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우정의 커플 모임에서 게임… 휴대전화 통화ㆍ문자ㆍ카톡 강제로 공개

솔직하면서 쿨하고 유머러스하면서 직설적이다. 31일 개봉 후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 중인 영화 ‘완벽한 타인’(감독 이재규, 필름몬스터)은 탄탄한 완성도와 유쾌한 오락적 재미로 관객을 만족시키는 수작이다.

현대 사회 부부의 허상과 위선을 까발리면서 우리 시대 결혼 제도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블랙코미디이자 현대인의 필수품인 휴대전화가 초래한 진정한 소통의 부재를 경고하는 신랄한 풍자극이다. 115분 동안 쫄깃쫄깃한 드라마의 재미를 선사하는 센스 넘치는 연출과 명배우들의 연기에 실컷 웃다가 깊은 여운을 안고 집에 돌아가게 만든다.

영화 ‘완벽한 타인’은 40년 우정을 자랑하는 네 친구들이 뭉친 커플 모임에서 한정된 시간 동안 휴대전화로 오는 전화, 문자, 카톡을 강제로 공개해야 하는 게임이 펼쳐지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동명의 이탈리아 영화를 리메이크한 이 작품은 제작 전부터 도발적인 소재와 드라마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 영화 ‘역린’을 만든 이재규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유해진, 조진웅, 이서진, 염정아, 김지수, 슝하윤 등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한 초호화 캐스팅으로 많은 화제를 모았다.

완성된 영화는 기대 이상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엄청 많다. 코미디인데 그 어떤 스릴러 영화보다 긴장감이 넘치고 한정된 공간에서 하룻밤 동안 벌어지는 일인데 그 어떤 영화보다 볼거리가 넘친다. 불구경, 불륜적발 구경과 함께 이 세상 가장 재미있는 3대 구경으로 꼽히는 부부싸움 구경의 재미를 제대로 느끼게 해준다.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속내는 폭발 직전인 태수(유해진)-수현(염정아), 석호(조진웅)-예진(김지수), 준모(이서진)-세경(송하윤) 커플들과 혼자 참석한 영배(윤경호)의 미스터리 한 비밀이 차례로 폭로되면서 곪아 있던 갈등은 통제 불능 사태로 흘러가고 40년 우정은 시험대에 오른다. ‘끝났을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는 말을 떠오르게 할 만큼 새로운 사건들이 계속 터져 나오며 위기는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그 가운데서 파생하는 웃픈(웃기고 슬픈) 상황들이 적나라하게 지상 중계된다. 그러면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고민해봤을 ‘과연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가’란 의문을 다시 한 번 떠오르게 한다.

이재규 감독의 탄탄한 연출력의 승리다. 영화 데뷔작 ‘역린’의 시행착오에서 교훈을 얻었는지 자신의 장기인 이야기의 힘을 살리면서 극적 재미와 묵직한 메시지를 동시에 안겨준다.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결말에 대해선 호불호가 나뉠 수 있다. 정신 없이 고속도로에서 직진을 하다가 갑자기 유턴을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리는 부부들의 모습이 당황스러웠던 이들은 결말에서 잔잔한 위로를 얻을 수 있겠지만 현대 부부들의 위선이 까발려지는 데서 카타르시시를 느끼며 쾌감을 얻은 이들에게는 비겁한 결말처럼 느껴질 수 있다. 아무리 지지고 복고 싸워도 부부 싸움은 칼로 물베기다라는 전통적인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걸까? 이재규 감독은 관객들이 영화가 끝난 후에도 집에 돌아가 고민하고 토론해보기를 원하는 듯하다.

배우들의 연기는 ‘명불허전’이란 찬사가 식상하고 부족하게 느껴질 만큼 압권이다. 유해진, 조진웅, 이서진, 염정아, 김지수, 윤경호 모두 러닝타임 내내 불꽃이 튈 만큼 반짝반짝 빛난다. 누구 하나 튀지 않고 완벽한 케미스트리를 이루며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다소 극적으로 느껴지는 캐릭터들이 명배우들을 만나니 현실감이 배가되고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유해진은 가부장적이면서 까칠한 ‘바른생활맨’ 태수 역을 특유의 인간미를 더해 유머러스하게 소화해낸다. 모임의 리더인 석호 역을 맡은 조진웅의 따뜻하면서도 묵직한 중량감은 영화의 중심축을 제대로 잡아준다. 실제인지 연기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리얼한 이서진의 능청스러운 연기도 영화에 윤기를 더한다.

40대 여자배우가 할 만한 역할을 찾기 힘든 충무로에서 오랜만에 마음껏 자신의 능력을 펼칠 만한 마당을 만난 염정아, 김지수는 훨훨 날아다닌다. 염정아는 권위주의적 남편 태수 때문에 숨죽여 지내면서 문학을 통해 해방감을 맛보는 수현 역을 인간적이면서도 공감이 가게 소화해낸다. 김지수도 겉모습은 완벽해 보이지만 내면은 공허해 엄청난 비밀 하나를 숨긴 예진 역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가장 나이가 어린 송하윤도 대선배들에게 절대 밀리지 않고 당찬 연기를 선보인다. 비교적 낯선 얼굴인 윤경호는 ‘발견’이란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미친 존재감을 발산한다.

‘완벽한 타인’은 엄청난 제작비가 들지 않아도 흥미로운 이야기와 능력 있는 연출, 좋은 배우들의 명연기만 있다면 영화가 줄 수 있는 최대의 재미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준다. 영화란 매체를 접할 때 남다른 규모와 표현이 있어야 한다는 관객들에게는 다소 연극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그런 부분을 상쇄시킬 만한 장점들이 더 많다.

최재욱 스포츠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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