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및 현재의 사건 배후를 화면으로 증명하는 장치

58. 플래시백(Flashbacks)

‘현재 진행되는 스토리의 시점에서 과거 줄거리 일부를 삽입 시키는 것 an interjected scene that takes the narrative back in time from the current point in the story’.

영화 혹은 연극 등 제작 현장에서는 ‘주인공이 지나온 과거를 회상하거나 묘사하려는 사건의 배후를 밝혀 내기 위해 지난 이력을 반추하는 장면 혹은 기법’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주요 등장 인물들이 겪는 일화 혹은 벌어지는 극적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펼쳐 놓아 스토리 범위를 확장 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 진행되는 장면과는 다른 단편적 화면을 몽타주 기법으로 연결 시키는 것 *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을 주로 채택 * 자막, 페이드 인 앤 아웃, 디졸브 등의 편집 기법 사용 * 현재 발생되는 사건이나 인물이 겪는 일화의 인과 및 배후를 설명하면서 극적인 긴장과 흥미를 고조 시키는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주요 기능으로 요약되고 있다.

영화학자들은 ‘플래시백 테크닉의 창시자 The creator of the flashback technique in cinema’로 노예제 폐지론자인 스톤맨 가문과 현 제도의 고수파인 카메론 가문이 남북 전쟁이 발발하면서 겪는 사건을 다룬 <국가의 탄생 The Birth of a Nation>(1915)을 공개한 D. W. 그리피스(D.W. Griffith) 감독을 꼽고 있다.

1930년대 접어 들자 할리우드 작가들은 * 극이 시작되자 마자 핵심적 사건의 과거 전모를 제시하는 외적 플래시백과 주인공이 겪은 지나온 경험과 사연을 회상조로 보여주는 개인 플래시백 등이 흥행 지수를 증폭 시켜 준다는 것을 인식 하면서 이같은 편집 기법이 큰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고 전해 진다.

오손 웰즈는 천재 감독으로 각인 시켜 준 <시민 케인 Citizen Kane>(1941)은 케인이 유언처럼 남긴 단어 ‘로즈 버드’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사건 기자가 케인의 생전에 교분을 맺었던 주변 인물들을 대면 인터뷰 해 나가면서 주인공의 생애를 회고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작품.

극중 케인의 삶의 여정은 본인의 주체적 행적이 아닌 제리 톰슨(윌리암 알란드), 두 번째 부인 수잔 알렉산더 케인(도로시 커밍고어), 월터 파크 대처(조지 코울로우리스), 미스터 번스타인(에버렛 슬로안), 제데디아 르랜드(조셉 코튼) 등 다양한 인물들이 털어 놓는 회상 장면으로 구성해 ‘플래쉬백’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선 감독들은 플래시백에 대해 ‘현재 진행되는 스토리의 원인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 장면을 제공해 사건이나 인물들의 행동의 긴박감을 조성해 주는데 탁월한 역할을 하는 기법’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

한편 스티븐 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Minority Report>(2002).

2054년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범죄를 자행할 용의자를 미리 파악해 이를 제압하는 첨단 치안 시스템 프리크라임을 운용하고 있는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미래의 일을 미리 제시하면서 닥쳐올 위험한 사건을 차단 시킨다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화면 기법은 플래시포워드(flashfoward) 혹은 프로렙시스(prolepsis)라고 한다.

플래시백과 플래시포워드는 ‘줄거리의 당위성, 등장 인물이 겪는 사건의 파장을 확장 시키고 스토리의 구조를 탄탄하게 만들어 주는 기능을 위해 활용되고 있다.

플래시백은 현재 진행되는 사건은 선명한 칼라 화면으로 전개되는 반면에 정지된 스틸 사진, 선명하지 못한 색상 혹은 세피아 톤(unusual coloration or sepia tone), 의도적인 훼손을 한 듯 모서리만 남은 흑백 사진(monochrome) 등을 제시하면서 전개 시킨다.

여러 대의 카메라를 동원해 화면을 촬영하거나 혹은 특수 효과(special effects)를 통해 제시하려는 화면을 완성해 나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계에서 단골로 등장 시키는 플래시백 사례는 다음과 같다.

-<오딧세이 Odyssey>: 오딧세우스가 10여년 이상의 유랑 생활을 하면서 겪는 과거 에피소드를 제시

-<천일 야화 Arabian Nights tale> 중 ‘3개의 사과 The Three Apples’는 젊은 여성의 변사체가 발견되면서 스토리가 전개된다. 용의자인 남성은 자신이 살인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정당성을 토로하기 위해 피해 여성의 파렴치한 과거 행각을 제시하고 있다. 살인 사건이 얽혀 있는 미스테리 장르에서는 이와 흡사한 플래시백이 단골로 묘사되고 있다.

-<신밧드의 대 모험 The Golden Voyage of Sinbad>에서는 신밧드가 약혼녀 퍼리사 공주와 여행을 떠나면서 드넓은 바다, 괴물들이 살고 있는 섬에서 겪는 기기묘묘한 모험담에 귀를 기우리게 만들고 있다.

-<더 브릿지 오브 산 루이스 레이 The Bridge of San Luis Rey>는 1927년 출간된 손튼 와일더(Thornton Wilder)의 장기 베스트셀러.

1714년 페루. 안데스 산맥에 설치된 로프가 끊어지면서 5명의 무고한 생명이 추락사한다. 사건을 접한 수도사(a friar)는 순진한 이들을 희생 시키는 신의 의도에 대해 질문(questioning God's intentions)을 던진다. 극은 희생자들의 생전 모습을 제시하면서 재앙이 초래한 비극을 반추 시키고 있다.

