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가 망가진 멈출 줄 모르는 전차가 연상됐다. 영화 ‘언니’(감독 임경택, 제작 필름에이픽쳐스) 개봉을 앞두고 지난해 연말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이시영은 펄펄 끓어오르는 에너지가 온몸에서 흘러넘치는 열정의 아이콘이었다. 28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연기자로 데뷔해 자신의 한계를 매번 시험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이시영은 첫 액션 영화 ‘언니’에서 대체불가의 독보적인 매력을 지닌 ‘액션 여제’로 관객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돌을 앞둔 아기 엄마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열혈 배우’를 오가며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후배들의 귀감이 될 만했다.

영화 ‘언니’는 막 출소한 전직 경호원 인애(이시영)가 지적 장애를 지닌 여고생 동생 은혜(박세완)이 납치되자 그 흔적을 쫓아가며 복수하는 과정을 담은 액션 영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운동신경으로 복싱 국가대표까지 지닌 이시영은 대부분의 액션신을 직접 소화해 탄성을 자아낸다. 이시영은 ‘액션배우’로서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시나리오에 반해 출연을 자청했다는 후문. 촬영 내내 시행착오를 겪고 고민이 많았지만 특유의 뚝심으로 순도 100% 리얼 액션신을 완성했다.

“드라마에서 형사 역할을 몇 번 했지만 제대로 액션 연기를 펼칠 기회는 없었어요. 영화에서 액션으로 이끌어가는 역할을 만나기 쉽지 않더라고요. 그럴 때 ‘언니’를 만나게 됐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액션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기회여서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남다른 마음가짐으로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몸으로 모든 걸 표현해야 했기에 부담이 컸어요. 하지만 액션 배우로서 제 가능성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에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언니’가 앞으로 제가 액션 배우로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시작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 컸어요. 꼭 잘 돼 다양한 액션 연기를 스크린에서 펼치고 싶어요.”

영화 ‘언니’는 개봉 후 전체적인 완성도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여성 원톱 액션 영화인데도 여성을 묘사하는 시각이 불편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인애가 여성성을 강조한 빨간 원피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복수에 나서는 설정이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시영이 스턴트와 와이어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 소화해낸 리얼 액션 연기는 높은 완성도로 호평을 받고 있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부터 인애의 의상이 마음에 걸리고 불편했어요. 또한 현실적으로 그런 의상으로는 아무리 열심히 액션연기를 펼쳐도 멋지게 선이 나오기 힘들어요. 이에 대해 감독님은 여성성이 강조된 의상으로 약해 보이는 여성이 얼마나 힘 있게 변해갈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말에 수긍하고 받아들였어요. 약해보이는 여성이 얼마나 무섭게 변해 상대방을 응징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실 여성이 힘으로 남성을 제압하는 건 쉽지 않아요. 그래서 무술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허무맹랑하게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주짓수를 배웠어요. 관절을 꺾어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인데 제대로 각을 잡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보기보다 힘들었지만 재미있었어요.”

이시영은 논스톱으로 이어지는 액션신들 중 가장 고생한 장면을 묻자 김원해와 안마방에서 펼친 격투신과 이형철과 좁은 차속에서 치고받는 액션신을 꼽았다. ‘개고생’을 했다는 표현이 딱 맞을 만큼 액션의 강도가 높은 두 장면에서 이시영은 현실적이면서 리얼한 액션 연기를 선보인다. 이시영은 함께 멋진 장면을 완성한 선배 김원해와 이형철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김원해 선배님이 정말 액션을 잘하셔 깜짝 놀랐어요. 근육이 탄탄하시고 순발력이 엄청 뛰어나시더라고요. 원신 원테이크로 찍었는데 좋은 그림을 잡아내기 위해 무려 28시간이나 찍었어요. 나중에 저도 그렇고 선배님도 지쳐서 못 일어날 정도였어요. 이형철 선배님과 차속 액션신을 자칫 잘못하면 다칠 수 있어 정말 연습을 많이 한 후 찍었어요. 김원해 이형철 선배님이 배려를 많이 해주시고 잘 받아줘 무사히 촬영을 마칠 수 있었어요. 정말 감사드려요.”

이시영에게 결혼과 출산은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외모부터 열정과 에너지는 전혀 변함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달라진 점을 알 수 있었다. 기존에 없던 여유와 유머가 더해진 것. 가정이 가져다준 안정감 덕분인지 기존의 날선 이미지는 누그러지고 온화함이 가득했다.

“많이 내려놓게 됐어요.(웃음) 사실 예전에는 뭐든지 조급했어요. 연기도 늦은 나이에 시작했고 복싱도 서른 넘어 시작했어요. 그래서 악착같이 잘해 보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그러나 이제는 모든 걸 여유 있게 하고 싶어요. 저 혼자 열낸다고 좋은 역할이 오는 게 아니잖아요. 왜 나에게는 다른 역할이 아닌 똑같은 역할만 들어오나 불평할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비슷한 역할이라도 나이와 연차에 맞게 다르게 표현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영화 ‘언니’가 내 커리어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걸 통해 좀더 발전된 액션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싶을 따름이에요. 요즘 여자배우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나 장르가 넓어지고 있는데 다양한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최재욱 스포츠한국 기자

사진 제공=다담인베스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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