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 젤리히만 지음/ 박정희, 정지인 옮김/생각의 나무 펴냄/ 28,000원히틀러의 독재와 독일국민의 사회 심리학적 상태분석

몇 해 전 화제를 불러일으킨 책 <대중독재>는 근대의 독재 형식을 분석한 사회과학도서다.

모든 권력 체제의 성공 여부는 구성원들이 해당 체제의 정통성을 얼마나 인정하는가에 달려 있는데, 정통성을 마련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대중의 합의와 동의다.

근대의 독재 형태는 근대 이전 폭력과 강제의 형태에서 매우 중층적이고 복합적으로 발달하게 된다.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이 책에서 근대 이후 독재는 대중의 동의를 얻어내고 자발적 동원 체제를 만들어내는 다양하고 정교한 헤게모니적 장치들이 내장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신간 <집단애국의 탄생 히틀러>는 바로 이 ‘대중독재’의 개념에서 독재자 히틀러를 분석한다. 이 책은 히틀러의 독재를 조명하며 ‘애국’이란 이름으로 집단적 충성을 맹세한 독일국민의 사회심리학적 상태를 분석한다.

저자 라파엘 젤리히만은 히틀러와 독일국민의 공모가 가능했던 배경으로 히틀러의 카리스마와 더불어 근대로 나아가기를 두려워하는 독일국민의 두려움이 있다고 말한다. 과거 독일은 유럽의 중앙에 갇혀 있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조각조각 분열돼있었다. 독일에게 근대적 사유는 혼란을 줄 뿐이었다.

1차세계대전의 패망에 따른 민족적 자존심의 손상과 악화된 경제상황은 독일국민으로 하여금 적을 찾게 했다. 근대화의 최대 수혜자이자 독일의 상류계층 유대인은 독일 내부의 적으로 낙인 찍혔고, 히틀러는 이를 국민통합의 기제로 사용하게 된다.

1919년 히틀러는 독일노동자당(이후 ‘독일국가사회주의노동자당’, 일명 ‘나치당’)에 입당하고 수백명 가량의 국가주의 당원은 3년 후 4,000명으로, 다시 1년 후에 6만 명으로 늘어난다.

1928년 공화국의회선거에서 81만 명의 지지를, 1930년 투표에서는 650만 명의 지지자를 얻게 된다. 이 과정에서 히틀러는 에른스트 룀, 하인리히 힘러, 요제프 괴벨스, 헤르만 괴링 등과 정치적 기반을 다진다. 이 정치선동의 귀재들이 왜 히틀러에게 그토록 충성을 바쳤는가는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대부분의 국민은 히틀러의 카리스마 넘치는 선동에 따라 모든 악의 근원인 유대인을 뿌리부터 뽑아낼 때 평화를 되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1933년 국제군축회의와 국제연맹에서 히틀러는 탈퇴의사를 밝혔고, 독일국민은 환호를 보냈다. 저자는 이 사실에 비춰보면 독일국민은 히틀러를 독재자라 생각하지 않았으며 스스로 공모자가 아닌 애국자로 생각했음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위대한 독일의 혁명은 유대인 학살로 이어진다.

히틀러와 국민의 공모를 다룬 이 책은 광신적, 집단적으로 표출되는 애국주의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준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독도분쟁, 4년에 한 번씩 불어오는 올림픽과 월드컵 열풍 등 이념 스펙트럼 없이 단 하나의 지점으로 애국심이 단결될 때 이 책을 펼쳐보자.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