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가디슈’(감독 류승완)가 개봉 7일째,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 첫 번째로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아프리카 모로코의 이국적인 풍광과 신파를 덜어낸 담백한 스토리, 스펙터클한 액션도 완성도가 높지만 리더십에 인간적인 매력까지 갖춘 한신성 대사 역을 맡아 스크린을 누빈 배우 김윤석(53)의 매력이 흥행의 동력이라는 평이다.


“처음엔 불가능한 도전이라고 생각했어요. 모로코에서 촬영했는데 반경 5km가 넘는 도시 전체를 세트장으로 만들어야 했거든요. 거기다 인종도 다른 외국 배우 수백 명을 어디서 어떻게 캐스팅할건지 정말 무모한 도전이었죠. 근데 류승완 감독님이 유럽 각지에서 배우들을 캐스팅하신 과정을 지켜봤고, 몇 달 전부터 진행된 비주얼 팀의 세팅 시스템을 보면서 믿음을 갖게 됐어요. 단단한 제작 시스템을 힘 있게 밀고 나가는 게 감독님의 영화인생 그 자체고 실력이죠. 그래서 함께 하고 싶었어요.”

‘모가디슈’는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내전으로 인해 고립된 사람들의 생사를 건 탈출을 그린 영화다.

류승완 감독과 ‘베를린’(2013) 제작진의 새로운 해외 도시 프로젝트로, 1991년 소말리아 내전으로 수도 모가디슈에 고립된 남북대사관 공관원들의 탈출 실화를 모티브로 했다.

“굉장한 능력을 가진 영웅이 적과 맞서 싸우고 모두를 구출해내는 이야기들은 흔하잖아요. ‘모가디슈’는 정말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책상에만 앉아 있던 사람들이라 체력은 약하고, 능력도 보통 사람들보다 떨어질 수도 있어요. 연약하고 평범한 사람이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떤 힘을 발휘하고 나아갈까. 그게 너무나 매력적이었고 ‘모가디슈’를 선택한 이유였죠.”


한신성은 주 소말리아 한국 대사로, 성공적인 외교를 통한 UN 가입, 그로 인한 승진까지 기대하며 외교전에 총력을 펼친다.

3주만 버티면 한국에 갈 수 있었던 상황에서 갑작스레 발생한 내전으로 아내, 대사관 직원들과 함께 대사관 건물에 고립된다. 그는 위기의 순간에도 단호한 카리스마와 유연한 대처로 사람들을 이끌고 탈출 방법을 강구한다. 김윤석은 탄탄한 연기력으로 캐릭터와 체화된 모습을 보여주며 ‘모가디슈’의 무게중심을 단단히 잡았다.

“한신성을 연기하면서 제일 원했던 건 관객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직업이 대사이긴 해도 똑똑한 사람도 아니고 능구렁이처럼 얼렁뚱땅 넘어가기도 해요. 때로는 실수도 하고 남한테 당하기도 하고 그런 사람이 모두를 살리려고 초인적인 힘을 끌어내요. 실제로 살다보면 평범한 사람들이 비범해지는 순간이 있잖아요. 그렇게 위기를 극복하는 게 참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제작진은 여행금지 국가인 소말리아 대신 이국적인 풍광을 재현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내기 위해 장장 4개월 간 아프리카 로케이션 헌팅 과정을 거쳤고 모로코의 도시 에사우이라를 최종 촬영지로 결정했다. 낯선 배경 아래 펼쳐지는 총격전은 생생한 긴박감을 선사하고, 특히 영화 후반부 4대의 차량이 등장하는 카체이싱 장면은 함께 달리는 듯한 현장감으로 남다른 몰입감을 자랑한다.

“91년도식 벤츠를 공수해 오는 것도 힘들었고 한두 대 여분까지 필요했어요. 하도 오래된 차라 창문은 잘 안 내려가고 시트 용수철도 다 튀어나와 있었죠. 차에 붙인 모래주머니 때문에 시동이 꺼지는 일이 다반사였고요. 차가 달리기 시작하면 모래주머니가 터지면서 흙먼지가 엄청 날렸어요. 그게 다 실제였기 때문에 살벌한 장면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모가디슈’ 팀은 석 달 가량의 촬영 기간 동안 언어, 문화 차이에서 오는 장벽을 이겨내고 해외 올로케이션의 장점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류 감독과 제작진은 ‘베를린’으로 쌓은 해외 로케이션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밥차까지 공수해가며 스태프들과 배우들의 현지 적응을 도왔다.

김윤석.롯데엔터테인먼트

“저는 로컬음식 탐방을 좋아해서 음식 때문에 힘들지는 않았어요. 현지 음식 중에 타진, 쿠스쿠스라는 요리가 있는데 훌륭했거든요. 또 우리나라 밥차 덕에 매일 한 끼는 국과 김치를 먹을 수 있었어요. 현지에서 추억이 많아요. 숙소 앞이 바다였는데 매일 아프리카의 붉은 태양이 떴어요. 석양이 질 때쯤이면 다들 나와서 구경하고 사진 찍곤 했죠. 그땐 마스크도 필요 없던 시절이라 공기도 맑고 좋았거든요. 자유롭게 동네를 다녔던 그때가 지금도 그립네요.”

촬영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지만, 제작진과 배우들이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예상치 못한 일이 터졌다. 2020년 초부터 확산되기 시작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이다. 다행히 ‘모가디슈’는 팬데믹 직전 촬영을 마쳤지만, 4차 대유행이 본격화한 올 여름 관객과 만나게 됐다. 영화계를 덮친 유례없는 위기는, 올해로 데뷔 33년차인 김윤석에게도 처음 겪는 어려움이다. 그는 “극장은 다시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세상이 올 줄 몰랐죠. 현지 촬영이 마무리될 때쯤 코로나19가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가 슬슬 나오기 시작했는데, 한국에 돌아오니까 팬데믹 사태가 벌어졌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힘든 상황 속에서 조금씩 양보하면서 개봉하게 됐어요. 팬데믹 이후로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Over The Top) 플랫폼이 유행하고 있는데요, 극장과의 경쟁 속에서 결국 영화와 드라마의 질이 좋아진다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아직 어려운 시국이지만 반드시 극장은 다시 열리고 광장엔 사람들이 모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한곳에 집중하는 공간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거든요.”



조은애 스포츠한국 기자 eun@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