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그만'(Borgman) ★★★1/2잔인무도한 행위 몸서리치지만 종반부엔 기가 차서 웃음 나와흡인력 강한 독창적 영화 숲속 정경 와이드 촬영 훌륭해

고약하고 사악하고 기분 나쁘고 삐딱하며 또 폭력적이요 잔인하며 황당무계할 정도로 허무한 새까만 코미디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매우 불안하게 만들어 준다. 거의 초현실적 분위기마저 갖춘, 시치미 뚝 떼고 사람 잡는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이자 코미디로 네덜란드 영화다.

일종의 부르주아의 무사안일에 대한 냉소적이요 가차 없는 비판이자 현대판 우화로 악의 본질을 탐구하고 있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퍼니 게임'와 장 르누아르 감독의 '익사에서 구조된 부뒤'의 내용과 분위기 그리고 모양을 연상시키는 작품으로 끝에 가서 다소 맥이 풀리지만 기차게 흡인력 강하고 독창적이다. 흥미진진한 영화로 인간의 사악이 저지르는 잔인 무도한 행위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기가 차서 웃게 된다.

숲 속의 간이 지하숙소에 사는 카밀 보그만(얀 비보엣)이 자기를 수색하는 무장한 신부와 다른 두 남자로부터 도망가면서 역시 각기 땅굴 속에 사는 같은 패인 파스칼과 루드빅(이 영화의 감독 알렉스 반 바르메르담)도 함께 달아난다.

꾀죄죄한 보그만은 이어 교외의 한적한 곳에 있는 상자모양의 초현대적인 주택의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TV 프로 제작자인 젊고 오만한 주인 리처드(제론 페시벌)에게 목욕 좀 하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를 거절하는 리처드에게 보그만은 자기가 리처드의 아내를 안다고 엉뚱한 소리를 했다가 리처드에게 얻어 맞아 나가 떨어진다.

리처드가 출근 후 양심에 가책을 받은 리처드의 아내 마리나(헤드윅 미니스)가 보그만을 집안으로 받아 들여 목욕을 하게 하고 먹을 것을 준 뒤 게스트 하우스에 묵게 한다. 물론 리처드는 이를 모른다.

여기서부터 보그만의 인간 심리조작이 자행되면서 보그만은 마리나와 그의 어린 세 아이들과 보모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리처드에 이르기까지 이 집안 사람들의 마음을 점령하면서 서서히 집의 주인 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여기에 파스칼과 루드빅도 동참하면서 홈리스들이 안방을 차지하고 드는데 완전히 보그만의 악마적 매력에 사로 잡힌 마리나는 보그만이 떠나려고 하자 못 가게 말린다. 그리고 마리나는 보그만에게 자기 몸까지 주겠다고 옷을 벗어 제치나 간교한 보그만은 이를 거절한다.

마리나는 완전히 보그만의 꼭두각시가 되다시피 하는데 마리나와 함께 그의 천사처럼 생긴 막내딸 이졸데까지 보그만의 심리조작에 말려들어 보그만의 하수인이 된다. 그리고 악마의 제자가 된 둘은 보그만을 위해 자발적으로 끔찍한 일까지 수행한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보그만 일당이 리처드의 정원을 새로 만들어 주는 장면. 완전히 정원과 연못을 파 뒤집어 놓는데 이들은 이를 위해 먼저 이 집의 정원조경사 부부를 찾아가 눈 깜짝 하나 안하고 둘을 해괴한 방법으로 살해한다. 이런 살인방법은 처음 본다.

마치 속편이라도 만들겠다는 듯이 끝나는데 상당히 다정한 가족 나들이 영화처럼 마감한다. 볼만한 것은 얀 비보엣의 간사한 연기. 치명적으로 매력적인 연기다. 이와 함께 생명이 있는 숲에 둘러 싸인 마치 진공상태의 살균한 병실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리처드의 집을 중심으로 주변 정경을 찍은 와이드 스크린 촬영도 훌륭하다.



박흥진 미주 한국일보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