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다. 아니 첫눈이 내렸으니 겨울이 다가왔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꽃도 지고, 단풍도 이제 그 화려한 빛을 잃었다. 메타세콰이어 잎처럼 깊은 가을빛이 무채색으로 변해갈 겨울을 이어주며 마음을 붙잡는다. 당분간은 열매찾는 재미를 붙여야 겠다.

개암나무는 자작나무과에 속하는 작은키나무이다. 개암나무라는 이름이 혹시 낯설다면 어릴 때 뒷 산에서 깨물어 먹던 고소한 맛의 깨끔 열매는 아실지 모르겠다.

그래도 떠오르는 것이 없으시다면 예전에 듣던 옛날 이야기 가운데 날이 저물어 피한 집이 도깨비들이 모인 곳이었고, 천정으로 몸을 피해 숨어 있다가 시장한 생각에 산에서 주워 넣었던 열매를 꺼내어 깨물었는데 그때 나는 “딱”하는 소리에 도깨비들이 도망가고 도깨비방망이와 금은보화를 가지고 돌아오며 이어지는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열매가 바로 개암나무라면 이제 좀 친근감을 느끼실지 모르겠다.

개암나무는 주로 양지바른 산기슭에서 자라는데 봄이 오면 가장 먼저 꽃이 피고 잎은 나중에 올라온다. 풍매화여서 꽃이 화려하진 않은데 이삭처럼 황갈색으로 축축 늘어지면 달리는 것이 수꽃차례이고 눈여겨보면 아주 작은 붉은 별처럼 하나씩 달리는 것이 암꽃이다. 잎도 개성 있다.

전체적으로는 타원형인데 가장자리에 불규칙한 톱니들이 들쑥 날쑥 나 있다. 특리 잎의 끝부분이 자른 듯 하면서 심한 결각이 있는 것을 난티잎개암나무라고도 하는데 최근에는 이를 잎의 다양한 변이의 일부하고 생각하고 그냥 개암나무에 포함시키는 경향이 많다.

다시 그 유명한 열매로 돌아가서. 개암나무의 열매는 그냥 개암이라고 부른다. 한자로는 진자(榛子)라고 하여 이름이 제법 높다. 우선 기름이 많이 나서 기름을 짜기 위해 심기도 하였고, 먹을 수 있는 대표적인 열매의 하나이다.

특히 동의보감에는 우선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워 주고, 기력을 높혀 주며 장과 위를 잘 통하게 해주며 걸음걸이를 비롯하여 활력을 넣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방에서서 몸이 약하거나 식욕이 없고나 어지럽고 눈이 피로할 때 처방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제사에 개암을 올려놓았다고도 하고 조선왕조실록에만 백번이 넘게 등장한다고 하니 예전에는 아주 친근한 열매였던 것 같다. 꽃가루나 수꽃차례를 부스럼이나 타박상등에 처방하였다고도 한다. 봄이면 꽃가루 등으로 벌이 찾는 밀원식물이기도 하였단다.,

요즈음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헤이즐넛이 바로 개암이라고 하면 더욱 친근할지 모르겠다.

우리가 커피의 향으로 장하고 고소한 맛과 향으로 쵸컬릿을 비롯한 과자 등에 자주 등장하고, 기름으로 이런 저런 요리에 넣기도 하는 그 하는 헤이즐넛이 바로 서양개암나무 열매라고 생각하면 된다. 독일에선 개암나무가 부를 상징한다하고, 아일랜드 전설엔 개암나무가 악마를 쫓는 부적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니 서양사람들에게도 좋은 존재였나 보다.

어린 시절 뒷산에 올라 찾아낸 깨끔(개암) 하나 찾아내어 이빨로 딱 하고 깨물면 그 속에 상아빛의 싱싱한 속살이 드러나고 이를 파먹으며 그 고소한 맛에 흐뭇해 하던 추억들을 말한다. 나도 그 재미난 경험을 하고 싶다. 새로운 눈으로 산자락을 어슬렁거려야 할 듯하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