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때까지 바둑 하다 배우로…범상치 않은 연기파 기대주

칭찬땐 귀가 빨개질 정도로 수줍은 성격이었다가

연기에 대한 열정 이야기땐눈빛서 레이저 광선 주위 압도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을 떠오르게 했다. 2018년 충무로가 낳은 가장 핫한 연기파 기대주 이가섭은 범상치 않은 기운을 지닌 사람이었다. 칭찬을 하면 귀가 곧장 빨개질 정도로 수줍은 성격이었다가 연기에 대한 열정을 이야기할 때는 눈빛에서 레이저 광선이 뿜어져 나오며 주위를 압도했다. 최근 개봉한 스릴러 영화 ‘도어락’의 후반부를 책임진 범인 음산한 기운부터 감수성이 폭발하는 건실한 시골소년의 순박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선과 악이 혼재된 얼굴은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이 곧장 떠오를 정도로 ‘천생 배우’였다.

이가섭은 그 누구보다 의미 있는 한 해를 보냈다. 2017년 개봉된 영화 ‘폭력의 씨앗’으로 대종상 남자신인상을 수상했고 첫 상업 영화 ‘도어락’으로 영화 팬들의 눈도장을 제대로 받았다. 또한 조진웅, 이제훈, 변요한, 윤계상 등 실력파 배우들이 소속돼 있는 사람엔터테인먼트에 둥지를 틀었다. 입가에 미소가 지워질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올해 일어난 모든 일이 다 꿈만 같아요. 상도 받고 상업 영화도 찍을 수 있게 되고 정말 가고 싶은 회사에 갈 수 있었어요. 대종상을 탈 줄 정말 몰랐어요. 정말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 감사한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시상식서 내 이름을 불러 진짜 깜짝 놀랐어요. 영화는 혼자만 잘한다고 되는 매체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감독님을 비롯해 스태프, 동료배우들이 다 잘해줬기 때문에 제가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상을 받았을 대 ‘폭력의 씨앗’ 팀에게 감사하다고 소감을 말했어요. 또한 공식적인 자리에서 부모님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첫 기회여서 정말 감사했어요. 제가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요.”

이가섭이 대선배 공효진과 호흡을 맞춘 ‘도어락’은 흥행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이가섭은 영화 후반부를 제대로 따먹었다고 할 정도로 ‘미친 존재감’을 발산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영화를 보고 나서 직접 만났다면 무서워 말이 안 나왔을 것만 같을 정도로 악역 연기의 진수를 선보였다. 무대 인사에서 이가섭이 등장하자 관객들이 열광적인 반응을 보여줬을 정도. 유명세를 좀 느끼고 있을까?

“전과 달라진 건 전혀 없어요. 아무도 못 알아보세요. 평소에도 대중교통 타고 다니고 있어요. 무대 인사에서 제가 나와 서 있으면 처음엔 누군지 못 알아보시다가 범인이라고 말하면 박수를 쳐주시더라고요. 기분이 참 묘했어요. 주위에서는 대부분 고생했다는 말씀을 해주세요. 역할 때문에 부모님이 어떻게 보실까 걱정했는데 엄마가 보시고 고생했다고 말씀해주셔 가슴이 짠했어요. 고생했다는 말만큼 큰 응원이 없더라고요. 고3때까지 바둑을 하다가 갑자기 배우가 되겠다고 해서 걱정이 많으셨을 텐데 믿고 기다려주셔서 정말 감사할 따름이에요.”

충무로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가섭은 최근 영화 ‘니나 내나’(감독 이동은, 제작 명필름) 촬영을 마쳤다. ‘폭력의 씨앗’ ‘도어락’과는 매우 다른 평소의 편안하고 말랑말한한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냐“는 질문을 던지자 이가섭은 ”많은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는 현답을 내놓았다.

“상업 영화이든 저예산 예술 영화이든 상관없어요. 아직 제가 해보지 않은 역할과 장르가 정말 많아요. 드라마도 기회가 되면 꼭 해보고 싶고요. 아직 전 모르는 게 너무 많고 경험이 부족해요. 좋은 작품들을 만나 좋은 눈을 갖고 싶어요. 눈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말을 듣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한 작품이 끝날 때마다 소속사 대표님이 ‘잘했느냐’고 묻기보다 ‘최선을 다했느냐’고 물으세요. 정말 중요한 질문인 것 같아요. 잘한다는 건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평가해주는 거고 전 항상 최선을 다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이가섭이 고등학교 3학년 때가지 해온 바둑은 수많은 선택과 복기의 작업. 이 덕분에 신중함이 그의 온 몸에 배어 있다.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도 많은 고민이 담겨 있는 듯하다. 실제 성격을 묻자 잠시 고민에 빠지더니 “생각이 좀 많다”고 수줍게 답했다.

“사실 사람 처음 만날 때는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인 것 같아요. 우선 생각이 필요이상으로 많아요. 처음 만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 어떤 단어를 선택해야 하나 고민하다보니 말을 많이 하지 않는 듯해요.(웃음) 이렇게 모든 걸 고민하는 습관은 바둑에서 온 선한 영향력일 수 있어요. 모든 것에 신중한 게 몸에 체화된 것이지요. 그렇다고 외톨박이는 아니고 친구도 많아요. 많든 적든 친구가 있다는 것만큼 인생에서 큰 자산은 없는 듯해요. 고향친구들과 만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최재욱 스포츠한국 기자



사진=장동규기자 jk31@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