반면 조지 로이 힐 감독의 <죽음의 순례자 Slaughterhouse-Five>(1972)는 외계인에게 납치됐다가 극적으로 탈출한 한 남자의 사연을 묘사해 나가면서 벌어진 사건이 복잡하거나 애매모호한 상황을 노출 시키기 위해 ‘순차적 시간 순서를 무시 non-chronological order’ 시켜 애매한 상황을 제시하는 방법도 쓰고 있다.

-에밀리 브론테의 원작을 극화한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폭풍의 언덕 Wuthering Heights>(1939). 떠돌이 집시 소년 히드클리프가 요크셔 지방 명문가 언쇼 집안의 양자로 입양되면서 집안의 딸 캐시에게 연정을 품지만 신분 격차 때문에 괴로워 한다. 캐시는 상류 가문 자제 에드가와 결혼한다. 그후 히드클리프는 에드가의 동생 이자벨과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결혼하지만 캐시를 잊지 못한다. 극중 언쇼 집안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사건은 가정부 엘렌의 회고담으로 외부로 알려지고 있으며 히드클리프가 캐시에게 광적으로 집착하는 상황은 미스터 록우드의 증언으로 전모가 드러난다.

-마르셀 카르네 감독의 <새벽 Daybreak / Le Jour se leve>(1939).

가난한 공장 노동자 프랑수아(장 가뱅). 난봉꾼 발랑탱(쥘 벨리)을 권총으로 살해한 뒤 아파트에 은둔한다.

호텔에서 살인 사건이 펼쳐 지면서 극이 진행되는 <새벽>.

프랑수와는 꽃가게에서 여점원 프랑수아즈와 클라라를 연이어 뺏어가는 난봉꾼 발랑탱의 행각이 자신이 그를 살해할 수 밖에 없었다는 상황을 플래시백으로 제시해 관객들의 공감을 얻어낸다.

-<루시아다스 Os Lusíadas>는 포르투칼 항행가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가 고국을 떠나 아프리카를 거쳐 거대 대륙 인도를 발견하기 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극중 과거 회상 장면을 빠르게 삽입 시켜 장대한 여정이 긴박하게 진행됐음을 짐작 시켜 주고 있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무대 공포증 Stage Fright>(1950).

왕립 연극원 배우 조나단. 유명 여배우이자 유부녀 샬롯 인우드와 불륜 관계에 있다. 샬롯은 남편을 살해한 뒤 피 묻은 드레스를 입고 조나단 집을 찾아온다.

극은 살해 사건의 목격자인 샬롯의 가정부인 넬리가 거짓 증언을 하면서 사건의 진실은 의혹으로 남게 된다는 과정을 플래시백으로 제시하고 있다.

-구로자와 아끼라 감독의 <라쇼몽 In The Woods : Rashomon / 羅生門>(1950). 연이은 전쟁으로 황폐화 된 전국시대 일본. 아내와 산을 지나던 사무라이가 도둑의 공격을 받아 죽음을 당한다. 겁탈 당한 아내, 유력한 용의자인 도둑, 혼으로 등장하는 사무라이, 사건을 목격한 나무꾼 등이 사건 현장에 대한 각자의 목격담을 털어 놓는다.

영화는 동일한 사건이 목격자의 이해 관계에 따라 전혀 다른 상황으로 증언되고 있음을 플래시백을 적절하게 사용해 들려주어 베니스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하는 등 국제 영화가에서 절찬을 받아낸다.

-인도를 대표하는 감독 샤트야지트 레이(Satyajit Ray)의 <역경 The Adversary /Pratidwandi>(1972). 편모, 좌파에 빠진 남동생, 직장인 여동생을 두고 있는 청년 알리. 대학을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취업을 하지 못하는 시간이 지속되자 스트레스가 쌓여 급기야 환각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 영화에서는 알리가 처했던 과거 상황을 ‘스틸 사진 플래시백 photo-negative flashbacks’으로 전개하는 실험적인 방식을 시도해 눈길을 끈다.

-재기발랄한 영화 재능꾼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저수지의 개들 Reservoir Dogs>(1992).

대형 보석점을 털기 위해 집결한 6명의 프로 절도범들. 절도 행각이 성공한 듯 보이지만 집결한 갱들이 한 명 두명 실종 당하거나 죽음을 당하면서 살아 남은 이들간의 서로간의 불신이 팽배해 진다.

‘나는 상황을 절대 만들지 않아, 단지 사건에 대응할 뿐이지’ 등 수많은 명언을 탄생 시킨 작품 속에서 화이트(하비 키텔)과 핑크(스티브 부세미)가 서로를 불신하며 총을 겨누게 되는 원인을 플래시백을 통해 제시해 흥미감을 배가 시켰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멘토 Memento>(2000). 전직 보험 수사관 레너드. 아내가 강간 당한 뒤 살해되는 충격적 사건을 겪은 뒤 기억을 10분 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로 전락한다. 용의자 G의 행적을 추적하는 과정은 메모와 문신을 통해 기억해 나간다. 극중 플래시백은 레너드가 가정을 파괴 시킨 범인의 행방을 좇는 수단으로 애용된다.

-<반지의 제왕 The Lord of the Rings>과 함께 판타지 장르의 상업성을 증명 시킨 히트작이 <해리 포터 시리즈 The Harry Potter series>.

호그와트 마법 학교에서 사용하는 마법 기구(a magical device) 중 ‘펜시브 a Pensieve’는 등장 인물들이 겪었던 과거 사건(플래시백)을 자신들이 의도하는 대로 변경 시킬 수 있는 마법의 도구. 이런 장치들은 환상적인 스토리의 묘미를 증폭 시켜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경기(영화칼럼니스트) www.dailyo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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