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내면 다시 돌아보기실용적 태도로 현세·인생·허무주의 특성 삶의 형식으로 바꿔탁석산 지음/ 창비 펴냄/ 12,000원

이 책의 저자 탁석산은 국내 보기 드문 인기 철학자다. 2000년 출간한 <한국인의 정체성>은 30쇄 이상을 찍어내며 스테디셀러가 됐다. 예상 밖의 선전에 한 후배 철학자는 “차를 타고 가면서 농담했던 내용을 책으로 쓰더니 30쇄나 팔았다”며 저자의 능력에 탄복했다고 한다.

신간 <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또한 비슷한 방식으로 책머리에는 일본 도쿄 근교, 타카오산(高尾山)에서의 일화가 나온다. 저자인 탁석산과 이름 모를 일본인이 등산을 하는 동안 양국의 문화에 대해 대화를 주고받는다.

“한국이 역동적이라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실용주의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프래그머티즘과는 다른 것이지요.”

“한국은 지난 몇 십 년 간 엄청난 발전을 했어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우선은 한국이 조선의 전통과 단절한데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현문우답’과 같은 아리송한 대화가 계속 오간다.

저자는 우선 푸코의 ‘에피스테메’의 개념을 바탕으로 문화는 불연속적으로 진화하며 반드시 단절이 있다고 말한다.

각각 시대에서 있어서 사유는 경험적으로 결정된 구조가 부여하는 한계에 갇혀있고, 그 구조는 그 시대의 문화를 뒷받침한다. 이 구조가 바로 ‘에피스테메’다. 따라서 한국의 문화를 고려와 조선의 연속선상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조선과 단절된 최근 100년의 문화만을 오롯이 한국의 문화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수세기에 걸쳐 종교, 왕, 철학에서 벗어난 서양과 달리 한국은 20세기 초 이 세 가지 요소에서 한꺼번에 자유로워졌고 해방된 개인이 탄생했다. 저자는 한국인의 내면적 특징으로 현세주의, 인생주의, 허무주의 세 가지를 꼽는다.

현세와 구별된 또 하나의 세계를 믿지 않는 한국인의 심성은 선과 악, 참과 거짓, 이성과 감성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거부한다. 또한 자신의 현세가 세계의 처음과 끝이므로 축적하기보다 소모하려는 경향을 드러낸다.

인생주의는 합의된 제도보다 개인의 감정을 내세우고 사회성공보다 쾌락을 중시하는 속성이다. ‘일보다 인생’이라는 한국인의 태도는 우리 문화유산 중에서 완성에 오랜 세월이 걸리는 거대 건축물이나 대를 이어 내려오는 가업(家業)이 드물다는 사실 등 곳곳에서 확인 된다.

허무주의는 실패와 좌절에 직면할 때 한국인이 자기를 방어하는 수단이 된다. 자신의 실패를 절대자가 부여한 운명으로 돌리지 않고 ‘인생무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내면적 특성을 삶의 양식으로 이끈 것이 바로 실용적 태도다. 저자는 100년 전 조선과 결별한 한국의 시대적 패러다임은 ‘생존-생활-행복-의미’의 순서로 핵심과제가 변했고, 그 속에서 한국문화는 일관되게 실용주의를 추진하며 위기를 돌파했다고 설명한다.

상식을 뒤엎는 발상과 날카로운 분석은 한국인의 내면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저자는 현학적인 철학적 담론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생활 용어로 인문학의 높은 벽을 낮춘다. ‘주자학’ ‘에피스테메’와 같은 낯선 철학적 개념에도 이 책이 쉽게 읽히는 이유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