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중요하나 작품 '완성도'가 우선완성도보다 소재에 집중하는 충무로관객 흥미는 끌지만 일회성에 그쳐

열한시
24시간 후로 시간여행을 떠난 연구원들, 미녀삼총사가 조선으로 간다면?, 4~50대의 섹스라이프, 증권가 . 최근 극장가에 개봉한 '' '조선미녀삼총사' '관능의 법칙' ' : 위험한 소문'의 시놉시스 일부분이다. 위 작품들은 상당히 자극적인 소재로 영화제작에 들어갔고 관객을 만났다. 결과는 어땠을까.

▲ 자극적 소재로 흥미 끌어, 흥행은?

영화의 뿌리는 시놉시스다. "시놉시스가 눈길을 끌지 못하면 영화가 성공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장 기본이다. 그런데 최근 일부 기획영화들은 소재에만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최고 중요시하는 소재주의로 이어졌다. 자극적인 소재로 눈길을 끌겠다는 계산이다.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소재라면 안성맞춤이다. 증권가 를 소재로 한 ''(감독 김광식), '변호인' 흥행의 반작용으로 제작을 선언한 '건국대통령 이승만'(감독 서세원), 현재 제작상황이 묘연한 '퍼스트레이디'(감독 한창학) 등이 대표적인 예다.

대중의 평가는 지난 흥행성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현재 상영 중인 '관능의 법칙' ''를 제외하고 지난해 개봉한 ''(감독 김현석)는 전국 87만여 명의 누적관객을 기록했다. '조선미녀삼총사'(감독 박제현)는 설 연휴 개봉에도 48만여 명에 그쳤다.

조선 미녀 삼총사
▲ 감독 따로, 시나리오 따로

흥미로운 소재가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다. 신선한 이야깃거리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은 중요하고도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하지만 현재 극장가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그렇지 않다. 소재는 신선하지만, 완성도가 뒷받침이 안 되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최근 시나리오와 연출이 분리되면서 자주 눈에 띈다.

지난해 '' 언론시사회 당시 김현석 감독은 "시나리오를 받은 후 시간 여행에 관한 물리학 서적을 섭렵했다"고 밝히며 물리학에는 문외한이라는 점을 시인했다. 결국, 시나리오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 것이 흥행 실패로 이어졌다. '조선미녀삼총사'의 박제현 감독은 "할리우드의 '미녀삼총사'를 비틀기 해본 것"이라고 소재 근원을 찾았다. 비틀기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었는지는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그는 시나리오 작업에 각색에만 참여했다.

지난해 개봉한 '베를린' '7번방의 선물' '신세계' '변호인'의 흥행은 반대급부에서 해석 가능하다. 위 작품들은 메가폰을 잡은 류승완, 이환경, 박훈정, 양우석 감독이 직접 집필했다. 그만큼 시나리오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스토리라인을 정확하게 이해한 이들이 연출을 겸한 것이 작품 완성도로 이어졌다. 이 작품들은 지난해 가장 흥행한 한국 작품에 속한다.

▲ 할리우드 시스템 따르는 충무로, 중간점검 필요해

찌라시
시나리오와 연출이 따로 놀기 시작한 것은 충무로에 진입한 CJ, 롯데, 쇼박스 등 대기업들이 할리우드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가속도를 탔다. 감독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시나리오부터 연출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작가 중심의 작품들은 효율성을 이유로 외면받았다. 감독이 시나리오까지 집필한 작품은 이제 손을 꼽을 정도다.

화려한 볼거리를 무기로 하는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와 연출의 분리는 가장 최적화된 시스템이다. 하지만 국내 상황은 다르다. '7광구' 'R2B' '미스터고' 등 볼거리에만 집중한 작품들은 국내 관객들에게 외면받았다. 제작 여건상 할리우드의 그것을 뛰어넘기 힘든 것도 이유다. 관객들은 이야기 완성도가 높은 한국영화를 선호한다.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이끈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감독을 비롯해 한국영화의 거장으로 추앙받는 이창동, 홍상수, 김기덕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런 흐름을 무작정 비판할 순 없다. 감독이 오랜 시간 공들인 작품뿐만 아니라 트랜드를 따라 빠른 호흡으로 제작되는 기획영화 역시 필요하다. 문제는 무게중심추의 위치. 한쪽 다리로는 오래 걸을 수 없듯, 균형 감각이 요구된다. 자극적인 소재보다는 탄탄한 이야기 전개를 기본으로 하는 작품이 사랑받는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정현 기자 seij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