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를린’(2013), ‘베테랑’(2015), ‘군함도’(2017)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류승완(48) 감독이 영화 ‘모가디슈’로 성공적인 컴백을 알렸다. 신파는 덜고 세련된 액션과 서사를 살려 시대를 담았다. 류 감독의 영화가 또 한 번 진화했다. 영화 ‘모가디슈’는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내전으로 인해 고립된 사람들의 생사를 건 탈출을 그린 이야기다. 류 감독과 ‘베를린’ 제작진의 새 해외 도시 프로젝트로, 1991년 소말리아 내전으로 수도 모가디슈에 고립된 남북대사관 공관원들의 탈출 실화를 모티브로 했다. 영화는 지난 7월 28일 개봉 이후 22일째 25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폭발적인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실제 사건에 대해 알게 된 이후 한동안 이 이야기에 꽂혀 있었어요. 고립된 인물들의 모습이 영화적으로도 굉장히 극적이잖아요. 근데 이야기의 판권이 덱스터 스튜디오에 있단 소식에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마침 덱스터 스튜디오에서 제안을 해주셨어요. 한국영화에서 한 번도 구현된 적 없는 상황을 만들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저를 이끌었죠.”

‘모가디슈’의 제작이 확정된 이후 류 감독과 제작진은 여행금지 국가인 소말리아 대신, 이국적인 풍광을 재현할 수 있는 공간을 찾기 위해 4개월간의 아프리카 로케이션 헌팅 과정을 진행했다. 그리고 각고의 노력 끝에 실제 소말리아와 흡사한 환경을 가진 모로코의 도시 에사우이라를 촬영지로 택했다.

이어 1991년 소말리아 내전 당시 상황을 그대로 구현하기 위해 당시 미 해군 기록, 국내 외교 협회 기사, 당시 소말리아 국영TV 사장의 내전 회고록, 종군 기자의 사진 등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프리 프로덕션을 마쳤다.


“처음 고려했던 건 케냐였는데 마침 몇 년 전 테러 사건이 발생해서 안전 문제가 걸렸어요. 그러다 만난 게 모로코였는데 거기서 ‘블랙 호크 다운’(2002)도 촬영했고, 영화 인력이 잘 구성돼 있어요. 유럽이 가까워서 장비 수급에 유리한 면도 있고요. 그래서 가봤더니 생각보다 훨씬 환경이 좋았어요. 촬영을 시작한 이후엔 덧셈보다 뺄셈이 중요했어요.

살다보면 진짜 겪은 일인데 너무 드라마틱해서 설명하기 힘들 때가 있잖아요. 이 사건이 딱 그런 경우라 주로 빼야 했죠. 첨가한 것이라면 책과 모래주머니로 차에 방탄 장치를 만든 것 정도고요, 큰 줄기를 유지하면서 설득력을 부여할 수 있는 장치들을 고민했어요.” 특히 영화 후반부 4대의 차량이 등장하는 카체이싱 액션은 압도적인 몰입감을 자랑한다.

제작진은 포장 도로 위에 직접 흙을 덧대 90년대 비포장 도로를 완성하는가 하면, 소말리아의 건축 양식까지 디테일하게 재현했다. 모로코의 강렬한 자연광 역시 시간대별로 담아 리얼리티를 더했다.

“영화를 본 봉준호 감독이 ‘헌책방 매드맥스’라고 표현해줬어요.(웃음) 저희가 공수해온 차량의 상태가 안 좋았고 책과 모래주머니를 얹으니까 속도가 안 나더라고요. 국내 최고의 스턴트팀이 정말 고생해서 구현했어요. 낯선 지역에서 촬영하다보면 배경에 공을 들이다가 인물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게 해외 로케이션의 함정이에요.

모로코든 춘천이든 결국 사람 사는 곳이라는 걸 체험할 수 있게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당시 자료를 많이 참고해서 그때 사람들이 어떤 걸 먹고 어떻게 입었는지, 동선까지 고려했어요. 해외 로케이션 노하우는 별 건 없고 열심히 하면 다 되더라고요. 한국 사람들이 뭉치면 못할 게 없어요. 더 이상의 노하우는 영업비밀입니다.(웃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 드라마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건 배우들의 실감나는 열연이었다.

김윤석, 조인성, 허준호 등의 배우들은 완벽한 호흡으로 ‘모가디슈’의 전개를 이끌었다. 류 감독은 “좋은 배우 이전에 좋은 사람들”이라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류승완 감독.롯데엔터테이먼트

“김윤석 선배님은 강력한 포스를 내뿜는 역할도 많이 했지만 서민적인 모습, 혹은 무너진 모습을 연기할 때도 품위를 잃지 않는 느낌이 있어요. 희한해요. 이 역할에 바로 떠올랐어요. 조인성 배우는 이름처럼 인성이 대단하던데요.

촬영이 없을 땐 스태프들 얘기도 하나하나 들어주고 신경 써서 챙기더라고요. 허준호 선배님은 쉽지 않은 세월을 겪은 분인데 그 풍파가 할퀴고 간 얼굴이 설명 없이도 드라마가 되는 배우죠. 휴차 때는 숙소 마당에 테이블 두고 스태프들한테 직접 내린 커피도 주시곤 했어요. 늘 여유 있게 현장을 지켜주셨죠.”

배우들의 폭발적인 호연과 스펙터클한 액션, 웅장한 영상미는 ‘모가디슈’의 힘이었다. 그 외에도 신파, 감상주의를 덜어낸 전개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엔딩까지 담백하게 풀어낸 남북관계와 균형감을 유지한 연출이 ‘모가디슈’ 흥행의 동력이었다는 평이다. 류 감독은 “극장을 찾아주시는 관객 분들의 용기가 큰 힘이 된다”며 인사를 전했다.

“극적인 상황일수록 만드는 사람들이 적정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걸 배웠어요. 흥분하지 않고 보고 싶은 것에 집중하다 보니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아요. 이전보다 성장했다고 봐주시면 감사하죠.

‘천만 감독’ 이런 수식어는 부담스러워요. 흥행하면 좋지만 제가 영화를 만드는 목표 지점은 그게 아니거든요. 이젠 제 명성보다는 제가 만든 영화를 어떻게 봐주시는지가 더 중요해요.

결국 영화는 배우와 이야기를 보러 오시는 건데 자꾸 제가 나서서 무슨 소용이겠어요. 자칫 감독에 대한 선입견이 영화에 안 좋은 필터를 입힐 수도 있잖아요. 그냥 카메라 뒤에서 영화 만드는 사람 중 하나로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조은애 스포츠한국 기자 eun@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