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국내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앞서 지난 9월 27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코드 컨퍼런스’에서 테드 서렌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책임자(CEO)는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의 가장 인기 있는 쇼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배우 이정재(49)는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정말 감사하다”며 기분 좋은 소감을 전했다.


‘오징어 게임’은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9부작 시리즈다. 앞서 ‘남한산성’(2017), ‘도가니’(2011) 등으로 매번 새로운 주제 의식을 선보였던 황동혁 감독이 2008년부터 구상해온 이야기로, 추억의 놀이가 잔혹한 서바이벌로 변모하는 아이러니를 담아내며 극한 경쟁에 내몰린 현대사회에 대한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처음부터 콘셉트가 좋았어요. 어릴 때 하던 놀이를 어른들이 서바이벌 게임으로 한다는 설정 자체가 그로테스크하고 공포감도 느껴졌거든요. 또 게임 안에 들어온 사람들 각자의 애환과 고충을 1화부터 꼼꼼하게 쌓아가면서 마지막에 효과적으로 폭발시키는 점도 다른 서바이벌 장르 영화와 차별점이라고 느꼈어요. 나이가 먹다보니까 자꾸 악역이나 센 역할만 들어오는데 새로운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오징어 게임’ 기훈을 만났어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라 더 반가웠어요.”


이정재가 연기한 기훈은 정리해고, 이혼, 사채, 도박 등으로 인생의 위기를 맞은 인물이다. 작은 돌파구조차 보이지 않는 하루하루가 계속되던 중, 의문의 인물이 건넨 묘한 명함을 받고 고민 끝에 게임에 참가하게 된다.

이정재는 늘어난 트레이닝복에 덥수룩한 머리, 대충 눌러쓴 모자, 상처투성이 얼굴, 헐렁한 걸음걸이로 빈틈 많은 기훈 캐릭터를 완벽하게 그려냈다. ‘신세계’(2013), ‘관상’(2013),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2020) 등에서 한동안 보여준 카리스마를 완전히 벗고 친근한 매력을 제대로 살려 국내외 시청자들의 호평을 한 몸에 받았다.

“확실히 오징어가 됐죠. 다들 모자도 너무 안 어울린다고 하시던데요.(웃음) 기훈이의 의상은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에요. 사이즈도 안 맞고 ‘왜 저렇게 매치했지?’ 싶은 느낌이 들게끔 입었어요. 근데 망가져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그런 머리모양이나 옷은 기훈의 성격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 뿐이니까요. 다만 좀 더 자연스러운 생활연기를 위해서 밤에 길거리를 걸으면서 사람들을 관찰하곤 했어요.”

‘오징어 게임’엔 수많은 인간 군상이 등장하지만 그 중에서도 기훈은 유일무이한 성격의 소유자다. 극한 상황에서도 본인보다 약해보이는 이들을 챙기느라 바쁘고 때로는 그들을 위해 과감한 선택도 할 줄 안다.

이정재.넷플릭스

철저히 이기적으로 행동해야 목숨을 부지하기 쉬운 ‘오징어 게임’ 세계관 안에서 조금은 비현실적이고 무모해 보이는 인물이지만, 이정재는 그런 기훈이 오히려 좋았다고 털어놨다.

“기훈은 스스로 약하다고 생각하면서 내심 누군가에게 보호받고 싶은 심리가 있어요. 그런 상황 속에서 다른 약자를 보면 본인을 보는 느낌이라 더 지나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극한 위기에서도 남을 도와주는데 이걸 외국인들이 얼마나 공감할까 궁금하긴 했어요. 한국인의 정서라면 좀 이해하기 쉽겠지만요. 그래도 마음이 따뜻한 인물이라는 건 전 세계 어떤 시청자라도 공감할 것 같았어요. 끝까지 인간미를 잃지 않는, 기훈의 용감한 성격이 주는 메시지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 작품 속에는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즐겼던 6개의 게임이 등장한다. 황동혁 감독은 한국적인 게임들을 서바이벌 형식에 담은 뒤, 정교하게 쌓은 세트장으로 독창적인 세계를 탄생시켰다. 잔혹한 서바이벌과 다르게 알록달록한 색감의 배경이 먼저 시선을 압도하고, 1980년대 교과서 속 철수와 영희를 본뜬 로봇이 등장하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장과 구슬치기, 줄다리기, 징검다리, 오징어 게임 세트장이 섬세한 디테일을 자랑한다.

“너무 신기해서 매번 촬영 전에 배우들끼리도 사진 찍기 바빴어요. 특히 징검다리 게임은 실제로도 어려웠어요. 유리가 1.5m 정도 간격으로 깔려있었거든요. ‘안전하니까 걱정 말고 뛰세요!’ 하시는데 못 뛰겠더라고요.(웃음) 그리고 자꾸 발에 땀이 나서 미끄러웠고요. 다른 사람들이 다 잘 뛰기에 저도 따라서 뛰었어요.”

지난 9월 17일 공개 이후 ‘오징어 게임’의 흥행 열기는 계속되고 있다. 한국 콘텐츠 최초로 미국 인기 1위를 차지했고, 글로벌 OTT(Over the Top, 온라인동영상서비스)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 기준 전 세계 83개국 중 76개국에서 정상에 올랐다. SNS상에서는 달고나, 구슬게임 등 작품에 나온 게임과 소품들이 유행처럼 수많은 패러디를 낳고 있다.

“독특한 매력이 통했다고 생각해요. 캐릭터부터 콘셉트, 소재, 설정 자체가 복합적으로 잘 어울린 시나리오였어요. 무엇보다 대본을 읽었을 때부터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엔딩이에요. 힘도 없고 능력치도 약한 기훈이 ‘잘못된 거잖아,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라면서 무시무시한 세계로 다시 뛰어 들어가는 그 용감함, 정의가 진하게 느껴졌어요.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2편이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저도 많은 분들처럼 기대하고 있어요.”



조은애 스포츠한국 기자 eun@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