신 중에는 김응수 김명국 등 연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중견 배우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연기 고수들과 대거리를 하며 우렁찬 발성으로 세트장을 그의 목소리로 가득 채우는 김수현을 보며 '대성할 것'이라 점치는 이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여기는 문득 드는 의문 한 가지. 왜 일본과 중국을 주름잡는 한류스타 중에는 연기력이 뒷받침되는 배우들 보다 외모가 출중한 어린 배우들이 많을까? 그 답은 해외 드라마 송출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과 중국의 경우 외국 드라마를 송출할 때 자국 성우들이 더빙한 후 내보낸다. 때문에 국내 배우들이 실제 연기하는 목소리는 들을 수 없다.

일본에 정통한 한 연예 관계자는 "연기력이 좋은 성우들이 더빙을 하다 보니 일본 팬들은 일부 한류스타들이 연기력까지 대단하다고 생각하곤 한다. 자막이 있는 한국어 드라마를 본다 하더라도 한국어의 말맛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의 연기력을 판단하기 어렵다"며 "이는 한국인들이 할리우드 외화를 보며 외국 배우들의 연기력을 구체적으로 논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결국 배우의 목소리는 연기력과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단순히 감미롭다고 좋은 목소리가 아니라 다양한 감정을 실을 수 있는 좋은 발음과 발성이 뒷받침된 목소리가 있어야 배우로서 제격이다.

SBS 드라마국 김영섭 국장은 "한석규와 이성재, 요즘 배우 중에서는 김수현 김우빈 등의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특히 여성 시청자들은 남자 배우들의 목소리에 민감히 반응한다. 목소리가 좋아야 멜로 연기도 가능하다. 대사 두 줄만 읽혀봐도 연기를 잘 하는지 못 하는지 알 수 있다. 그 만큼 목소리는 배우의 생명이다. 잘 생기고 연기 못하는 '스타'보다 외모는 뛰어나지 않아도 연기 잘하는 '배우'가 대중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고 말했다.



안진용기자 realy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