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남자' 개봉 욕심 나는 캐릭터… '연기의 맛' 느껴딸 잃은 엄마의 깊은 감정 열연내 나이 서른 둘, 연기력도 훌쩍 성장모델로 데뷔, 이젠 배우가 더 어울려요

서른이라는 나이는 중요하다. 단순히 십 자리 숫자가 2에서 3으로 바뀌는 것뿐만 아니라 그 동안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10년을 계획하는 시기가 되곤 한다. 이는 배우에게도 마찬가지다. 20대 핫한 셀러브리티로 살아온 이들은 30이라는 숫자를 만나며 훌쩍 성장한 연기력을 선보이곤 한다. 모델로 데뷔해, 이제는 배우라는 타이틀이 더 어울리는 김민희(32)가 좋은 예다.

4일 개봉하는 '우는 남자'(감독 이정범ㆍ제작 다이스필름)를 공개한 김민희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 작품에서 그는 남편과 딸을 한꺼번에 잃은 후 치매에 걸린 엄마를 돌보며 하루하루 절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여자 모경으로 분했다. 자신을 죽이기 위해 시시각각 다가오는 위협과 자신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킬러 곤(장동건)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물이다.

"딸을 잃은 엄마의 깊은 감정을 표현하는 게 힘들었어요. 그리고 '우는 남자'에서 제일 잘하고 싶었던 부분이기도 하죠.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든 작품이었어요. 첫 장면부터 감정이 끝까지 몰아치는데, 감정의 수위를 어떻게 조절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죠. 계속 이어지는 위협 속에서 겪는 당혹스러움도 담아야 했기에 고민이 많았던 작품이랍니다."

'우는 남자'는 곤 역할의 장동건이 캐스팅된 후 제의가 들어왔다. 극 전체에서 곤과 모경이 마주하는 장면은 단 한 장면 밖에 없지만, 감정의 교류는 계속 이어진다. 장동건이 격렬한 액션을 이끌었다면 감정은 김민희의 몫이다. '화차'에서부터 시작된 믿고 보는 연기가 '우는 남자'에서도 이어진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는 상당히 열연한다.

"엄마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했느냐고 물어보시는데, 경험이 중요한 것은 아니잖아요. 모경이 느끼는 슬픔을 제가 공감하는 것이 중요했죠. 엄마가 되어본 적은 없지만 아픔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진심은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모경 캐릭터에 진정성 있게 다가갔죠. 오히려 연기하는 맛이 느껴졌어요."

도전을 즐기느냐고 물으니 "'우는 남자'는 놓치고 싶지 않았던 작품, 모경은 놓치고 싶지 않았던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어려운 캐릭터라고 피해 가는 법은 그에게 없었다. 김민희는 정면 도전했다. 꽤 어려운 숙제였지만 그는 적절한 해답을 내놓는 데 성공했다.

"'화차'(감독 변영주) 때부터 연기가 좋아졌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는데, 그럴 때마다 그 전에는 어떻게 연기를 한 걸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연기에 대해 진정성을 가졌던 것은 '화차' 전에도 마찬가지였거든요. 한 작품을 통해 단숨에 성장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전에도 배우의 길을 걸으며 한 단계씩 계단을 올랐죠. 아마 '화차'를 많은 사랑을 받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김민희는 막 끓는 점을 관통했다. 연기에 대한 열기를 이어오던 그는 '화차'를 통해 100도를 통과했다. 그리고 '연애의 온도'(감독 노덕)와 '우는 남자'를 지나며 여전히 끓고 있다. 셀러브리티 색은 지워지고 배우만 남았다.

"(연기에 대해) 욕심을 내고 있어요. 풀어져 있다가도 연기할 때만큼은 저 자신에게 엄격해지죠. '잘하고 싶다'고만 생각해요. '우는 남자' 시나리오를 봤을 땐 여자 캐릭터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대신 표현해야 하는 감정은 어려웠죠. 잘할 수 있겠느냐는 고민도 했지만 해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김민희는 칭찬을 듣는 것에 익숙하지가 않다. '우는 남자'속에서 캐릭터 소화력이 뛰어났다고 말하니 어쩔 줄 몰라 했다. "칭찬을 해주시면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 말하며 배시시 웃는다.

"촬영 현장에서 해주는 칭찬은 더 듣고 싶어요. '컷'소리가 나온 후에 '연기 정말 잘했다'는 제작진의 말이 들려오면 그만큼 힘이 나는 것이 없거든요. 작품이 나온 후의 칭찬은 부끄럽기도 하지만 오히려 책임감이 더 커져요. 부담을 느끼는 것은 아니에요. 칭찬해주는데 부담 느끼는 배우가 어디 있을까요."(웃음)

지난해 12월 열린 여성영화인 시상식에서 김민희는 '연애의 온도'로 여우주연상 격에 해당하는 연기상을 받았다. 상을 받을 것을 알고 참석한 자리였지만 그는 눈물을 흘렸다. 눈물의 의미에 관해 물으니 "사랑 받고 있다는 기분이 감격스러웠다"고 회상했다.

"저의 수상을 축하해주시며 변영주 감독님이 이런저런 해주셨던 이야기가 감동이었어요.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으니 사랑 받고 있는 것 같았어요. 좋은 동료들에 둘러싸여 있는 느낌이었죠. 저는 참 행복한 여자인 것 같아요."



이정현기자 seij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