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고민중 역 고사… 연기 통해 감정표현 자신 생겨유쾌하고 장난기 많은 '미중년'

남자는 태어나서 3번 울어야 한다고 했다. 그만큼 남자는 눈물을 아껴야 한다. 책임져야 할 것도, 참아야 할 것도 너무 많다. 하지만 이 남자는 참 많이 운다. 사업이 망해서 울고, 사랑하는 이에게 배신을 당해 운다. 운동장 바닥을 뒹굴고 가슴을 치며 오열하는 날도 있다. 보는 이마저 가슴에 피 멍이 들 듯하다. 한편으론 그렇게 표출할 수 있는 그가 부럽다.

배우 조성하는 16일 막을 내린 KBS 2TV 주말극 '왕가네 식구들'(극본 문영남ㆍ연출 진형욱)에서 고민중 역을 맡았다. 고민중은 첫 사랑인 오순정(김희정)과 전처이자 아이들의 엄마인 왕수박(오현경) 사이에서 갈등하며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높였다. 그의 선택은 애청자들에게 초미의 관심사였고, 종방연에 참석한 길영환 KBS 사장은 그를 보자마자 결말에 대해 물었단다.

"어려운 문제인데, 작가님이 잘 마무리 해줬다. 고민중에게 행복의 기준은 자신이 아니다. 가족이 중심인 사람이다. 마지막 선택이 최선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가족을 위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왕가네 식구들'은 무리한 전개와 설정으로 '막장' 논란을 빚기도 했다. 40%대의 높은 시청률이 이를 잠재웠다. 그는 1회부터 4회까지의 대본을 받고 흥행을 직감했다. 회식 자리에서 시청률 56%를 예상했더니 다들 의아하게 바라봤단다. 시청률 고공행진이 이어졌고, 그는 "다행히 체면은 세울 수 있게 됐다"고 웃었다.

처음에는 고민중 역을 고사했다. 그럴 만 했다. 그는 전작인 영화 '용의자' '동창생' '황해'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로맨스 타운' '욕망의 불꽃' 등에서 주로 강자였다. 감정을 표현하기 보다 꾹꾹 누르는, 진중한 인물이었다. 때문에 1회부터 감정의 폭이 깊고 넓은 고민중 캐릭터는 그에게 두려움이었다.

"고민중은 그 동안 맡았던 인물들과 차이가 있다. 그래서 촬영장에 갈 때마다 부담이 컸다. 촬영을 마친 지금 돌이켜 보면, 연기에 있어 얇은 판막을 뜯어낸 느낌이다. 이제 감정 표현을 예민하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40대 중년 남자의 멜로에 많은 관심을 보여주셨지 않나.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시청자들이 고민중을 응원한 이유는 꼭 멜로에 있지 않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그는 이 시대의 가장들을 대표했다. 중소기업 사장이었던 그는 택배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택배입니다"라는, 조성하의 첫 유행어도 탄생했다. 무엇보다 남성 시청자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그를 공감했다.

"주변에서 '고민중을 보면 내 일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대한민국 남자들은 정말 열심히 일하지 않나. 일찍 집에서 나와서 늦게까지 일한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쉽게 풀리지도 않는다. 가족을 위해 참을 뿐이다. 고민중의 이런 상황을 다른 시청자들이 자신의 일이라 여긴 것 같다."

실제 그는 자상한 남편이자 두 딸 아이의 아빠다. 첫째 딸인 조수현은 배우 지망생으로, 부녀는 지난 해 함께 CF를 촬영했다. 그는 "참 고마운 기회"라며 "언제 또 딸과 함께 춤을 춰보겠느냐"고 미소 지었다.

"가장(家長) 조성하는 말 잘 듣는 남편이자, 친구 같은 아빠다. 한 마디로 '만만한' 사람이다. 출연진 제작진과 포상휴가를 다녀온 후에는 가족들과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아마 열심히 짐을 나르는 짐꾼이 될 것 같다.(웃음)"

여타 작품에선 카리스마 넘치는 역할을 했지만, 실제로는 유쾌하고 장난기 많은 그다. 새벽 무렵 마지막 촬영을 마쳐 체력이 부칠 법도 했지만, 인터뷰 내내 활력이 넘쳤다. '미중년'이란 수식어에 대해 "덕담이라고 생각한다. 성형 수술을 생각하고 있다"는 너스레로 응수하는 식이다. 차기작 부담이 있겠다는 말에 턱을 괴고 "무엇을 하면 좋겠느냐"고 되물었다.

"한 동안 '왕가네 식구들'처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 작품은 없지 않을까 싶다. 조성하라는 배우의 역사에 있어 한 페이지를 장식한 작품이다. 주인공으로서 존재감을 살려줘 더욱 고맙다."

조성하에겐 눈물로 시작해 눈물로 끝난 '왕가네 식구들'. "우는 연기를 못 한다"는 이유로 손사래 쳤지만, 그에겐 또 다른 기회였다. 그리고 기회를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만든 그는 또 한번의 도약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윤지기자 j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