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자 생태주의 관점서 서양 국가주의 비판'사막' 르 클레지오 지음/ 홍상희 옮김 /문학동네 펴냄/ 11,000원

지난 10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프랑스 소설가 르 클레지오가 호명됐다.

영국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1963년 23세에 첫 소설 <조서 Le Proces-Verbal>를 발표해 콩코드상 후보에 오르고, 르노도상을 수상하는 등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했다.

훤칠한 키에 영화배우 같은 외모, 천재성에 가까운 필력으로 그는 젊은 프랑스 문단을 이끄는 기수로 주목받았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잠시, 그는 언론과 문단의 관심을 멀리한 채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고 4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가장 영향력 있는 프랑스 작가로 지목되고 있다.

실존주의의 영향 아래 부조리와 사회의 모순, 소통의 단절 등을 소재로 서구 현대문명의 인위성을 비판했던 초기 작품 세계는 66년부터 2년간 경험한 태국생활로 전환을 맞는다.

1975년 모로코 원주민 출신의 여성과 결혼한 그는 초기의 어둡고 난해한 문학세계에서 벗어나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서양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한다.

<사막>은 그의 생태주의적 관점이 고스란히 담긴 후기 작품의 대표로 손꼽힌다. 현재 시점인 랄라의 이야기와 1900년대 초, 유럽군대가 사막을 정복하던 시절 사막에 살던 민족(청색인간)의 서사가 이어진다.

20세기 초, 서구군대가 사하라 사막을 점령하면서 청색인간은 끝없는 유랑길에 오른다. 유란민은 대족장 마 엘 아이닌이 있는 성도에 몰려들지만, 마 엘 아이닌는 성도를 포기하고, 다시 북쪽으로 피난을 결정한다.

추위와 배고픔으로 사막민족은 하나 둘 변절하고, 대족장 마 엘 아이닌은 사막 한 가운데서 죽음을 맞는다. 유랑소년 누르는 이 비극의 역사를 보며 홀로 사막에 남는다.

청색인간의 후예 랄라는 빈민촌 고모와 함께 살아가는 고아다. 그녀는 큰 도시의 남자와의 강제 결혼을 피해 목동 하르타니와 도피하게 되고, 하르타니의 아이를 가진 채 적십자 단의 개입으로 마르세유로 보내진다.

냉소적인 미소와 오묘한 매력의 눈빛으로 그녀는 단번에 모델로 유명세를 떨치지만, 다시 부푼 배를 안고 사막으로 돌아간다. 랄라는 그녀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사막 바닷가에서 홀로 무화과 나무의 굵은 가지에 매달려 아이를 낳는다.

프랑스 평론가 베르나르 피보는 <사막>에 대해 “형이상학적이고, 웅장하며 시적이고, 너무나 몽상적인 소설. 낯설면서도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고 평했다.

이 말은 한국의 독자가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훌륭한 키워드가 될 듯하다. 작품 속 사막은 생명력이 숨 쉬는 대자연이다. 대다수 도시인이 망각하고 있는 우리네 시골과 닮은꼴이다. 이곳에는 꾸미지 않은 순수함과 자연에 순종하는 삶, 문명을 초월한 정신이 있다.

사막의 전경과 청색인간, 랄라의 삶이 서구문명의 냉혹함과 대비해 그려진다. 아프리카의 자연이 아름답게 묘사된 그의 문장 역시 작품의 감상 포인트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