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찌라시:위험한 소문'서 전직 기자출신 찌라시 제작업자 박사장 역캐릭터 소화 위해 단기간 8㎏이나 살 찌워탄탄한 연기력 '격조있는 오락영화'로 승화

그는 참 사람 좋게 웃는다. 앞선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정진영 특유의 '껄껄'거리는 웃음 소리가 인터뷰장 밖으로 새 나왔다.

신작 '찌라시:위험한 소문'(감독 김광식ㆍ제작 영화사 수박ㆍ이하 찌라시)의 촬영장에서도 정진영의 '해피 바이러스'는 끊이지 않았다.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소재를 다뤘고, 김강우 고창석 박성웅 등 무게감 있는 배우들이 즐비한 속에서 '맏형'인 그는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했다.

이런 정진영의 위트는 영화 속에서 고스란히 뱄다. 전직 기자 출신 찌라시(사설 정보지) 제작업자 박사장 역을 맡은 정진영은 진지함 속에 어깨에 힘을 뺀 연기로 영화 전반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찌라시의 확인되지 않은 루머 때문에 목숨까지 잃게 된 여배우와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매니저 우곤(김강우)의 이야기가 너무 무겁게 다가올 것이란 고민은 고이 접어 서랍 깊숙이 넣어둬도 좋다. 탄탄한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매력이 살아 넘치는 '찌라시'는 사회고발 영화가 아니라 '잘 만든 오락영화'에 방점을 찍는다.

"너무 선정적인 이야기를 했을 것이란 오해는 안 했으면 좋겠다. 물론 사회 비판적 메시지가 담겼지만 이 영화는 꽤 '격조있는 오락영화'다. 영화를 보면 '재미있다'는 이야기가 먼저 나온다. 영화적으로 즐길 수 있는 여러 장치가 풍부한 작품이다."

정진영은 '찌라시' 속에서 내내 줄타기를 한다. 직업을 잃고 다리까지 제대로 못쓰게 되는 아픈 과거를 가진 박사장과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성과 해학을 잃지 않는 박사장은 양극단에 서 있다. 하지만 끝과 끝은 만난다 하지 않던가.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이 중첩되는 박사장은 깨나 매력적인 인물이다. 가볍되, 가볍지 않은 인물. 웬만한 배우는 소화하기 힘든 배역이 정진영을 만나 꽃을 피웠다.

"촬영 내내 균형잡기가 숙제였다. 박사장의 아픈 사연이 너무 부각되면 영화가 어두워지는 것을 우려해 감독은 가볍게 가길 원했다. 박사장의 분량이 많았다면 '찌라시'는 또 다른 질감의 영화가 됐을 것이지만, 이 영화는 우곤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런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해 정진영은 살을 찌웠다. 고무줄처럼 순식간에 8kg이 불었다. 몸에 부하가 걸린 만도 한데 정작 정진영은 "빼는 게 어렵지 찌는 게 뭐가 어렵냐"며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의 노력 덕에 지적인 정진영은 온데간데없고, 한량처럼 보이는 후덕한 박사장이 스크린 속에 똬리를 틀고 앉았다.

"원래 살을 찌우지 않으려 관리하는 편인데 이번엔 마음껏 먹었다. 밤에 라면도 실컷 먹어봤다. 보통 중년 남자들처럼 살았더니 살이 금방 찌더라. 찌는 건 쉬웠는데 이제 와서 다시 살을 빼려니 그게 어렵다.(웃음)"

정진영이 '찌라시'의 초고를 받은 건 꽤 오래 전이다. '찌라시'의 제작사가 만든 '이태원 살인사건'과 '특수본'에 연이어 출연할 정도로 돈독한 사이인 만큼 믿고 기다렸다. 초고와 최종고의 이야기는 다소 달라졌고 박사장의 캐릭터에도 변화가 생겼지만 정진영은 믿고 출연했다. 주판알을 튕기기보다는 사람냄새를 먼저 맡는 정진영이라는 배우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일정만 따진다면 손해가 좀 있을 거다. 하지만 사람 사는 게 어디 계산대로 흘러갈 수 있나. 이 바닥에서 뜻과 정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사람이 준비하는 작품이라면 기다릴 때 기다려주는 것이 맞지 않나? 물론 일도 중요하지만 일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이 하는 거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와, 대한민국에서 유명 배우로 살며 찌라시 때문에 고통 받은 일이 없는지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간단했다. "없다." "나는 그런 찌라시에 오를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 아니다"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돌려 말하면 정진영은 책잡힐 일을 안 하고 사는 사람이다. 굳이 숨기지도 않지만, 숨길 만한 일을 만들지도 않는다. 괜한 소문이 도는 것도 그냥 사람 사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배우나 예술하는 사람들은 결국 소문 속에 살 수밖에 없다. 그러니 무던하게 살려고 하는 게 마음이 편치 않겠나. 물론 견디기 힘든 루머가 돌면 너무 힘들겠지만 대중의 관심을 받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게 우리다. 그래서 '그러려니' 하고 나는 그냥 소문 속에 산다."



안진용기자 realy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