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금무지개' 백원역먹으면서 울고 키스하면서 울고 이제 우는 연기 하나는 자신'몰입'이 무엇인지도 알게 돼… 로맨틱·망가지는 연기도 욕심연기에 대한 의심, 사라졌다

활기찬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하이톤의 목소리로 재잘재잘 떠든다. 포근한 봄날의 햇살을 받아, 갈색 머리카락이 더욱 눈부시다. 화기애애한 에너지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배우 겸 가수 유이의 힘이다.

그는 지난 달 30일 종방한 MBC 주말극 '황금무지개'(극본 손영목ㆍ연출 강대선)에서 주인공 백원 역을 맡았다. 일과 사랑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지만, 결말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가족을 잃었고, 복수를 위해 고군분투했다.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비극적 사랑에 아파하기도 했다.

"우는 신이 정말 많았어요. 먹으면서도 울고, 키스하면서도 울고, 걷다가도 울었어요. 나중에는 엄마 역의 도지원 언니만 봐도 눈물이 났어요. 이제 어떤 작품을 만나든, 우는 장면은 자신 있어요."

깔깔 웃으며 유쾌하게 말했지만,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훨씬 많았던 지난 6개월이었다. 평소엔 감정을 되도록 삭힐 만큼 눈물이 많지 않았던 그다. 역할에 한없이 빠져버리면, 끝없이 우울할 것 같았다. 촬영이 없을 땐 역할에서 빠져 나오고자 노력했다. 달콤한 군것질로 기분 전환을 하거나, 개그 프로그램을 보며 기운을 얻었다.

"24시간 내내 우는 장면을 찍은 날이 있어요. 장례식장에서 돌아가신 할머니(박원숙) 영정사진을 보면서 우는 장면인데, 그날 따라 감정 조절이 안 됐어요. 오케이(OK) 사인이 떨어졌는데,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어요. 계속 우니까 스태프와 선배들이 다가와 저를 달래줬어요. 몰입이 무엇인지 그때 알았죠."

상대역 정일우의 배려는 큰 힘이 됐다. 대화를 통해 연기의 방향성을 잡아줬고, 역할에 집중할 때까지 기다려줬다. 극 중 대립각을 세운 조민기는 실제론 굉장히 편안한 선배였다. 일부러 짓궂은 장난을 치며 유이의 긴장을 풀어줬다. 그러다가도 촬영에 들어가면 캐릭터로 순식간에 빠져드는 그의 모습에 놀랐다고 했다.

정일우와 조민기 외에도 그는 고마운 동료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꺼냈다. 그들과 함께 한 즐거운 에피소드를 들려줄 때 그의 목소리는 조금 들떴다. 목소리의 온기에서 따뜻했던 현장 분위기가 느껴졌다. 또 하나의 가족이 생기는 것. 주말극의 묘미였다. 그는 "다들 바쁘니까 1년에 한 번씩은 꼭 모임을 하기로 했다"고 웃었다.

유이는 2009년 MBC '선덕여왕'의 아역, SBS '미남이시네요'의 조연으로 출발해 차근차근 연기 활동의 폭을 넓혀왔다. 주말극과 케이블채널도 마다하지 않았고, 퓨전사극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끝없이 도전하는 그의 모습은 그가 속한 걸그룹 애프터스쿨과 닮아있었다.

"예전엔 잘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밝고 씩씩한 역할을 주로 했죠. 소심했던 것 같아요. '황금무지개'를 하면서 그 벽을 깬 것 같아요. 자신감이 생겼어요. 전작 KBS 2TV '전우치'를 할 때도 실은 겁을 먹었어요.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었죠. 이제 그런 의심이 사라진 것 같아요"

유이는 자신감을 키워준 말들을 꼽아봤다. '연기 잘 봤어요''다음 작품 기대할게요', 그리고 극 중 이름이었다. 예전에는 중고등학생들이 그를 알아봤다면, 이젠 '백원이'라고 불러주는 장년층의 팬들이 생겨났다. 그는 일화들을 소개하며 활짝 미소 지었다. 진심이 묻어났다.

"영화도 해보고 싶어요. 드라마 촬영 현장과 많이 다르다고 하는데, 궁금해요. 주연이든 조연이든 꼭 해보고 싶어요. 원하는 장르요? 로맨틱 코미디요. 알콩달콩 연애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망가지는 연기도 욕심나요. 소속사에서 허락해 줄까요? (웃음)"



김윤지기자 jay@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